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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계의 역사적 특징

이지은

2026년 2월 21일

간략한 이슬람 확장사, 근대 세계에 직면한 이슬람의 대응적 운동

1. 간략한 이슬람 확장사

 

정통 칼리프 시대(632~661년)

이슬람에서 신의 마지막 예언자로 여겨지는 무함마드가 사망하자, 그의 추종자들은 공동체(움마)를 이끌 지도자로 칼리프(대리인)를 선출하였다. 초대 칼리프로는 무함마드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아부 바크르가 선출되었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였던 알리 역시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었으나, 연장자이자 공동체 내 신망이 두터웠던 아부 바크르가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후 알리의 정통성을 중시한 지지 세력은 점차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들은 훗날 ‘시아파’로 불리게 된다. 아부 바크르에 이어 오마르, 오스만, 알리가 차례로 칼리프로 선출되었으며, 이 시기를 통틀어 ‘정통 칼리프 시대’라 부른다. 이들 칼리프는 공동체의 분열을 막고 이슬람 교리를 정비하는 한편,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주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우마이야 왕조 시대(661~750년)

4대 칼리프 알리가 강경한 하리지파에 의해 암살되자,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총독이었던 무아위야는 스스로 칼리프에 즉위하였다. 그는 칼리프직을 아들에게 세습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세습 왕조 형태의 통치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우마이야 왕조이다.

무아위야의 아들 야지드가 즉위한 뒤,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정치적 갈등 속에서 살해되었다. 후세인의 죽음은 시아파에게 순교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시아파 신앙과 공동체 의식을 결속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반면 다수의 무슬림은 정통 칼리프 시대에 형성된 전통을 계승하며 수니파로 자리 잡았다.

우마이야 왕조 시기에는 제국 전반에서 아랍어와 이슬람 문화가 확산되었고, 이슬람 법학 전통에서는 점차 세계를 ‘이슬람의 영역(다르 알 이슬람)’과 ‘비이슬람의 영역(다르 알 하르브)’으로 구분하는 인식이 정착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제국은 빠른 속도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압바스 시대(750~961년)

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무함마드의 혈족임을 내세운 압바스를 중심으로 한 혁명 세력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우마이야 왕조의 통치가 초기 이슬람의 이상에서 벗어났다고 비판하며, 페르시아계 주민과 시아파 세력의 지지를 받아 정권 교체에 성공하였다. 이렇게 성립한 왕조가 바로 압바스 왕조이다.

압바스 왕조는 수도를 바그다드로 옮겼는데, 바그다드는 당시 세계 각지와 활발히 교역하던 국제 도시였다. 이러한 지리적·경제적 조건을 바탕으로 압바스 제국은 학문과 과학, 철학과 예술이 두루 발전한 이슬람 황금기를 열었다.

압바스 혁명은 무함마드의 혈족을 앞세우며 시아파 세력의 지지를 받아 성공하였지만, 집권 이후에는 정치적 안정과 광범위한 공동체 통합을 위해 수니파의 종교 전통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니파’라는 명칭이 정착되었고, 정통 이슬람 교리와 법학 체계가 본격적으로 정비되었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는 점차 단일한 정치 권력 아래로 통합되지 못했다. 756년 이베리아 반도에는 우마이야 왕조의 후예가 안달루시아 우마이야 왕조를 세웠고, 909년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시아파의 파티마 왕조가 등장하였다. 961년 안달루시아에서 칼리프가 선포되면서, 바그다드의 압바스 칼리프와 카이로의 파티마 칼리프를 포함해 이슬람 세계에는 세 명의 칼리프가 공존하는 다중 중심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후 압바스 왕조는 정치적 영향력은 약화되었지만, 1258년 몽골에 의해 바그다드가 함락될 때까지 종교적 권위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하였다.

 

튀르크의 이슬람화와 셀주크 제국(9~11세기)

튀르크 민족이 이슬람 세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9세기 이후였는데, 이는 압바스 제국이 튀르크계 병사들을 맘루크(mamluk)라 불리는 군사 노예로 고용하면서부터였다. 전문화된 군사력을 갖춘 튀르크 집단은 점차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그 결과 중앙아시아와 이란 지역에서는 가즈나 왕조를 비롯한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들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1세기 셀주크 튀르크는 가즈나 왕조를 격파하고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셀주크는 자발적으로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압바스 칼리프의 종교적 최고 권위를 존중하였으며, 압바스 칼리프 역시 셀주크 술탄의 군사적·행정적 지배권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셀주크 제국은 튀르크의 군사력과 페르시아 행정 전통을 결합해 안정적인 제국 체제를 구축하였으며, 수상 니잠 알 물크의 제도 개혁을 통해 수니 이슬람 질서를 제도화하였다.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틴 제국을 격파함으로써 아나톨리아의 튀르크화가 본격화되었고, 이 승리는 비잔틴과 서방 기독교 세계에 구조적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십자군 원정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셀주크 제국은 튀르크 세력이 이슬람 세계의 중심 주체로 부상하는 전환점이자,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는 튀르크-수니 이슬람 전통의 기초를 마련한 제국이었다.

