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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에 온 몽골인 선교사에 관한 이해

이예레미야[1] 

Dec 15, 2025

튀르키예에 온 몽골인 선교사에 관한 이해

I. 서론

현재 튀르키예에는 RAN선교회[2] 소속의 7명의 몽골인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필자의 제자들로서 튀르크인들을 대상으로 길게는 9년간 장기사역을 하고 있다. 이것은 가능했던 이유는 필자의 영적, 심적, 재정적인 돌봄과 삶의 모본, 그리고 팀 동료 선교사들 간의 영적, 심적 돌봄과 따뜻한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튀르키예에 온 몽골인 선교사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이것이 몽골인 선교사들의 성공적인 선교 정착과 문화적응, 나아가 실천적 리더십 개발을 촉진하는 방안을 찾는데 실제적인 정보와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에 온 몽골인 선교사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연구에 앞서 몽골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몽골인 선교사들은 선교사이기 이전에 몽골인이기 때문이다. 로이드 콰스트(Lloyd E. Kwast)의 4층 문화이론에 의하면, 문화는 표면적 차원과 심층적 차원으로 나뉠 수 있고, 심층적 차원의 세계관은 표층적 차원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했다(Winter et al. 2012, 31-34). 따라서 몽골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세계관의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첫째, 몽골인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문화적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현재 몽골인들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둘째, 몽골인 선교사들이 속한 몽골교회의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몽골인 선교사들의 세계관과 숙명을 이해할 것이다. 셋째, 초기 정착자와 이중문화자인 몽골인 선교사들의 상황들에 대해 이해할 것이다.

 

II. 몽골인의 이해

몽골인 선교사들을 이해하기 위해 찰스 크래프트(Charles H. Kraft)의 문화인류학적 접근 모델, 그리고 수신자 지향적 커뮤니케이션 이론으로부터 발전된 모델과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 문화만을 하나님의 문화로 승인하지 않으시며, 특정 문화를 다른 문화에 비해 더 특별하게 편애하지도 않으신다는 성경적 문화상대주의 모델을 따랐다. 왜냐하면 성경은 고린도전서 9장 20-22절에서 다른 사람들의 문화 형식을 특정 문화의 형식으로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Kraft 2006, 225-28). 몽골인 선교사들을 이해하는데 있어 각 개인의 특성도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몽골인이라고 모두가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폴 히버트(Paul G Hiebert)도 윌리스(Wallace)의 말을 인용하면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 간의 신념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문화적인 세계관보다 개인의 세계관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Anthony F. C. Wallace 1956, 264-81: Hiebert 2021, 58에서 재인용).

히버트는 인간을 이해할 때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방법으로 바라봐야 함을 강조했다(2021, 29-352021, 29-35). 그래서 그는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문화의 세 가지 차원, 즉 한 집단이나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한 지식, 자라오면서 학습된 지식, 관념, 정신과 관련된 인지적 차원, 미적 감각, 음식, 옷의 취향, 감정, 태도와 관련된 정서적 차원, 그리고 옳고 그른, 귀하고 천한, 적절하고 적절하지 않는 등의 평가, 가치와 관련된 평가적 차원을 봐야 한다고 했다(2021, 39-43). 따라서 몽골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히버트가 주장한 인지적 차원, 정서적 차원, 평가적 차원의 관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문화의 인지적 차원에서 그들은 자라오면서 사회와 학교, TV나 대중매체, 인터넷 그리고 가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그것을 통해 형성된 신념과 정신은 무엇인가? 문화의 정서적 차원에서 그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에서 편안함을 느끼나? 문화의 평가적 차원에서 그들은 어떤 것에 보다 큰 가치를 두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음으로써 몽골인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1) 몽골인의 문화인류학적 배경과 특성

문화의 인지적 차원에서 볼 때 몽골인의 문화적 배경이 되는 관념과 정신은 자연숭배와 유목민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이것은 몽골인들이 살아가는 자연환경과 일상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되고 인식되었다. 해발 1000m 이상의 광활한 초원지대, 높고 푸른 하늘과 땅의 지평선이 닿은 몽골고원에서 몽골인들은 하늘을 보며 하늘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몽골어로 ‘하늘’은 ‘텡게르(Тэнгэр)’인데, 몽골인들은 자연계의 초자연적인 현상이 ‘영원한 하늘(믕흐 텡게르, Мөнх Тэнгэр)’ 또는 ‘푸른 하늘(흐흐 텡게르, Хөх Тэнгэр)’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계의 모든 흥망성쇠도 ‘텡게르(Тэнгэр)’의 뜻에 달여 있다고 믿었으며, ‘텡게르(Тэнгэр)’을 소홀히 대함으로 불행을 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Jamslan 2015, 50). 이러한 자연관에서 몽골인의 인문경관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즉 몽골의 자연환경과 자연을 바라보는 그들의 세계관에서 유목민으로서의 삶의 원리와 양식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것이다(이은숙 2001, 58). 19세기 부리야트 출신의 대표적인 몽골 연구학자인 반자로프(Borzhi Banzarov)는 샤머니즘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형성된 특정한 종교적 전통이 아닌 유목민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적응해야 하는 종교의 보편적 현상으로 보았다(Atwood 1996, 113). 다시 말해 샤머니즘은 몽골인들에게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고 정체성이다. 샤머니즘의 신앙은 지극히 기복적이고 가족 중심적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 혹은 좀더 확대해서 자기 부족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당연히 이기적이고 윤리적인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권문상 2013, 78-79). 도덕률을 포함한 공통의 경전도 없을뿐더러 각각의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신을 찾기에 공동체성과 윤리성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몽골 문화의 정서적 차원을 살펴보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몽골인들의 인문경관은 자연관을 기초로 한다. 그러므로 몽골인들이 정서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은 모두 그들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먼저 그들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추운 겨울을 이기게 하는 기름진 고기와 유제품을 좋아한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양 기름을 바르고 심지어는 마시는 차도 지방이 많은 우유를 넣어 끓인다. 또 몽골인은 이동과 여행을 좋아한다. 처음부터 이동과 여행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양질의 목축지를 얻기 위해 이동하다 보니 이동과 여행이 일상이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여행을 할 때 그들의 에너지는 활성화된다. 그들은 잠시 익숙한 곳을 떠나 늘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며 살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몽골인들의 문화적응력은 상당히 뛰어나다. 이 말은 문화적응은 빠르나 장기간의 정착은 어렵다고 해석할 수 있다. 주거에 있어서도 유목의 문화적 흔적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수도 울란바타르의 외곽지역은 양털로 덮은 원형의 전통 가옥인 게르로 차고 넘친다.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도 여름이 되면 반드시 도시를 떠난다. 화려하진 않지만 작고 소박한 여름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름내내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출퇴근하거나 주말을 그곳에서 보낸다. 여름집이 없는 사람들은 시골의 친척 집에서 여름을 보내거나 자주 쉬러 가는 것을 선호한다. 이처럼 몽골인들은 여름 내내 잘 먹고 잘 쉰다. 이것은 몽골의 가축들이 여름내내 잘 먹고 살을 찌워 겨울을 잘 나는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확실히 쉴 줄 아는 여유와 느긋함을 가진 민족이다. 이것은 “빨리 빨리” 문화를 가진 한국인들로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행복이다.

