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주엘
2026년 3월 11일
이란의 이슬람 수용과 종교·정치 체제의 전개 — 테헤란을 중심으로
1. 이란에 이슬람은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가?
시기:
이슬람은 7세기 중반, 즉 아랍 제국(정확히는 라시둔 칼리파 시대) 때 이란 지역에 유입되었다. 당시 이란은 사산 왕조(سلسله ساسانی) 치하였고, 국교는 조로아스터교(زرتشتی)였다.
과정:
633년부터 시작된 아랍-사산 전쟁에서, 651년 사산 제국이 완전히 멸망하면서 이란 전역이 이슬람 제국(우마이야 왕조, 이후 아바스 왕조)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처음엔 군사적 정복이었지만, 이후 세금 제도(지즈야)와 혼인, 행정 통합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슬람화되었다.
2. 저항세력과 기존 종교는 무엇이었는가? 당시 기독교의 역할은 어떠했나?
주요 저항 종교:
가장 강한 저항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일어났다. 이란의 전통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 사제층과 귀족 세력은 아랍의 침입에 맞섰지만, 사산 제국의 정치·군사적 약화로 쉽게 무너졌다.
기독교의 존재:
이란에는 소수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들이 있었다(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 그러나 이미 사산 왕조 시기부터 이단으로 취급받았고, 세력이 약했다. 따라서 이슬람 유입 당시 기독교는 주된 저항세력이 아니었다.
기존 종교들이 무너진 이유:
사산 왕조의 부패와 전쟁으로 사회 불만이 팽배
조로아스터교의 의례 중심, 폐쇄적 구조로 민중의 신앙심 약화
아랍 정복자들이 현지 엘리트와 융화 정책을 펼치며 점진적 이슬람화 유도
3. 세계대전 이후 이슬람의 입장
제1차 세계대전 이 후:
오스만 제국 붕괴 후, 이란은 독립된 국가로 남았으나 영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이슬람은 민족주의 운동과 결합하여 반제국주의 이념적 근거로 작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속화 정책을 추진한 팔라비 왕조(특히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에 대해 종교계는 강력히 반발했고, 1979년 이슬람 혁명(انقلاب اسلامی)을 통해 시아파(Shi’a) 성직자 중심의 신정체제가 수립되었다. 이란은 이 시점부터 정치 이슬람의 대표적 국가가 되었다.
4. 영향력 있는 이슬람 학파와 중심 인물
학파:
이란의 국교이자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시아파(Shi’a) 중에서도 열두이맘파(이마미야, امامیه)이다.
중심 인물:
현대 이란의 이슬람 정치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Ayatollah Ruhollah Khomeini)(آیتالله روحالله خمینی)이다.
그의 가르침의 핵심:
“벨라야테 파키(ولایت فقیه)”, 즉 율법학자 통치론:
신이 직접 지배하지 못하는 시대에는, 이슬람 율법을 가장 잘 아는 율법학자가 정치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이론.
이는 세속 권력보다 종교 권력이 우위에 있다는 원리로, 이란 이슬람 공화국 헌법의 핵심 원리가 되었다.
5. 이슬람이 이란에 끼치는 영향력과 이슬람 세계에서의 역할
국내적 영향:
정치: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성직자(지도자 또는 ‘최고지도자’)
법률: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기반으로 한 법체계
교육·문화: 종교교육 강화, 여성 복장 규제, 라마단 등 종교행사 국가적 규모로 시행
국제적 역할:
시아파의 종주국으로서 이슬람 세계 내에서 독자적 축을 형성
수니파 중심의 사우디아라비아와 대립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헤즈볼라), 예멘(후티) 등 시아파 세력에 영향력 행사
반미·반이스라엘 정책으로 이슬람 세계의 저항 이념의 상징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