 

오스만 제국과 이슬람 세계의 재편(1299~1922년)

십자군 전쟁과 몽골 침입으로 이슬람 세계는 장기간 혼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수피 교단은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이슬람 신앙을 유지하고 재건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등장한 오스만 튀르크는 셀주크의 전통을 계승한 수니파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였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정복 이후 오스만 제국은 소아시아, 동유럽,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으로 팽창하였다. 한편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시아파를 국교로 삼은 사파비 제국이 등장해 오스만 제국과 대립하였다. 이 시기 이후 수니파는 주로 튀르크 세계와, 시아파는 페르시아 세계와 연결되는 인식이 굳어졌으며, 이슬람은 아랍 중심의 종교를 넘어 보편 종교로 확장되었다.

동쪽에서는 칭기즈 칸과 티무르의 후손임을 자처한 바부르가 무굴 제국을 세워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미얀마에 이르는 지역에 이슬람 문화를 확산시켰다.

17세기에 이르러 오스만 제국은 수니파 이슬람의 중심으로, 사파비 제국은 시아파 전통을 대표하는 국가로, 무굴 제국은 이슬람이 다양한 종교와 민족을 포괄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제국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들 세 제국은 이슬람 세계의 세 강국을 이루었다.

 

2. 근대 세계에 직면한 이슬람의 대응적 운동


17세기까지 확장을 거듭하던 이슬람 세계는 근대 서구의 성장 앞에서 뒤처지게 되었고, 유럽 열강의 식민지가 되거나 패전을 거듭하게 된다. 타밈 안사리(2011)는 근대 세계에 직면한 이슬람의 대응적 운동을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요약한다. 이슬람주의, 세속적 근대주의, 그리고 이슬람적 근대주의이다.

 

1)이슬람주의

이슬람주의는 교리 자체가 아니라 무슬림 공동체의 실천이 타락했다고 보았다. 본래의 교리를 혁신·개조·부연하는 과정에서 신앙이 타락하여 아무도 진정한 이슬람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서구의 영향을 차단하고 이슬람을 원래의 신성한 형태로 회복시킬 것을 주장한다.

아라비아 반도의 압둘 와하브가 대표적인 이슬람주의자이다. 와하비즘은 타우히드(유일신 사상)와 시르크의 오류(사람이나 사물이 신성을 조금이라도 담을 수 있다는 믿음은 허위라는 것)라는 교의를 가지고 있고, 변절자뿐만 아니라 이슬람을 변형시키는 혁신자들을 이슬람의 적으로 규정한다. 아라비아와 인도에서 번성하였고, 인도, 파키스탄에서 데오반디즘을 일으켰으며,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게 영향을 주었다.

 

2)세속적 근대주의

서구의 모델이 옳다고 주장한다. 무슬림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 사상의 수렁에 빠졌으며, 무지한 성직자들이 이슬람을 좌우하도록 내버려뒀다는 것이다. 미신과 마법적 사고를 버리고 과학이나 세속의 삶과 양립할 수 있는 윤리 체계가 되도록 이슬람을 근대화할 것을 촉구한다.

인도 알리가르의 사이이드 아마드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817년 델리에서 태어났는데, 지위가 높고 근대적이며 서구에 경도된 집안에서 자라며 영국인이 인도인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주창한 알리가르운동은 이슬람 신앙을 윤리 체계로 이해하기를 촉구한다. 자유주의 신학인 셈이다. 근대적인 알리가르대학을 설립하였고, 이 학교의 학생들과 교수진은 세속 근대화 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많은 사상가들이 있었는데, 이란에서는 다르 알 푸눈이라 근대학교가 설립되어 이란의 근대화를 촉진했고, 오스만 제국에서는 근대주의자들의 활동으로 탄지마트, 즉 개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무슬림 사회는 서양을 좇아 개발을 서두르면서 민주주의를 차선으로 생각했다. 터키, 이란, 아프간은 통치자가 세속적 근대주의를 추진했고, 나머지 이슬람 세계는 군주가 통치했으나 세속 근대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독립운동이 격렬하였다. 세속적 근대주의는 이슬람 세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3)이슬람적 근대주의

이슬람이 진정한 종교인 것은 사실이지만, 서구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고 본다. 무슬림은 자신의 신앙, 역사, 전통을 재발견하고 강화하는 한편 과학과 기술 영역에서 서구의 학문을 수용해야 한다. 무슬림 나름의 방식으로 근대화를 추구하므로 과학과 이슬람은 양립할 수 있고 근대화가 반드시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사이이드 자말루디니 아프간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여러 나라를 전전한 그는 이슬람은 합리적인 종교라는 논지의 기사를 발간하기도 하고 범이슬람주의 신조를 확립하였다. 당시 국제 이슈를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으로 조명했고, 사후에 제자들을 통해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의 제자 무함마드 아브두는 알 아즈하라 대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했고, 아브두의 친구인 라시드 리다는 이슬람에 맞는 근대국가 운영법을 연구하였다. 하산 알 반나도 이 계열로 무슬림형제단을 창설하였다. 무슬림형제단은 주적을 세속적인 이슬람과 서구화된 상류층으로 설정하였고, 서구화를 배제한 범이슬람 근대주의를 주창하였다.

 

  참고문헌 Ansary, T. (2011).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류한원, Trans.). 뿌리와 이파리. (Original work published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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