마지막으로 몽골 문화의 평가적 차원을 살펴보면, 그들의 가치 기준은 한국인들과 분명히 다르다. 인지적 차원과 정서적 차원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몽골인의 가치체계는 그들의 독특한 자연관과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그것을 거부하기보다 바로 숙명, 즉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자연의 순리를 거슬려 무엇을 하려고 애쓰기 보다 자연의 순리에 복종하는 느긋함을 배워왔다(이은숙 2001, 53). 이러한 몽골인들의 가치체계는 항상 외세의 침략 속에 좁은 대지를 지키고 생존했던,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비교하며 살아왔던, 그래서 차별과 무시를 견디지 못하는 한국인들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몽골인들은 차별과 무시보다 패배를 더 싫어한다. 패배는 부족의 운명과 생명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습성은 몽골 전통 씨름 경기 때 하는 특이한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바로 패자는 승자의 팔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지나감으로 승자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에 패한 자는 죽거나 승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당시의 배경과 관련되어 있다. 그들의 패배를 싫어하는 문화적 습성은 실수로 다른 사람의 발을 밟았을 때도 드러난다. 상대의 발을 실수로 밟았을 경우 반드시 악수를 청하여 고의가 아니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에서 공격에 대해 민감하고 패배를 싫어하며 승자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선 충성을 다하는 그들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아울러 몽골인들은 사소한 일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처럼 인사성이 밝지도 않을뿐더러 사소한 일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 유목 생활을 하다 보면 이웃이라고는 오직 가족뿐이다. 매일 함께 살아가는 가족에게는 굳이 말로 일일이 인사치레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신 가끔 찾아오는 손님은 지극정성으로 대접한다.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적 배경을 모르는 한국인 선교사들은 인사성이 밝지 않은 그들의 태도에 쉽게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 몽골인들의 생활환경이 도시화되면서 이러한 기질에도 다소 변화가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한다. 유교문화 속에서 수도 없이 인사 예절의 훈련을 받아온 한국인의 눈높이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반면에 몽골인에게는 주거생활 예법, 음식접대 예법, 육아, 결혼, 장례와 관련된 규범들이 발달되어 있고 금기도 많다. 그 이유는 부정한 일을 행하여 신의 노여움을 사거나 귀신의 해를 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2) 현대 몽골인의 문화인류학적 특성

인식적 차원에서 현대 몽골인에게 공유되고 학습되는 가장 주된 지식과 정신은 유목민의 자연관을 배경으로 한 샤머니즘이다. 현대 몽골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상에서 샤머니즘을 체득하고, 학교에 가서는 전통 신앙과 정신문화를 배운다. 비록 산업화와 도시화로 유목문화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 여전히 유목민의 문화적 DNA는 몽골인들 속에 녹아 있다. 예를 들어 도시를 벗어나면 바로 펼쳐지는 유목의 자연환경과 여전히 도시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전통 가옥인 게르를 보면서 스스로 유목민인 것을 인식한다. 매년 반복적으로 지켜지는 차강사르, 나담 등의 전통 민속 절기를 통해서도 유목민의 자연관은 그들 속에 각인되고 몽골인이라는 정체성은 강화된다. 한 때 샤머니즘은 1600년대 이후 몽골불교(라마불교)의 장려와 공산주의 체제하의 종교 말살 정책으로 인해 그 영향력을 잃었지만, 1990년 개방화 이후 다시 부활하여 계속해서 현대 몽골인의 정신문화의 지주이자 문화적 유산이 되고 있다(Jamslan 2015, 51). 몽골인 가운데 샤머니즘의 DNA는 사라진 적이 없다. 몽골불교가 부흥했을 때도 샤머니즘은 몽골불교 속에 침투하여 불교를 상당히 샤머니즘화 하였다. 몽골불교는 무당의 제의식처럼 여러 악기를 동원하여 시끄럽게 예불을 드리고 ‘후르드(Хүрд)’라고 불리는 경전이 새겨진 원통을 돌리는 것으로 경전을 읽은 것을 대신할 만큼 샤머니즘적 요소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공산주의 치하에서도 샤머니즘은 조용히 숨을 죽였을 뿐 몽골인의 정신 속에 살아있었다. 몽골 국립대학교 교수인 바야사크 잠스란 케레이드의 주장에 의하면, 2000년대 이후로 매년 수 천 명의 샤먼들이 탄생하고 있다고 한다. ‘텡게르(하늘)’에 의해 신의 대리자로 각인된 수많은 남녀 샤먼들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 주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400~500년 된 조상의 영혼들이 샤먼을 통해 내려와서 몽골인들에게 매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며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2015, 54-56).

