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은
Dec 20, 2025
창시자, 경전, 분포 및 규모, 기본 신앙, 이슬람의 신앙 실천, 이슬람 종파, 기독교와의 공존과 갈등
창시자
무함마드는 570년 무렵 홍해 연안에 위치한 국제도시 메카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메카는 교역이 활발한 도시였으며, 그중에서도 종교 활동은 중요한 산업이었다. 그는 메카의 유력 부족인 쿠라이시족 하심 가문 출신으로,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여섯 살에 고아가 되어 이후 할아버지와 삼촌의 보호 아래 성장하였다. 이러한 성장 배경으로 인해 과부와 고아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함마드는 25세에 부유한 미망인 상인이었던 카디자와 결혼하였으며,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약 25년 동안 다른 아내를 두지 않았다. 40세가 되던 해 영적인 체험을 통해 계시를 받았다고 믿었고, 이를 메카에서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을 아브라함의 전통을 계승한 인물로 인식하였으며, 새로운 신을 선포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유일신 신앙을 회복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활동은 메카의 종교 지도자들과 상인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에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은 622년 메디나로 집단 이주하였는데, 이를 히즈라(Hijra)라고 한다. 이 사건은 메디나에서 무슬림 공동체인 움마(Ummah)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슬람에서는 이를 원년으로 삼는다.
경전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담, 셋, 에녹, 아브라함 등에게도 계시를 내렸으나 해당 경전들은 소실되었고, 현재는 모세의 타우라(Tawrāt), 다윗의 자부르(Zabūr), 예수의 인질(Injīl), 그리고 무함마드를 통해 계시된 꾸란(Qur’ān)만이 전해진다고 믿는다.
초기 메카 시대에 무함마드는 유대인을 존중하며 그들을 ‘성서의 백성들(People of the Book)’이라 불렀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를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관계는 점차 변화하였다. Gabriel(2002)은 이러한 변화를 세 시기로 구분하였다.
제1기(메카 시대, 610~623년)
무함마드는 유대인의 개종을 시도하며 유대인과 그리스도인과의 공통점과 계시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당시 메카에는 정통 및 비정통 그리스도인이 공존하였으며, 에비온파와 네스토리우스파도 존재하였다. 이 시기 꾸란에는 유대인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내용이 많이 나타난다.
제2기(메디나 시대, 623~632년)
무함마드는 자신을 거부한 유대인들과 명확한 선을 긋고 군사적 충돌을 겪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그의 계시와 주장을 인정하지 않자, 꾸란에는 유대인에 대한 비판과 저주가 포함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이른바 ‘칼의 구절’과 같은 계시가 등장하며,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제압하라는 명령이 나타난다.
제3기(632년 이후)
유대인을 진압한 이후의 시기로, 무함마드와 유대인·그리스도인 사이의 관계적 거리감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성경 비판 구절과 성경 변질론이 형성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꾸란 이전의 경전들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에 의해 변질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무함마드 사후 초기에는 꾸란이 주로 암송을 통해 전승되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많은 암송자들이 전사하면서 꾸란이 소실될 위험이 커졌다. 이에 제1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는 꾸란의 기록을 수집하도록 하였고, 제3대 칼리프 우스만은 지역마다 달리 전해지던 판본을 통일하기 위해 표준본을 확정하고 나머지 사본들을 폐기하였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꾸란의 표준본이 완성되었으나, 계시의 정확한 연대순을 알기 어려워 각 수라는 대체로 분량을 기준으로 배열되었다. 그 결과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에 대해 우호적인 내용과 비판적인 내용이 혼재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꾸란 3:52, 3:55, 5:49, 5:69는 비교적 우호적인 반면, 꾸란 2:78, 2:79, 3:78, 3:79, 11:110 등은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 준다.
또한 꾸란은 나스크(naskh, 대체)와 만수크(mansūkh, 폐기)의 개념을 통해 계시가 후속 계시로 대체될 수 있음을 언급한다(꾸란 2:106). 이러한 특성은 꾸란 해석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분포 및 규모
이슬람은 중동,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카프카즈, 페르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아세안 지역 등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2010년부터 2020년 사이 전 세계 무슬림 인구는 약 3억 4,700만 명 증가하여 약 20억 명에 이르렀다(Pew Research Center, 2025).


기본 신앙
이슬람 신앙의 핵심은 여섯 가지 기본 교리, 즉 알이만(al-īmān)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타우히드(tawḥīd)로, 하나님의 절대적 유일성에 대한 신앙이다. 이슬람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내용이다. 무슬림이 되기 위한 신앙고백은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라는 선언으로, 이는 수라 112장에서 구체적으로 강조된다.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시고 영원하시며, 성자와 성부도 두지 않으셨으며 그분과 대등한 존재는 없다”라는 내용으로, 이를 어기는 것을 쉬르크(Shirk)라고 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한 죄로 간주한다.
