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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타슈켄트

박새영

Mar 10, 2026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수용과 종교·정치 체제의 전개 — 타슈켄트를 중심으로

1. 중앙아시아에 이슬람은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가?

이슬람교는 7세기 아랍 정복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처음 들어왔다. 당시 아랍인들은 아라비아에서 출발해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 오아시스 도시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진출했는데, 초기 접촉은 상업과 외교 중심이었으며 현지 주민이 바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아바스 왕조(750~1258) 시기, 우즈베키스탄 지역은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등 주요 도시가 아랍 무슬림 통치하에 들어갔다. 이 시기 상업, 교육, 행정 체계에 이슬람법(샤리아)이 도입되면서, 점차 주민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부하라는 학문과 신학의 중심지가 되어, 이슬람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10세기 이후가 되자 사마르칸트, 부하라 중심으로 이슬람 문화가 완전히 자리잡히게 된다. 이 시기 이슬람은 중앙아시아의 전통적인 샤머니즘, 조로아스터교적 요소와 혼합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 건축, 과학, 철학, 천문학 등 학문 발전이 두드러졌다. 티무르 제국(1370~1507)은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이슬람 건축과 교육 기관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켰는데,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는 이슬람 중심 도시로 자리잡았고, 지역 전체가 이슬람 세계와 긴밀히 연결되었다.

 

2. 이슬람이 유입될 때 이에 저항하는 종교나 힘이 있었는가? 이슬람 전에 기독교가 있었다면 기독교가 무너진 이유는 무엇인가?

우즈베키스탄 지역은 중앙아시아의 핵심 지역으로,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 도시들이 고대와 중세에 중요한 무역과 문화 중심지였다. 이 지역에는 8세기 이전까지 조로아스터교, 불교, 유목 샤머니즘, 그리고 일부 유대교가 혼재했는데, 이슬람은 7~8세기 아랍 제국의 확장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들어왔다. 주로 아랍 군사 세력과 상업 네트워크를 통해 퍼져 나갔다. 이슬람의 유입 당시 저항한 종교 세력으로는 먼저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있었다. 특히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지역에는 조로아스터교가 강하게 남아 있었고, 초기 이슬람 전파 시기에 일부 저항이 있었으나 아랍군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저항세력들은 점차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정치적 압박을 받았다. 또한, 페르가나 계곡과 동쪽 지역에는 불교 사원과 수도원이 있었지만, 이슬람의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점차 쇠퇴했다.

우즈베키스탄 지역은 중앙아시아 내륙에 위치하며, 역사적으로 오아시스 문명과 실크로드의 중요한 통로였다. 기원전·기원후로 다양한 민족과 제국이 거쳐간 곳으로 고대 우즈베키스탄 지역에는 주로 조로아스터교, 샤먼교, 다양한 다신교 신앙이 있었다. 기독교의 유입은 대략 4~7세기경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의 주요 도시를 통해 기독교가 전해졌는데, 주로 동방교회(네스토리우스파)의 선교사들이 활동했다.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기독교가 점차 약화된 이유는 몇 가지 복합적 요인 때문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투르크족, 몽골 제국 등 중앙아시아를 통치한 정치세력이 자주 바뀌면서 기독교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웠다. 특히 이슬람 왕조가 등장하면서,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밀접하게 연관되었고,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치·경제적 유리함으로 작용했다.

또한, 기독교 공동체는 상대적으로 소수였고, 상업·무역 활동에서 이슬람 상인과 경쟁해야 했는데 이슬람을 받아들이면 조세 혜택과 사회적 지위가 유리했기 때문에, 기독교인 일부가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도 했다. 문화적·언어적 동화도 우즈베키스탄의 기독교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중앙아시아는 투르크·페르시아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기독교는 외래 종교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아랍어, 페르시아어를 통해 법, 교육, 과학 등 제도화된 문화를 제공하며 지역 주민과 점차 동화되었다. 기독교는 종교적 탄압보다는 점진적 사회 구조 속에서 소멸되었다.

우즈베키스탄에 기독교가 들어왔지만 소수, 외래, 정치적 보호 부족으로 안정적 기반을 못 잡았고 이슬람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장점 때문에 점차 주민들이 개종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8세기 이후에는 우즈베키스탄 대부분 지역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거의 사라지고, 이슬람이 주류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다.

 

3. 세계대전 이후 이슬람은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

1차 세계대전 이후(1918년 전후) 우즈베키스탄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고,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소비에트 정권이 확립되었다. 소비에트 당국은 무신론적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기 때문에 이슬람교를 포함한 종교 활동이 크게 억압되었다. 모스크 운영, 종교 교육, 성직자 활동이 제한되었고, 일부 이슬람 지도자들은 정치적 저항을 시도했으나 큰 영향력은 없었다. 즉, 이슬람교는 공적으로 약화되고, 비공식적·가정 중심으로만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1945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은 중앙아시아 지역(우즈베키스탄 포함)에서 이슬람 활동을 여전히 통제했다. 다만 전쟁 동안 민족주의·종교 정체성을 일부 활용하려는 정책 때문에, 모스크나 종교 지도자에 대한 제한이 약간 완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슬람교는 정치적 힘을 거의 상실했고, 종교적 실천도 대부분 개인적·비공식적 수준으로 제한되었다. 1980년대 말 소비에트 붕괴 전까지 이슬람은 주로 문화적·사회적 정체성으로만 존재했다. 즉, 세계대전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슬람교는 공적·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억압받은 상태였으며, 주로 개인이나 지역사회 수준에서만 유지되었다.