현대 몽골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두번째 정신은 칭기즈칸 정신이다. 몽골을 지배하고자 했던 세력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칭기즈칸의 혼의 부활이었다. 소련의 위성 통치가 있었던 공산주의 시절 통치자들은 칭기즈칸의 혼의 부활을 철저하게 막았다. 따라서 칭기즈칸에 대한 언급은 당시 금기였고 칭기즈칸에 관한 연구 또한 상당 기간 금지되었다. 그러나 1990년 개방화 이후 비로소 칭기즈칸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칭기즈칸의 혼은 부활하게 되었다. 이 칭기즈칸 정신은 민족주의와 샤머니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몽골인 푸레브 교수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샤먼이었으며, 신이 자신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따름으로써 큰 도시와 거대한 나라들을 정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Weatherford 2005, 33, 45). 또 칭기즈칸은 전쟁하기 전 반드시 높은 산에 올라가 하늘신께 제의를 드리고 가호를 비는 의식을 행하곤 했다(이안나 2014, 243). 결국 칭기즈칸 정신의 부활은 바로 몽골 정신의 부활이요 샤머니즘의 부활인 것이다.

현대 몽골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번째 정신은 세속주의이다. 이는 경제적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영향 아래 부의 축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다. 한편 일부 사회주의를 경험한 몽골인들은 세속적 자본주의의 각종 폐해를 보며 과거의 사회주의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대 몽골인의 세속주의가 그들의 전통 정신인 샤머니즘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샤머니즘의 기복적, 이기적, 비종교적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몽골의 세속주의와 샤머니즘은 공생관계에 있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샤머니즘 부흥의 동력이 되고 있다.

정서적 차원에서 현대 몽골인의 문화인류학적 특성을 살펴보면, 앞서 살펴본 유목 문화적 특성은 축소되고 서구문화와 K-문화가 확산되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도시에 거주하는 몽골인들 중,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도시문화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입맛, 취향, 스타일 등이 달라진 것이다. 특히 스마트 폰의 보급과 인터넷의 확산 속에 태어난 몽골의 MZ세대는 이전의 몽골인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문화적 특성을 소유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통적인 유목민 문화가 아닌 전세계 MZ세대가 공통적으로 소유한 문화로, SNS를 통해 접한 서구 문화나 한류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2019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코로나 19 팬데믹 때에 SNS 사용 증가로 인하여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평가적 차원에서 현대 몽골인의 문화인류학적 특성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유목문화와 샤머니즘의 문화적 특성을 근간으로 하면서 그 위에 역사적으로 거쳐온 공산주의 사상과 자본주의 사상의 새로운 가치들이 첨가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회주의에서 영향을 받는 가장 큰 가치는 무신론과 유물사관이다. 그리고 여성 인권의 신장이다. 이것은 남녀평등을 넘어 가정에서 여성의 위상이 더 높아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또한 공동분배를 목표로 하는 공산주의적 노동환경은 유목민족 특유의 느긋함과 어우러져 일을 내일로 미루는 마라가쉬(Маргааш; 몽골어로 내일이라는 뜻) 문화를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관공서에 일을 보러 갔는데 담당자가 업무 처리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항상 내일 오라고 한다. 그래서 심지어 몽골인들 사이에는 “몽골의 내일은 끝나지 않는다(Монголын маргааш дуусахгүй)”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공산주의로 인해 나타난 또 하나의 문화는 다라까(Дарга; 몽골어로 장(長)이라는 뜻) 문화이다. 다라까의 눈치를 보며 책임을 회피하고 수동적이 되는 것이다. 다라까가 있으면 열심히 하고 다라까가 없으면 대충하는 식이다. 이것은 몽골식 관료주의로 공권력을 가진 권위자를 아주 두려워하며 권력 앞에 약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화들은 몽골인의 성실성 형성을 방해한다. 반면 다라까 문화의 긍정적 측면은 충성심의 자극이다. 이들은 부족사회에서부터 한 리더에 충성을 다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자본주의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가치는 자유와 돈, 그리고 뉴에이지와 포스터모던주의 등이다. 이것들은 샤머니즘의 부흥과 더불어 반기독교주의로 나타난다. 개방화 이후 급성장했던 기독교가 정체를 넘어 감소 추세를 나타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III. 몽골교회의 이해

몽골인 선교사들은 몽골교회의 일원이다. 따라서 몽골인 선교사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영적인 토양이 되는 몽골교회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히 몽골교회의 이해가 필요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사실 때문이다. 첫째, 몽골교회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통하여 몽골인 선교사들에게 필요한 리더십 개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둘째, 몽골교회의 역사로부터 몽골인 선교사들만의 독특한 숙명의식(Destiny)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몽골교회의 역사가 주는 함의와 몽골교회의 특성 등을 살펴보겠다.


(1) 몽골교회의 역사적 배경 

몽골교회의 역사가 주는 함의와 몽골교회의 특성을 알기 위해 몽골교회의 태동과 흥망성쇠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몽골교회의 역사는 크게 다섯 시기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제1시기는 635년부터 1206년까지로 페르시아 네스토리안 교회의 선교로부터 칭기즈칸의 등장까지이며, 제2시기는 몽골제국 시대(1206~1368), 제3시기는 몽골제국 시대 이후(1368~1765), 제4시기는 근대이전(1765~1990), 제5시기는 1990년 개방 이후이다(Hugh P. Kemp 2001: 전호진 2002, 262에서 재인용). 각 시기별 특징을 요약하면, 제1시기는 동방교회, 특히 네스토리안 교회와 튀르크 교회에 의해 전래된 몽골교회, 제2시기는 칭기즈칸 몽골제국과 함께 성장한 몽골교회, 제3시기는 몽골제국의 쇠퇴와 함께 쇠퇴한 몽골교회, 제4시기는 역사에서 사라져 단절된 역사를 가진 몽골교회, 제5시기는 현대에 와서 부활하여 빠른 성장을 보였으나 동일하게 빠르게 정체되고 침몰하는 몽골교회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이성근 2009, 11-66).