둘째, 하나님의 천사들에 대한 믿음이다. 천사들은 특별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존재들이다. 그 중 네 명의 주요 천사장으로는 꾸란을 계시한 지브릴(가브리엘), 유대인의 보호자인 미카일(미가엘), 죽음의 천사 이즈라일, 심판 날 나팔을 부는 이스라필이 있으며, 이 외에도 인간의 선행과 악행을 기록하는 천사들이 인간의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있다고 믿는다.
셋째, 하나님의 거룩한 책들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은 사도와 선지자를 통해 경전을 전달하셨으며, 원래 104개의 경전이 있었으나 오늘날은 타우라(Tawrāt), 자부르(Zabūr), 인질(Injīl), 꾸란(Qur’ān)의 4개만이 전해진다고 믿는다.
넷째, 하나님의 선지자들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선지자와 사도를 보내어 뜻을 전하셨으며, 총 124,000명의 선지자가 있었다고 믿는다. 꾸란에는 그 중 25명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으며, 21명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들의 핵심 메시지는 항상 타우히드, 즉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교리였다. 선지자는 아담에서 시작하여 최후의 선지자인 무함마드에 이르렀으며, 그는 ‘라쑬’(사도) 또는 ‘나비’(예언자)로 불렸다.
다섯째, 사후생활 또는 최후의 심판 날에 대한 믿음이다. 인간은 생전의 선행과 악행에 따라 심판받으며, 선행을 한 무슬림은 낙원에서 순결한 배우자를 얻고, 악행을 한 이는 지옥의 형벌을 받는다.
여섯째, 정명 또는 숙명(꾸드르. Qadar)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행위와 존재를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발생하고 소멸한다는 운명론적 신앙이다.
이슬람의 신앙 실천
이슬람은 행동하는 종교이다. 무슬림이라면 ‘이바다’(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순종) 속에서 다섯 개의 기둥(오행)을 실천하도록 요구된다.
첫째, 신앙고백(샤하다, Shahādah)은 알라와 무함마드에 대한 신앙을 선포하는 것이다. “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단 라쑬울라”(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고백으로, 무슬림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선언만으로 충분하다. ‘아잔’을 통해 반복적으로 선포하며, 사우디아라비아 국기에도 이 문구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둘째, 의무기도(살라트, Ṣalāh)는 하루 다섯 차례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 전 ‘우두’라는 정결례를 거치며, 새벽, 정오, 늦은 오후, 해 질 녘, 밤에 기도한다. 기도는 아랍어로 이루어지며, 개인적인 간구는 ‘두아’로 추가할 수 있다.
셋째, 의무 희사금(자카트, Zakāt)은 연간 소득의 2.5%를 고아와 가난한 자에게 사용하는 의무적 자선이다. 자발적 자선인 ‘사다카’와는 구별된다.
넷째, 금식(사움, Ṣawm)은 라마단 달 동안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음식, 음료, 부부관계를 금하며, 죄 씻음과 영성훈련, 자선과 꾸란 낭송에 매진한다. 27일째 되는 ‘능력의 밤’은 꾸란의 계시가 임한 밤으로 특별히 기념된다.
다섯째, 성지순례(하지, Ḥajj)는 평생 한 번 이상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방문하도록 권장된다. 성지순례를 통해 모든 죄가 씻긴다고 믿으며, 재정이 부족한 경우 간접 참여도 가능하다. 순례를 마친 무슬림은 ‘하지(Hajji)’라는 존칭으로 불린다.
여기에 성전(지하드, Jihād)이 추가되는데, 이는 초기에는 이슬람 교리 수호와 전투를 의미했지만, 현재는 도덕적·지적·영적 노력 등 개인과 공동체의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일부는 지하드를 ‘유일한 신앙 실천’으로 보기도 한다.
이슬람 종파
1. 순니(Sunni, ‘순나와 공동체의 사람들’)
순니파는 전체 무슬림의 약 70%를 차지하며, 무함마드 사후 무슬림 공동체 전체가 올바르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계승해 왔다고 믿는다. 이들은 이슬람법의 네 가지 법원, 즉 꾸란(Qur’ān, 하나님의 계시), 순나와 하디스(Sunnah & Ḥadīth, 무함마드의 삶의 모범과 언행록), 끼야스(qiyās, 유추법), 이즈마(ijmāʿ, 공동체의 합의)를 따른다.