 

4. 중앙아시아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이슬람 학파는 무엇이며, 중심 인물은 누구인가? 그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인가?

중앙아시아,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주로 수니파(Sunni) 중 하나인 하나피(Hanafi) 학파가 가장 영향력있는 위치를 차지한다. 하나피(Hanafi) 학파는 8세기 후반~9세기 초, 이라크의 아부 하니파(Abu Hanifa, 699–767)가 체계화했으며 융통성 있고 지역 관습을 수용하는 법 해석으로 유명하고, 중앙아시아 전역, 특히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배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우즈베키스탄의 대부분 마드라사(이슬람 학교), 사원, 법 제도는 하나피 학파를 기반으로 운영되었다.

우즈베키스탄과 중앙아시아 이슬람 사상에 영향력이 큰 인물로는 아부 하니파(Abu Hanifa, 699–767)를 들 수 있는데, 그는 하나피 학파 창시자이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은 아니지만, 학파 전파를 통해 지역 법학과 사회 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사마르칸트 근처 부하라 출신의 알-부흐하리(Al-Bukhari, 810–870)는 《사히흐 알부흐하리》라는 하디스(예언자 언행) 집대성으로 세계적 영향력있는 인물이다. 우즈베키스탄 내 이슬람 교육과 신앙 실천 기준에 큰 역할을 했다.

알-부흐하리, 아부 하니파를 따른 지역 신학자들은 부하라, 사마르칸트 중심으로 마드라사를 설립하였고 지역 정치·사회 지도층과 결탁하여 하나피 법학을 국가 운영 기준으로 정착시켰다.

아부 하니파(Abu Hanifa, 699–767)의 가르침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법학적·실천적 원리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 가장 명확하다. 아부 하니파는 이슬람 법학을 체계화하면서, 단순한 문자적 해석보다 이성적 추론과 실생활 적용을 중시했다. 합리적 사고와 유연성을 강조하며 고정된 규칙보다는 상황과 지역적 관습을 고려해 해석했다. 예를 들면 농업, 상거래, 세금 등 지역 사회 관습을 존중하고 하디스와 꾸란을 중심으로 하되, 실제 생활 적용 강조했다. 법 규정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모든 법과 생활 규범의 최종 근거는 꾸란(Qur’an)과 하디스(Hadith)가 우선되되, 불분명하거나 부족한 경우 다른 원리 사용이 가능했다. 유사한 사례를 근거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이성적 추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금융 거래, 농업 도구, 사회 제도에 적용시 이성적 추론을 사용했다. 아부 하니파의 가르침은 “이슬람의 법과 가르침을 꾸란과 하디스를 중심으로 하되, 이성과 사회 현실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하여 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5. 이슬람이 우즈베키스탄에 끼치는 영향력은 무엇이며, 이슬람 세계에서의 역할은 어떠한가?

우즈베키스탄 내 이슬람교의 영향력은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막강하다. 우즈베키스탄 인구의 약 90% 이상이 무슬림(주로 수니파)이다. 전통 문화, 관혼상제, 의식, 음식, 의복 등 사회 전반에 이슬람 관습이 깊이 배어 있다. 이슬람 명절과 라마단 기간의 사회적 활동은 국가적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적 영향은 소련 시기(1924~1991)에는 공산주의 이념 아래 종교 활동이 억압되었지만, 독립 이후 종교는 사회적 안정과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현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세속주의 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정부는 종교 단체와 긴밀히 협력하여 극단주의 확산을 방지하고 있다. 특정 정치·사회 운동은 이슬람 신앙과 결합해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교육과 생활 방식에도 이슬람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슬람 학교(마드라사)와 종교 교육 기관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기초적 윤리와 도덕 교육에 이슬람 원리가 반영된다. 사회적 규범, 예를 들어 금주, 금연, 금식, 공정한 거래, 가족 중심 생활 등에서 이슬람 가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슬람 세계에서의 우즈베키스탄의 역할은 중앙아시아 중심부에 위치하고, 역사적으로 실크로드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를 교류하고 확산시키는 허브 역할을 했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은 고대부터 이슬람 학문과 신학, 천문학, 의학 등 지식의 중심지였다.

현대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은 중앙아시아 내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 협력하며, 극단주의 억제와 종교 교육 정책에서 모범적인 모델로 평가받기도 한다. 세계 이슬람 회의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에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며, 이슬람 세계 문화 교류에 기여한다.

이슬람은 우즈베키스탄의 국내에서는 사회문화, 정치, 교육 전반에서 깊이 자리 잡아 특히 민족 정체성과 결합되어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역사적 학문 중심지로서 전략적 허브와 현대 이슬람 세계의 문화·교육적 연결 고리로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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