그렇다면 중세 몽골교회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 몽골인들이 중세 몽골교회가 존재했던 사실조차 모를 만큼 교회사의 큰 단절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몽골교회가 토착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음전파는 탐다운(Top-down) 방식으로 이뤄져 풀뿌리 교회가 세워지지 못했고 기독교는 단지 칸의 통치 수단에 불과했다. 그리고 성경이 번역되지 않았고 사제들은 종교활동을 할 때 몽골어가 아닌 시리아어를 사용하였다. 이로 인해 성경에 기초한 제자도가 부재했으며 형식적인 신자들만 즐비하였다. 둘째, 몽골인들의 다원주의적 종교관 때문이다. 이런 종교관 때문에 기독교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던 반면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고 신앙을 뿌리를 내리는 데는 방해가 되었다. 셋째, 몽골 네스토리안 교회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경교비를 살펴보면 당시의 교회는 매우 선교적이었으나 십자가 표식의 강조, 동쪽을 향해 드리는 예배, 사제들의 주술 사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Moffett 2004, 639-40). 이로 미루어 볼 때 당시 몽골교회는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샤머니즘과 불교의 요소가 섞여 혼합주의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넷째, 몽골인 교회 지도자 양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첫번째 이유와 연결된다. 중세 몽골교회에는 네스토리안 교회 총대주교 야흐발라흐 3세를 비롯하여 많은 지도자들이 배출되었으나 그들 대부분 튀르크계나 시리아에서 온 사제였으며 정작 몽골인들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몽골 네스토리안 교회가 세속화되고 타락했기 때문이다. 당시 가톨릭 선교사 루브룩이 네스토리안 사제들의 음주와 고리대금업을 통한 부의 축척, 그리고 중혼에 대해 고발한 것과 몽케칸이 루브룩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성경을 주셨으나, 당신은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당을 주셨고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를 행하며, 평화롭게 산다”라고 한 말은 이것을 잘 반증한다(2004, 642). 여섯째, 몽골제국 내 네스토리안 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분열 때문이다. 옹구트 왕자 조지가 네스토리안 교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실을 유추해 볼 때 그들의 선교적 관심은 불신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를 확정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두 기독교는 서로를 비방하고 경쟁하는 불필요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었다. 몽골제국이 왕권 다툼과 분열로 인하여 자멸했던 것처럼 중세 몽골 기독교도 그와 비슷했다. 일곱째, 복음의 야성과 운동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네스토리안 기독교는 원래 선교적이었다. 하지만 쿠빌라이칸이 제국의 수도를 북경으로 옮겨 정착하기 시작한 것과 맞물려 종전의 이동용 천막 예배당을 포기하고 안락한 예배당과 수도원에 안주하게 되면서 복음의 야성과 운동성은 죽고 말았다.


(2) 현대 몽골교회의 특성 

1990년 개방화이후 활발한 선교에 의해 부활한 현대 몽골교회의 첫 번째 특징은 몽골인의 전통적 자연관에 큰 방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샤머니즘과 티베트(라마) 불교는 기독교 신앙이 몽골인들에게 깊이 뿌리내리는 것을 방해했다. 몽골인들은 기독교를 쉽게 수용하고 동시에 쉽게 버렸다. 또한 몽골인 성도들은 상당히 기복적이라 찬양과 기도에 특별한 열정을 가진 반면 성경말씀에 대한 열정은 약하다. 뜨겁게 예배를 드리고 성령 충만의 경험을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삶의 열매는 없다. 매일 말씀을 묵상함으로 말씀이 체내화되는 훈련과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샤머니즘의 카타르시스 영성은 기독교가 샤머니즘화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김은호 2014, 583-84). 이러한 몽골인의 신심활동의 특징은 몽골 불교의 신심활동에서도 나타난다. 경전을 읽는 대신 후르드(Хүрд)라는 둥근 통을 돌리는 것으로 경전을 읽는 것을 대체하고, 오체투지를 통해 구원에 이른다고 믿는다. 이처럼 몽골인들의 신심활동의 특징은 경전을 읽기보다 활동하는 것을 선호하고 샤머니즘의 카타르시스 영성을 추구한다. 현대 몽골교회에서는 중세 몽골교회와는 달리 성경이 몽골어로 번역되었고 선교사들과 현지인 지도자들이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몽골인들은 말씀보다 찬양과 기도를 통한 기복적 신앙 체험을 선호한다.

현대 몽골교회의 두 번째 특징은 몽골인의 전통적인 인문경관의 배경 위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혈맹으로 맺어진 형제애를 중시했기 때문에 몽골인 사역자들 사이에는 형재애가 강하다. 이것은 사역자를 부르는 호칭에도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유독 ‘목사’라는 호칭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몽골의 경우 그냥 서로 형, 동생으로 부른다. 최근 한국교회의 문화가 들어와 ‘목사’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형제애에 대한 강조점은 변함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몽골교회의 대표격인 원로목사 엥흐태왕과 두게르마는 ‘한인선교사 몽골선교 15주년에 대한 회고와 제안’이라는 글에서 몽골교회의 연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인 선교사들에게 일침을 날린다.

한국 선교사들이 지향하는 연합의 청사진도 조금 포커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현재 한인 선교사들이 보여주고 있는 연합은 겉으로 보기에는 연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당파로 나뉘어 있고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닌 주지의 사실입니다. 특별히 성경에 나오는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독교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파(Donomination)'란 단어를 연합의 진이 된 이 몽골 땅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내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설사 이것을 쫓아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름을 바꾸다’라는 뜻을 가진 이 라틴어 단어의 사용이라도 금지해야만 할 것입니다(Yamranz and Vanluu 2006, 56).

엥흐태왕과 두게르마의 바램처럼 현재 몽골교회는 몽골복음주의협의회를 중심으로 교파를 초월한 연합을 추구하고 있다. 많은 교회들과 현지인 지도자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교단 배경으로 갖고 있지만 민족교회를 출신 교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몽골인의 전통적 인문경관의 영향으로 인한 몽골교회의 또 다른 특징은 한 가지 사역을 꾸준히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람을 키우는 제자 양육 사역을 어려워한다. 이것은 중세 몽골교회가 쇠퇴한 이유 중 하나인 제자운동을 통한 풀뿌리 신앙운동의 결여와 현지인 지도자 세우기의 실패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 문제는 현대 몽골교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래 <표 1>에서 보듯이 현대 몽골교회는 급속히 성장하다 얼마가지 않아 성장을 멈추었고 벌써 쇠퇴하고 있다.