순니파에는 네 개의 주요 법학파(마즈하브, madhhab)가 존재하는데, 하나피(아부 하니파), 말리키(이븐 말리크), 샤피이(이맘 알샤피이), 한발리(아흐마드 이븐 한발)가 그것이다. 이들 법학파는 세부적인 법 해석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이슬람법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공통된 입장을 공유하는 정통 순니파로 분류된다.
2. 시아(Shīʿa,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
시아파는 전체 무슬림의 약 10~20%를 차지하며, 순니파 칼리프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사촌인 알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분파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꾸란에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시아파에 따르면 알리와 그의 후손인 이맘만이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권위를 지닌 존재이다.
시아파의 주요 하위 분파로는 열두 이맘파, 이스마일파, 자이드파가 있다. 열두 이맘파는 알리로부터 이어지는 열두 명의 이맘만이 정통 이맘이라고 믿으며, 열두 번째 이맘인 무함마드 알마흐디는 873년에 은둔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그가 장차 말세에 구세주(마흐디)로 재림할 것이라 믿는다. 이스마일파(일곱 이맘파)는 제6대 이맘 자파르의 아들 이스마일을, 자이드파(다섯 이맘파)는 제4대 이맘 알리의 아들 자이드를 각각 추종한다.
알라위파와 드루즈파는 알리와 그의 후손을 신비적 존재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시아파와 유사하나, 혼합 종교적 성격이 강하여 일반적으로 이슬람의 정통 분파가 아닌 이단적 집단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3. 수피(Sufism,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라는 명칭은 아랍어로 ‘양모’를 뜻하는 어근 수프(sūf)에서 유래한 것으로, 초기 수행자들이 금욕과 청빈을 상징하는 거친 양모 옷을 입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수피즘은 교리나 율법의 준수보다는 수행과 체험을 통해 하나님과의 합일에 이르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 이는 이슬람 신앙을 기반으로 한 영적 수행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수피즘의 수행 공동체는 타리카(ṭarīqa)라 불리며, 대표적인 타리카로는 카디리야(Qādiriyya), 나크슈반디야(Naqshbandiyya), 메블레비야(Mevleviyya), 베크타시야(Bektāshiyya) 등이 있다.
기독교와의 공존과 갈등
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이전의 앗시리아 제국과 바빌론 제국의 정복지 주민 이주 정책과는 반대로, 정복지 주민의 귀환과 종교적 관용을 허용하는 다문화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전통은 이후 아랍 제국과 오스만 제국에 계승되었다. 아랍 제국은 딤미 제도(Dhimmi system)를, 오스만 제국은 밀레트 제도(millet system)를 발전시켜 비무슬림 공동체를 제도적으로 관리하였다(꾸란 2:256). 딤미는 보호받는 사람(Protected people)이라는 뜻이다. 꾸란 2:256에서 종교에는 강제가 없다고 한 것을 원칙으로 하여 비무슬림들에게 지즈야(jizya)라는 인두세와 하라지(kharaj)라는 토지세 납부를 조건으로 한 보호 체계이다. 딤미제도가 이슬람 법에 근거한 피보호민을 위한 제도라면, 밀레트제도는 딤미 제도의 자치권 요소를 제도화하고 행정 체계로 편입한 것이다. 밀레트란 민족 또는 공동체를 뜻하는 아랍어에서 온 단어로 종교·민족 공동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오스만 제국의 대표적인 밀레트는 무슬림 밀레트, 그리스 정교 밀레트, 아르메니아 밀레트, 유대인 밀레트였다. 그리하여 이슬람이 주요 종교로 있는 중동, 북아프리카 등지에 유대교와 기독교가 계속 존재할 수 있었다. 근대에 오기까지 이슬람과 기독교는 충돌과 갈등이 지역적으로 계속 있었지만 전체적인 통치 체제는 소수 종교로 기독교를 수용하는 공존의 체제였다.
이런 공존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2011년 9ᆞ11테러 이후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글로벌 테러리즘이다. 글로벌 테러리즘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근대 세계에서 열세를 겪어 온 이슬람 세계의 대안운동으로 신학적, 운동체적 구조를 탄탄하게 갖추고 있기에 미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갈등을 주도하고 있다.
참고문헌
Gabriel, M. A. (2002). Islam and terrorism. FrontLine.
Pew Research Center. (2025, June 10). Islam was the world’s fastest-growing religion from 2010 to 2020. https://www.pewresearch.org/short-reads/2025/06/10/islam-was-the-worlds-fastest-growing-religion-from-2010-to-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