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예성
2026년 2월 21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수용과 종교·정치 체제의 전개 — 메카를 중심으로
1. 메카 지역에 이슬람이 유입된 시기와 방식
이슬람은 서기 7세기 초반(약 610년경), 아라비아반도 서부의 히자즈[1] 지역에 위치한 메카에서 태어난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가 알라로부터 꾸란의 첫 계시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슬람이 시작되었다.
당시 무역로의 중심지였던 메카의 카바(Kaaba) 신전에는 많은 이방인들의 왕래로 인하여 약 360개의 우상이 있었다. 무함마드(Muhammad)는 메카를 지배하던 유력 부족인 쿠라이쉬족 출신이었으나, 이슬람의 핵심 교리인 ‘유일신 숭배(Tawhid)’와 다신교 우상 숭배의 배격을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다신교 신앙을 기반으로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던 쿠라이쉬족 지도자들의 강력한 저항과 박해를 받게 되었다. 결국, 무함마드(Muhammad)와 초기 추종자들은 박해를 피해, 서기 622년에 메카 북쪽에 위치한 야스립(훗날 메디나)으로 이주하는 ‘히즈라(Hijrah)’[2]를 단행했 으며, 이는 이슬람 공동체(Ummah)의 역사적 시작점이 되었다. 메디나에서 공동체를 조직한 무함마드(Muhammad)는 628년 쿠라이쉬 부족의 항복을 받아냈고, 최종적으로 서기 630년에 군대를 이끌고 ‘메카를 탈환(정복)’하였다. 그는 카바 신전에 있던 모든 우상들을 파괴하고 유일신 신앙의 승리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2. 이슬람 유입에 대한 저항 세력과 기존 종교의 위치
이슬람이 메카에 등장했을 때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대항한 세력은 쿠라이쉬 부족과 이방인들이었다. 당시 메카는 단순히 종교적 성지가 아니라 아라비아반도의 금융 및 무역의 중심지였다. 메카의 카바 신전에 안치된 360여 개의 우상들은 아라비아반도 전역의 부족들뿐만 아니라, 무역을 하는 이방인들을 메카로 불러모으는 역할을 하였다. 쿠라이쉬 부족은 이 순례객들을 대상으로 숙박, 음식, 제물 판매, 통행세 징수 등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유일신 숭배인 이슬람의 확산으로 기존 수입원이 끊기게 되자, 그들은 무함마드(Muhammad)와 이슬람 공동체를 물리적으로 박해하고 이슬람의 확산을 저지하려 하였다.
3. 세계대전 이후 메카의 변화
메카는 아랍 무슬림의 정복 활동을 통해 이슬람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붕괴하자 새로운 정치적 격변기를 맞이하였다.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Sharif Hussein)’이 아랍 왕국의 수립을 꿈꾸며 오스만에 반기를 들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Abdulaziz ibn Saud)’가 이끄는 군대에게 1926년에 메카를 빼앗기게 되었다. 이로써 이슬람의 두 성지, 메카와 메디나는 사우드 왕국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압둘아지즈가 1932년 마침내 아라비아반도의 주요 지역을 통합하여 국호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으로 선포하며 초대 국왕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고귀한 두 성지(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며 국내외적으로 종교적 권위와 국가 정체성을 확고히 하였다. 사우디는 두 성지의 관리자로서 이슬람 공동체(움마)의 통합과 희망을 실현하고, 이란의 영향력 확대 등을 견제하며 아랍 및 이슬람 세계에서 주도적인 정치적, 종교적 위치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4. 사우디/메카 지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이슬람 학파와 중심 인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법학파 중 가장 엄격한 “한발리 학파(Hanbali Madhhab)”의 교리를 따르는 “와하비즘(Wahhabism)”을 국가의 공식 이념으로 삼고 있다.
18세기 이슬람 개혁 운동을 주도한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Muhammad ibn 'Abd al-Wahhab, 1703-1792)”은 유일신(타우히드) 신앙의 순수성을 철저히 복구하고자 하였다. 그는 알라 외의 어떤 존재(예: 예언자, 성자, 무덤)에 대한 숭배나 기도를 “쉬르크(Shirk, 다신교)”로 규정하며 이를 엄격히 배격하였다. 초기 이슬람 공동체의 모습(첫 3세기)으로 돌아가 꾸란과 순나에 명시되지 않은 모든 새로운 종교적 관습이나 행위를 “이단적인 변화(비드아)”로 간주하고 거부하였다.
알 와합은 폭력적인 지하드보다는 “교육과 대화”를 통해 유일신 신앙을 전파하는 것을 주장했으며, 이는 무슬림들이 꾸란을 암기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그의 방법론과도 연결된다.
5. 이슬람이 사우디와 메카에 끼치는 영향력과 메카의 이슬람 세계에서의 역할
이슬람은 사우디 왕국의 모든 측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와하비즘은 정치 이념의 중심이며, 샤리아는 헌법으로서 정치, 문화, 사회, 사법 체계를 지배한다. “울라마(종교 학자)” 집단은 왕에게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 “슈라 의회”[3] 등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쳐 강력한 도덕 및 종교적 규범을 행사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있다.
메카와 메디나라는 두 성지를 보유하고 “순례(하즈)”[4]를 관리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전 세계 무슬림에 대한 종교적 권위를 부여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 세계의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는 근간이 된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살라피(Salafi)”[5] 이슬람에 대한 광범위한 지원을 외교 정책의 도구로 사용하여 이슬람 문화와 이념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 서기 7세기경 아라비아반도는 지형과 부족 세력을 중심으로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히자즈(al-Hijaz)’는 홍해 연안의 산맥 지대로, 메카와 메디나 등 남북 무역로가 관통하는 정착 상업 문화의 중심지로 인해 많은 종교들이 있었다. ‘나지드(Najd)’는(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수도 ‘리야드’의 근원) 반도 중앙의 광대한 고원 지대로 유목 부족들의 중심지였다. ‘샴마르(Shammar)’는 아라비아반도 북부의 전략적 요충지로, 메소포타미아 및 레반트 지역과 인접하여 대외 관계의 관문 역할을 수행했다. 이 세 지역은 기후와 지형적 차이로 인해 서로 독립적인 부족 연맹체 형식을 띠고 있었다. 세 지역을 토대로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형성이 되었다.
[2] 서기 622년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와 그 추종자들이 메카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이다. 이슬람 공동체의 형성 및 국가 건설의 출발점이자 이슬람력(Hijri Calendar)의 시작이 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3] 국왕이 임명한 위원들로 구성되며, 법안을 검토하고 정책을 자문하는 역할을 하지만 실질적인 입법권보다는 자문 기구의 성격이 강하다
[4] 하즈(Hajj)는 이슬람의 다섯 기둥(Five Pillars of Islam) 중 하나로, 모든 성인 무슬림이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이행해야 하는 메카 성지 순례를 의미한다. 이는 매년 이슬람력 12월(주 알-히자)에 행해지며, 전 세계 무슬림들이 인종과 계급을 초월하여 유일신 앞에서 평등함을 상징하고, 이슬람 공동체(Ummah)의 유대감을 확인하고 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의무이다.
[5]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통치 이념인 와하비즘(Wahhabism)의 신학적 뿌리로 기능한다. 이는 18세기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Muhammad ibn 'Abd al-Wahha)에 의해 체계화되었으며, 유일신 신앙(Tawhid)의 순수성 회복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현대 국제정치 맥락에서는 온건한 경건주의부터 급진적 지하디즘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으나, 공통적으로 초기 이슬람 정신으로의 회귀를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