<표 1> 몽골 기독교인 수 및 비율

(몽골선교지수 2021)


현대 몽골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던 2003년 11월 몽골복음주의협의회는 창립 7주년을 맞아 “몽골교회 우리는 전 세계의 몽골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한다”라는 비전 선언문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듬해 2004년 몽골교회는 ‘이흐 호랄다이(Их хуралдай; 큰 회의라는 뜻)’에서 2020년까지 몽골 인구의 10%를 복음화하자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천명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20년의 결과는 <표 1>에서 보듯이 도리어 1.4%로 줄었다. 몽골교회는 2010년대 정체기를 겪다가 결국 짧은 기간 안에 쇠퇴기로 넘어간 것이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필자는 그 이유가 제자화의 실패, 현지인 지도자 세우기의 실패라고 진단한다. 로버트 클린턴은 제3세계 교회의 여러 곳곳에서 지도자보다는 교회가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몽골교회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Clinton 2020, 281).

몽골 선교에서 한국인 선교사들은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인종학적, 지리적으로 가까워 많은 한국인 선교사들이 복음전파와 교회개척 그리고 사회봉사와 구제활동에 참여했고 한국교회는 이에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그들의 수고를 감히 평가절하할 수 없겠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경우 한국인 선교사 주도의 한국식 교회를 이식하는데 그침으로써 몽골 토착교회 설립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이다(Yamranz and Vanluu 2006, 53). 이에 반해 적극적으로 평신도 지도자를 세우고, 현지인 제자화와 현지인 지도자 양성에 집중하며, 현지인 지도자에게 시의적절하게 이양한 교회는 건강한 토착교회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박해영 2019, 76-77).

현지인 지도자 리더십 개발의 문제는 ‘몽골 선교지수 2021’의 몽골 선교의 최우선 10대 과제에 대한 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이대학 2021).

 

<표 2> 몽골 선교지수 2021: 몽골 선교의 최우선 10대 과제

(몽골선교지수 2021)


이 결과를 분석하면 첫 번째를 제외하고 두 번째부터 일곱 번째까지 근소한 차이로 모두 현지인 리더십 개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교회가 없는 지역의 교회개척도 결국은 사람을 통해서 이뤄지기에 현지인 리더십 개발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홉 번째 각 분야의 지도자 양성과 열 번째 복음전도 활동 강화도 모두 현지인 리더십 개발에 관련된 부분이다. 여덟 번째 이단 대응을 위한 협력도 리더십 개발과 관련되어 있다. 종합해 보면 현재 몽골 선교의 최우선 10대 과제는 한마디로 현지인 리더십 개발이고, 이것은 현대 몽골교회가 당면한 문제이자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3) 몽골교회의 숙명 

클린턴은 자신의 저서 지도자평생개발론에서 효과적인 지도자의 일곱 가지 특성에 대해 말하는데 그 중 하나는 ‘효과적인 지도자는 자신의 숙명을 점차 확실하게 인식한다’라고 했다(Clinton 2011, 29-32). 한 개인뿐 아니라 한 민족교회도 자신의 숙명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효과적인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숙명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미래에도 역사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역사의 연속성을 발견함으로써 가능하다(2011, 34). 따라서 몽골교회의 역사 가운데 일어난 하나님의 간섭과 다루심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것은 몽골교회의 숙명을 발견하고 숙명의식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2011, 152-54). 숙명은 과거의 긍정적인 역사뿐 아니라 부정적인 역사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실패의 역사를 깊이 회고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고유한 숙명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명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 즉 비전과 소명을 견인한다.

앞서 살펴본 몽골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특성에서 필자는 두 가지 숙명을 도출하였다. 첫째, 몽골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위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성경과 제자화를 기초로 한 현지인 지도자 양성과 리더십 개발이다. 둘째, 칭기즈칸이 차지한 땅으로 다시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몽골교회는 동방교회와 튀르크 교회, 그리고 세계교회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되었으며, 특별히 이슬람을 정복하고 동방교회를 부흥시켰던 영화를 재현함과 동시에 칭기즈칸의 후예로서 정복 전쟁의 피 흘림에 대한 회개의 숙명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숙명에 대한 정당성은 앞서 살펴본 중세 몽골교회의 실패와 현대 몽골교회의 특징에서 발견하였다. 두 번째 숙명에 대한 정당성은 성경의 가르침과 몽골교회 지도자들의 의식 조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래 <표 3>에서 보는 것처럼 몽골교회 지도자들은 ‘몽골교회가 과거 칭기즈칸이 정복했던 곳으로 다시 복음을 들고 가는 것은 하나님이 몽골교회에 주신 특별한 사명이다’라는 명제에 88%(69명)가 동의했다(이성근 2009, 92-97).


<표 3> 몽골교회 지도자들의 의식 조사

(이성근 2009, 97)



IV.  튀르키예에 온 몽골인 선교사의 상황적 이해

튀르키예에 온 몽골인 선교사들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왜냐하면 상황은 영적, 사역적, 그리고 전략적 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종종 지도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략을 얻는데 유익하기 때문이다(Clinton 2011, 262). 아울러 휴즈(Hughes), 기넷(Ginnet), 그리고 커피(Curphey)도 리더십의 세 가지 요소로 리더, 추종자, 그리고 상황을 꼽으면서 상황이 리더십에 끼치는 영향력을 강조했다(신선묵 April 30, 2021.). 튀르키예에 온 몽골인 선교사들의 상황은 쉬운 문화적응과 어려운 정착, 그리고 이중문화 공동체로 설명할 수 있다.


