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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자카르타

박영웅

2026년 3월 11일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수용과 종교·정치 체제의 전개 —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1.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은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가?

7~8세기 아랍, 페르시아 상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이 전해지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이 정착한 것은 13세기경 수마트라 북부의 아체(Ache)지역에서 시작되었다.

 

2. 이슬람이 유입될 때 이에 저항하는 종교나 힘이 있었는가? 이슬람 전에 기독교가 있었다면 기독교가 무너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슬람이 유입될 때 인도네시아에는 힌두교 왕국인 “스리위자야”와 불교왕국인 “마자파힛”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자파힛 왕국 말기인 16세기경에 이슬람 왕국인 “드막술탄국”에 의해 점령당한 마자파힛 왕국의 저항이 일부 있었다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슬람이 인도네시아에 자리잡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는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을 전파한 페르시아의 수피 이슬람의 특징이 현지 문화와 공존과 융합하는 자세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토착민들 또한 이슬람을 새로운 영적인 체계로 인식하면서 기존의 신앙을 유지하는 태도를 가졌다. 이로 인해 혼합주의적인 요소가 인도네시아 이슬람에서는 많이 발견된다. 인도네시아 자와섬에 살아가는 무슬림들을 “아방안 abangan”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슬람 교리를 총체적으로 따르지 않고 건성으로 믿는 계층을 의미한다.

 

3. 세계대전 이후 이슬람은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

세계대전 이후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과 국가정체성 형성의 핵심에는 이슬람이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될 때까지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민족운동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슬람 단체들이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고, 네델란드의 기독교 식민 통치에 반대하면서 이슬람 공동체의 자치와 교육의 자립을 강조했다. 350년 동안의 네델란드 식민통치가 끝나고 일본에게 3년 반 정도 식민통치를 받았는데, 일본은 인도네시아 식민통치를 위해 이슬람 세력과 연합하는 자세를 취했다. 일본은 기독교 세력인 네델란드와 달랐고 또 서구세력도 아니었기에 일본과 연합하는 태도를 취하는 그룹이 있었으나, 일본의 이교도적인 종교관과, 천황숭배를 우상숭배라고 여기며 배척하는 이슬람 세력들은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일본 패망 이후 이슬람 지도자들은 즉각적으로 독립선언에 참여했고, 인도네시아 이슬람 단체의 지도자 대다수가 건국회의에 참여했다.

 

4. 인도네시아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이슬람 학파는 무엇이며, 중심 인물은 누구인가? 그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인가?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지만 단일한 이슬람 학파가 지배하지 않고 전통주의(NU)와 개혁주의(Muhammadiyah)가 공존한다.

1926년 창립된 Nahdlatul Ulama(NU)는 약 1억 명의 회원이 있는 인도네시아 최대의 이슬람 단체이다. NU는 이슬람을 토착 문화와 조화롭게 실천하는 종교로 본다. 이슬람 법학자인 “하심 아쉬아리(Hasyim Asy’ari 1871~1947)”는 NU의 창립자이다. 메카에서 유학 이후 귀국하여서 전통 수피즘과 샤피이 율법을 조화시켰다. 인도네시아 독립운동 당시 그의 활동을 기념하여 종교적 독립전쟁을 수행한 지도자로서도 존경을 받는다. 또 하심 아쉬아리의 손자이며 인도네시아 4대 대통령 “압두라만 와히드(Abdurrahman Wahid 1940~2009)” 또한 관용, 다원주의, 인권, 종교 간의 공존을 강조하며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평화적 정체성을 정착시켰다. 이러한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혼합적인 모습은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을 정착, 확장시켰던 “왈리 송오(Wali Songo)”라고 불리는 9명의 이슬람 성직자, 선교사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14세기 말부터 16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이들은 이슬람이 전파되는 당시 힌두교와 불교 왕국이었던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종교에 이슬람 교리가 융합될 수 있도록 많은 역할을 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전통 인형극인 “와양(Wayang)”은 힌두교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공연하는데 사용되었는데, 이를 이슬람식으로 변경해서 공연하면서 민간에 이슬람이 문화적으로 빠르게 정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슬람식 기숙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육을 통해 이슬람을 확산시켰다.

1912년 창립된 무함마디야(Muhammadiyah)는 인도네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이슬람 단체이다. NU가 현지 문화와 이슬람 신앙의 조화를 강조했다면, 무함마디야는 이슬람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했다. (Back to Qur’an and Sunnah)

 

5. 이슬람이 인도네시아에 끼치는 영향력은 무엇이며, 이슬람 세계에서의 역할은 어떠한가?

이슬람은 인도네시아의 최대 종교로서 단순히 종교의 차원을 넘어 국가 정체성,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규정하는 핵심이다.

인도네시아의 건국이념인 판차실라(Pancasila)는 5가지의 국가 건국 이념을 설명하는데 그 “첫번째가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다. 이 이념은 무슬림 다수의 국가로서 이슬람적 신앙기반 위에 세워진 세속국가인 것을 나타낸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뿐만 아니라 기독교, 천주교, 힌두교, 불교, 유교 의 6가지 종교를 공식 종교로 인정하며, 인도네시아 국민은 신분증의 종교란에 자신의 종교를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종교운동인 “이슬람 누산타라”는 원리주의를 경계하며 인도네시아 현실에 적합한 신앙의 길을 말한다. 이러한 평화적이고 포용적인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세계 속에서 온전 이슬람의 대표 모델로서 인식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키스탄 같이 교리 중심의 정치적 이슬람이 아니라, 사회적 이슬람을 구축한 사례로 꼽히고, UN과 이슬람협력기구에서 이슬람 민주주의의 성공 모델로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문화와 종교의 융합과 타종교와의 평화를 이루는 것이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이슬람 이외의 종교가 우선 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는 외부에서 공식적으로 이슬람 이외의 종교적인 행사를 하는 것이 종종 허용되지 않으며, 공공생활의 도덕 규범 안에서 이슬람적인 요소들이 많이 시행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공동체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겉으로는 포용과 화합을 말하지만 내적으로는 이슬람 신앙을 고수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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