(1) 쉬운 문화적응과 어려운 정착 

몽골인들의 문화인류학적 특성에서 보았듯이 몽골인 사역자들은 단기적인 정착과 문화적응은 뛰어나지만, 장기적인 정착은 어려워한다. 즉 단기사역에는 강하지만 장기사역에는 약하다. 몽골인 선교사들이 장기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선 재정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재정은 몽골인 선교사들이 장기사역을 하는데 꼭 필요한 부분이자 가장 방해받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현재 튀르키예에 온 몽골인 선교사들의 재정 자립도는 30%정도에 불과하다. 즉 전체 재정에서 몽골교회가 감당하는 비율은 30%정도이며 나머지는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몽골인 선교사들은 의도하지 않게 부족한 재정을 동원하고 지원하는 필자에게 종속될 수 있는 위험한 구조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멘토인 한국인 선교사와 몽골인 선교사 간의 건강한 관계형성을 방해한다. 따라서 한국인 선교사가 몽골인 선교사에게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문제는 사회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관계라는 관점에서 깊이 다뤄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 선교사와 몽골인 선교사들의 관계가 종속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한국인 선교사는 몽골교회 원로 목사인 잉흐태왕과 두게르마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간혹 어떤 한인선교사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기반이나 직위, 지식, 특히 재정적인 지원능력을 내세워 교회의 권력을 틀어쥐고 독재적인 방식으로 사역하면서 몽골인들을 동역자가 아니라 하수인으로 대하기도 하는 바 이런 방식은 몽골인들의 신경을 자극할 수도 있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몽골 지도자들에 대하여 열린 마음과 열린 관계를 유지해가며, 뒤에서 밀어주고 신뢰하며 권력을 분권화하여 나중에는 온전히 위임하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Yamranz and Vanluu 2006, 54).

이에 한국인 선교사는 몽골인 선교사를 존중하는 동반자적 관점과 자세를 가져야 하고, 절대 재정을 권력으로 사용하지 않는 성숙함을 겸비해야 한다. 그리고 재정의 참 공급처는 한국인 선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한국인 선교사는 고작 종,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몽골인 선교사들의 재정 자립에 있어 윌리엄 스몰리(William Smallry)가 주장한 것처럼 재정을 어디서 얼마만큼 스스로 충당할 것인가의 문제에 집중하기 보다 재정 운용 능력이 얼마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Winter et al. 2012, 309). 그러므로 한국인 선교사는 몽골인 선교사들이 재정을 스스로 잘 운용할 수 있도록 돕고 결국에는 재정 집행권을 이양하는 일이 필요하다.


(2) 이중문화 공동체 

튀르키예 RAN선교회 공동체는 몽골인 선교사들과 한국인 선교사들이 함께하는 이중문화 공동체이다. 현재 이중문화 공동체는 함께 제3의 튀르키예인에게 선교하는 과정에서 삼중문화 공동체의 모습을 띄기도 한다. 일찍이 몽골인들은 이중문화 공동체 혹은 이중문화 커뮤니케이션에 능했다. 왜냐하면 과거 몽골제국은 몽골인과 튀르크인의 이중문화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이중문화 공동체는 선교에 효율성을 제공한다. 히버트는 이중문화 공동체에 대해 복음을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건너가게 해주는 다리라고 표현하면서 선교의 효율성은 이중문화 공동체의 질적 수준과 그 안의 관계에 크게 좌우된다고 했다(Hiebert 2021, 354). 이처럼 이중문화 공동체는 선교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선교의 효율성을 높인다. 칼리 H. 도드(Carley H. Dodd)도 이중문화 공동체의 장점을 지적하면서 이중문화 공동체는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제3의 문화, 즉 유사성의 문화를 개척함으로써 긍정적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Dodd 2008, 24). 따라서 몽골인 선교사들과 한국인 선교사들이 함께하는 이중문화 공동체의 질적 수준을 높인다면 긍정적인 제3의 문화를 창조하게 되고, 이 제3의 문화는 성경적인 문화에 근접한 초문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중문화 공동체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무엇보다 이중문화 간의 의사소통(Intercultural Communication)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문화간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서로 다른 문화의 인식, 즉 인식된 문화의 차이(Perceived cultural differences)는 불확실성과 불안을 유발하고 결국 건강한 이중문화 공동체를 방해하는 갈등의 불씨가 되기 때문이다(2008, 24). 반면 문화간 의사소통에서 불확실성과 불안을 줄이고, 서로 신뢰하고 편안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성경적인 제3의 문화를 창조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이중문화 공동체 내에서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선 실제적인 갈등의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많은 갈등의 배경에는 문화 기대에 대한 오해가 깔려 있다는데 동의한다. 도드는 문화 기대에 대한 오해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자기 노출과 개방의 정도, 계층과 지위의 문제, 격식의 문제, 업무 방법, 수용성과 감정이입의 문제, 의사소통 회피의 문제 등을 꼽았다(2008, 302). 그리고 해결 방법으로 균형이론을 소개한다. 균형 이론이란 분명한 원칙에 대해 둘 혹은 다수의 사람 사이의 개인적 태도와 다른 사람의 태도를 분석하고 이해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외에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 상호간 부드럽게 하는 과정을 적용하는 것, 중재 시스템과 같은 갈등 방지 시스템을 사전에 적용하는 것, 감정이입과 경청을 하는 것, 그리고 감정 표출을 피하고, 한 번에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자기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기보다 내 감정에 책임을 지고, 긍정적인 의사소통의 분위기를 개발하는 갈등 축소 기술을 사용하는 것 등의 방법이 있다(2008, 313-14). 아울러 조직의 갈등은 결정을 내리는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기도 하다. 따라서 갈등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은 문화를 고려한 적절한 방식을 찾는 것이다(2008, 317). 그렇다면 몽골인 선교사들에게 가장 문화적으로 적합한 결정 방식은 무엇일까? 몽골제국 시대에는 “이흐 호랄따이(Их хуралдай; 큰 회의)”를 통하여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였다. 아마도 몽골인에게는 자유토론과 충분한 토론을 통해 모두의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이 가장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균형이론의 방법과도 일맥상통한다.

문화간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대인관계에 기반한 네트워크 문화에 대해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네트워크 문화의 사회적 영향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질성 원칙, 최적 이질성, 그리고 신뢰성을 사용하는 것은 효과적이다(2008, 310-41). 동질성 원칙이란 동질 그룹 안에서 더 큰 영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2008, 333-37). 로저스의 연구에서 보듯이 동질 그룹 안에서는 이질 그룹에서보다 의사소통이 더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설득도 더 쉬워진다(Everett M. Rogers 1995: 2008, 336에서 재인용) (Everett M. Rogers 1995: 2008, 336에서 재인용). 최적 이질성은 사회적으로 동질성을 가지나 능력과 정보면에서 허용된 오차 범위의 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말한다. 최적 이질성이 중요한 이유는 너무 이질적이라면 소통에 어려움이 있고, 차이가 없이 완전 동일하다면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우고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성은 불안과 불확실함을 감소시키고, 수행능력을 사용할 동기를 제공하고, 사소한 실수와 관계의 약한 고리를 뛰어넘게 하여 의사소통 적응을 강화하고, 성공적인 제3의 문화를 개발을 가능하게 한다(2008, 333-41).

효과적인 문화간 의사소통에 대한 답을 찾는데 뷸라 로를리히(Beulah Rohrlich)의 문화간 결혼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통찰을 준다. 로를리히는 문화간 결혼에서 의사소통만이 유일하고 가장 효과적인 요소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중간점 화해(배우자들은 각자의 위치 사이에 있는 해결책에 동의한다), 혼합 적응(양쪽 문화의 조합은 의식적으로 적응된다), 창조적 적응(배우자들은 새로운 행동 패턴을 선호해 각각의 문화를 포기하기로 결정한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Beulah Rohrlich 1988, 35-44: 2008, 121에서 재인용). 이것을 필자와 몽골인 선교사들과의 관계에 적용한다면 서로 양보하여 중간점 화해를 하고, 서로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혼합 적응을 하며, 나아가 창조적 적응을 통하여 각자의 문화를 내려놓고 제3의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결국 문화간 건강한 수행능력이 문화간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2008, 280). 이 문화간 효과는 새로운 제3의 문화에 적응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와 RAN선교회 몽골인 선교사 사이에는 문화의 차이가 적은 편이다. 왜냐하면 필자는 오랫동안 몽골에서 생활하면서 몽골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몽골인 선교사들과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오랜 기간 동고동락하면서 신뢰관계가 형성되었고 개인적인 상황과 성향까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실 번스타인(Basil Bernstein)의 주장처럼 공동 경험을 가지고 있어 언어적 오류를 초월하고, 서로에게 익숙한 규약으로 사용함으로써 문화간 의사소통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2008, 198).

한국인 선교사와 몽골인 선교사의 이중문화공동체에서 한국인 선교사의 역할은 분명하다. 그것은 촉진자이다. 1953년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는 “노르가이가 없었다면 난 에베레스트산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이홍빈 2017). 노르가이는 힐러리와 함께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셰르파이다. 노르가이는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기 전 이미 여섯 차례의 등정을 시도한 경험이 있어 당시 에베레스트산 등정에 있어 최고의 경험자요 전문가이자 안내자였다. 뿐만 아니라 노르가이는 다른 셰르파처럼 산악지역 등반에 최적화된 세포대사를 하는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에드먼드 힐러리의 등정에 기꺼이 조연의 자리를 자처하여 힐러리의 짐꾼, 안내자, 그리고 생사를 함께한 동반자가 되었다. 인류 최초의 에베레스트산 등정에 있어 최고의 촉진자였던 그의 역할은 오늘날도 아름답게 빛난다.

노르가이에게서 배우는 촉진자의 첫 번째 역할은 도우미이다. 13세기 몽골 군대에게 최고의 도우미가 있었는데 그것은 몽골 말(馬)이었다. 칭기즈칸의 초원 전쟁술을 보면 공격과 후퇴, 그리고 방어의 작전유형을 사용하면서 기동을 하는 형태였다(Khainzan 2009, 40). 따라서 지치지 않는 지속적인 기동력이 승리의 열쇠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지치지 않는 지속적인 기동력을 제공한 것은 바로 몽골 말(馬)이었다. 몽골 말(馬)은 비록 체구는 작지만 지구력이 매우 강해서 몽골군의 전술에 핵심 전력이 되었다. 이 사실은 칭기즈칸 군대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가 몽골 말(馬)이었다는 일부 학자들의 연구에 설득력을 높인다. 몽골 말(馬)은 전쟁에서뿐 아니라 몽골인들의 일상 삶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다. 살아서는 운송 수단이 되고, 젖과 유제품뿐 아니라 심지어는 마유주라는 술까지 제공하여 몽골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리고 죽어서는 고기, 가죽, 털을 제공하니 버릴 것이 하나 없다. 이처럼 몽골 말(馬)은 몽골인들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드리고, 몽골인들은 그 몽골 말(馬)을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로 여긴다. 여기서 몽골 말(馬)의 동반자적 촉진자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몽골 말(馬)은 몽골인의 용맹성을 극대화했고, 몽골 말(馬)의 지구력은 몽골인의 꾸준하지 못함을 보완했으며, 아울러 열악한 초원의 환경 가운데 몽골인에게 운송수단과 음식, 그리고 가죽을 제공함으로 팍스 몽골리카를 견인했다. 한국인 선교사들은 몽골 말(馬)에게서 도우미의 역할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국인 선교사가 몽골인 사역자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동반자가 되는 것이고, 희생과 섬김을 통해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고, 나아가 그들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그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촉진적 역할이다.

한국인 사역자는 몽골인 사역자의 좋은 도우미가 되기 위해 다음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몽골교회의 원로인 잉흐태왕 목사와 두게르마 목사는 몽골인 지도자들이 어리고 연약하다고 무시하지 말고 명예를 존중해 줄 것을, 몽골인 지도자들을 믿고 맡기고 세워줄 것을, 몽골인 지도자들을 자신의 권위 아래 가두어 몽골인 지도자들끼리 교제하고 연합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 것을 한국인 선교사들에게 정중히 부탁한다(Yamranz and Vanluu 2006, 54). 그리고 에릭과 로라아담스는 “공동체가 효과적이고 자연스럽게 확장될 때 외국인 사역자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배경과 전통과 편견이 새로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도행전 15장에 나타난 것과 같이 새신자들은 자신의 문화 속에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서 그들의 전통을 발전시킬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Adams and Eric 2018, 197).

노르가이에게서 배우는 촉진자의 두 번째 역할은 길잡이이다. 로버트 클린턴의 지도자 평생 개발론에 의하면, 튀르키에에 온 몽골인 선교사들의 리더십은 전환 과정(Transitional Processing)에 있다. 이 과정은 부상하는 지도자가 초기 성인으로 나아갈 때 일어나는 과정으로, 리더십 전환 시기는 삼십대 중반 혹은 더 늦게까지 지속될 수 있다. 이 과정은 이전의 구조에서 자유롭게 떨어져 나오는 ‘방출 과제’, 다가오는 국면을 위한 역할과 구조에 대해 결정하는 ‘첫 번째 과제’,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이전의 태도를 보다 인격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내면화 과제’를 포함한다. 따라서 고국을 떠나 튀르키예에 온 몽골인 선교사들의 리더십 개발을 위해 이 세 가지 과제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전환 과정에 나타나는 시험-확장이라는 리더십 개발 유형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시험에 대해서 믿음과 순종의 반응을 할 때 내적인 성장과 확장이 이뤄지고, 하나님께서는 시험-확장 과정에서 진실성 검증 (Integrity checks), 순종 검증(Obedience checks), 말씀 검증(Word checks)의 항목들을 사용하셔서 지도자의 성장과 확장을 꾀하시기 때문이다(Clinton 2011, 174-75). 이 세 가지 검증의 요소는 홀랜드가 주장한 균형 잡힌 학습을 위한 세가지 요소, 즉 존재(being), 행함(doing), 앎(knowing)과도 일맥상통한다(2011, 192). 다시 말해 진실성 검증은 존재(being), 순종 검증은 행함(doing), 그리고 말씀 검증은 앎(knowing)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리더십 전환 과정에 있는 몽골인 선교사들의 리더십 개발을 촉진하는 한국인 선교사의 역할은 먼저 리더십 전환 과정에 대하여 잘 이해하여 몽골인 선교사들의 리더십 전환 과정의 길잡이가 되어야 하고, 그 다음 몽골인 선교사들이 시험-확장 과정에서 진실성 검증, 순종 검증, 그리고 말씀 검증을 잘 통과하도록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한국인 사역자가 촉진 대상자의 시험-확장 과정에 대해 깊이 이해하여 과정을 잘 통과하도록 도울 수 있는 적합한 대안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인 사역자는 누르가이처럼 최고의 도우미이자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V.   결론

지금까지 튀르키예에 온 몽골인 선교사들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몽골인의 문화인류학적 특성, 몽골교회의 특성, 몽골인 선교사들의 상황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몽골인의 전통적 문화인류학적 특징은 하늘(텡게르)을 숭배하는 샤머니즘적 자연관을 가지고 있고, 이런 자연관을 바탕으로 자연환경과 밀접한 유목문화의 인문관을 따라 행동하고, 사사로운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자연의 순리에 복종하는 숙명의식을 갖고 있다. 현대 몽골인의 문화인류학적 특성은 몽골인의 전통적 샤머니즘 자연관을 계승하고, 부활한 칭기즈칸의 정신을 좇고, 부의 축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속주의 가치가 팽배하다.

몽골교회의 특성은 다원주의의 토대 위에 기독교를 장려한 칸의 종교정책에 따라 몽골제국과 함께 발흥했다가 함께 쇠퇴하였고, 이슬람의 억압에서 동방교회를 해방시킴으로 동방교회의 황금기를 열었지만 토착화에 실패함으로써 중세와 현대 사이에 교회사적 단절이 발생했고, 몽골인의 전통적 샤머니즘에 기반한 자연관 때문에 성경과 제자도보다 신비한 체험과 기복을 선호하고, 현지인 리더십 개발의 큰 과제를 안고 있고, 칭기즈칸이 정복했던 곳으로 다시 복음을 들고 가려는 선교적 숙명을 가진다.

튀르키예에 온 몽골인 선교사들의 상황적 특성으로는 유목민의 배경과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단기적 정착과 문화적응은 쉬워하나 장기적 정착은 어려워하고, 몽골인 선교사들과 한국인 선교사들이 함께 사역하는 이중문화 공동체의 돌봄을 받고 있고, 이중문화 공동체 안에서 효과적인 문화간 의사소통의 숙제를 갖고 있고, 한국인 선교사의 도우미와 길잡이 같은 촉진자 역할을 필요로 한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볼 때 몽골인 선교사들의 성공적인 정착과 문화적응, 그리고 실천적 리더십 개발을 촉진하는 방법으로는 첫째, 유목문화 배경의 자연관과 인문관의 강점인 용감성, 이동성, 느긋함과 여유 등을 극대화하고, 꾸준하지 못함, 게으름, 무책임성 등의 약점을 보완하는 멘토링이 필요하고, 둘째, 몽골교회의 과제인 리더십을 개발하는 멘토링과 과거 정복한 곳으로 다시 복음을 들고 가는 몽골교회의 숙명의식을 함양하는 멘토링이 필요하고, 셋째, 이중문화 공동체의 효과적인 문화간 의사소통을 통하여 제3의 성경적 문화를 창출할 필요가 있고, 넷째, 성과 위주보다 진실성 검증(being), 순종 검증(doing), 말씀 검증(knowing)을 통하여 시험-확장 과정을 잘 통과함으로써 리더십을 개발하는 로버트 클린턴의 지도자 평생 개발론적 접근이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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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골과 튀르키예에서 27년 활동 중인 GMI 선교사, KAICAM 목사, 풀러신학교 선교학 박사

[2] Revival of All Nations의 약자로 필자가 2007년 몽골에 설립한 초교파 해외 선교단체로서 전방개척선교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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