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극단주의_파키스탄 사례연구
- mmihpedit
-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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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4월 5일
Stephen Jang(남아시아 연구팀장), 이철영(국제정세 연구팀장), 김진영(편집위원)
서론
2008년부터 매년 아랍 지역 내 18~2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실시된 '아랍 청년 여론조사(Arab Youth Survey)'에 따르면, 아랍 사회 내에서 이슬람에 대한 청년층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출처 : ASDA’S BCW ARAB YOUTH SURVEY 2019년 14쪽)
2019년 조사 결과, 종교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고 답한 아랍 청년층의 비율은 66%에 달했으며, 이는 2015년 이후 꾸준히 증가한 수치이다. 이슬람이 탄생한 지역이자 그 주요 활동 무대였던 아랍 세계에서 종교의 영향력에 대한 청년층의 부정적 인식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ASDA’S BCW ARAB YOUTH SURVEY 2019년 15쪽)
이러한 통계는 아랍 사회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실제 아랍 국가에서 활동 중인 현지 사역자들 역시 이러한 변화를 몸소 체감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종교적 가치보다는 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세속화’현상이 강화되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비아랍 무슬림 사회에서는 이와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란의 경우, 여전히 ‘이슬람 공화국’으로서 이슬람을 국가적 통치 이념으로 내세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본래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터키 역시 최근 정치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시 이슬람 정체성이 강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남아시아 지역, 즉 인도 아대륙 국가들인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에서는 ‘강경 이슬람’을 넘어선 ‘이슬람 극단주의(Islamic Extremism)’까지 나타나고 있다.
본 연구는 특히 파키스탄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현상의 배경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파키스탄 현지에서 활동하는 사역자와의 현장 인터뷰를 실시하였고, 이슬람 극단주의 현상의 뿌리를 남아시아 지역에서 역사적·문화적으로 토착화된 이슬람에서 찾을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례로 대표적인 이슬람 부흥운동인 자마아트-에-이슬라미(Jama’at-e-Islami)와 타블리기 자마아트(Tablighi Jama’at)를 분석하며, 파키스탄 내 주요 이슬람 종파 간 갈등과의 연관성도 함께 검토할 것이다. 특히 이 두 운동과 파키스탄 이슬람의 극단화에 있어 바렐비(Barelvi)와 데오반디(Deobandi) 전통이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파키스탄 내 이슬람 부흥 운동
자마아트-에-이슬라미(Jamaat-e-Islami)는 1941년 마우두디(Maududi)에 의해 설립된 이슬람 부흥운동으로, 정치적·사회적·종교적 개혁을 목적으로 출범하였다. 마우두디는 민족주의와 세속주의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순수한 이슬람 국가의 수립을 주창하였다. 그의 전략적 접근은 교육받은 엘리트 계층의 이슬람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으며, 이는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과 유사한 부흥주의적 특징을 공유한다. 자마아트-에-이슬라미는 초기에는 정치 참여를 지양하였으나, 이후 선거 제도를 활용한 이슬람 국가 실현을 목표로 전략을 전환하면서 종교적 운동의 차원을 넘어 정치·사회적 변화를 목표로 하는 주요 이슬람 부흥운동으로 발전하였다(Ali & Amin, 2020).
반면 타블리기 자마아트(Tablighi Jamaat)는 1927년 영국 식민 통치 하의 인도에서 무슬림 정체성을 보호하고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운동이다. 이 운동은 정치적 개입을 피하고 개인적 신앙 증진과 선교를 통한 사회적 변화를 추구한다. 타블리기 자마아트는 이후 인도·파키스탄 지역을 넘어 전 세계 약 7천만에서 8천만 명에 이르는 회원을 확보하며 초국가적 이슬람 부흥운동으로 성장하였다(Vahed, 2003). 이 운동은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하며, 다양한 사회경제적 계층과 민족적 배경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요약하면, 자마아트-에-이슬라미는 정치적·사회적 변혁을 추구하는 반면, 타블리기 자마아트는 개인의 신앙과 영적 성장을 중심으로 비정치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두 운동의 역사적 기원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첫째는 영국 식민주의 및 미국 신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유럽의 식민 통치자들은 유럽 언어와 교육을 통해 새로운 무슬림 엘리트 계층을 형성하였으며, 이를 통해 유럽적 가치와 서구적 통치 구조를 무슬림 세계에 강요하여 지역을 분열시켰다. 이에 무슬림 지배층은 부분적으로는 서구적 문화로부터 보호받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자율성과 주권을 상실하면서, 무슬림 대중의 착취와 학대가 심화되었다(Hunter, 1988). 두 운동은 모두 제국주의와 부패한 무슬림 국가 지배층에 대한 일반 무슬림 대중의 저항적 감정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마아트-에-이슬라미는 이슬람 공화국 수립과 같은 정치적 목표를 설정했고, 타블리기 자마아트는 개인적 신앙 강화와 선교 활동을 통해 세속주의를 극복하고 이슬람적 가치를 재정립하고자 하였다. Zacharias(2015)에 따르면 타블리기 자마아트의 초기 설립 목적에는 무슬림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를 위한 식민지 시대의 정치적 목적도 내재되어 있었다.
두 번째 공통점은 힌두교에 대한 대응이다. 마우두디는 무슬림들이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순수한 이슬람으로 돌아가야 하며, 힌두교와의 타협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민족주의와 세속적 정치를 강력히 비판하고, 이슬람 국가가 무슬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제시하였다(Rowman & Littlefield, 2014). Metcalf(1996)는 타블리기 자마아트가 힌두교의 아리아 사마지(Arya Samaj) 운동에 대한 직접적 대응으로 출현했다고 설명한다. 영국의 후원을 받은 아리아 사마지는 과거 무슬림 통치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힌두인들을 재개종시키는 활동을 전개했으며, 이에 대응하여 타블리기 자마아트는 무슬림들 사이에서 신앙의 각성과 재부흥을 촉진하는 선교적 활동을 본격화하였다.
아랍 지역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서 이슬람적 정체성을 유지한 것과 달리, 인도 지역은 영국의 식민 통치와 힌두교라는 종교적 경쟁자로 인해 지역적 특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파키스탄이 인도로부터 분리된 이후 강력한 이슬람 공화국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바렐비-데오반디 종파 분열
파키스탄의 종파별 인구 통계는 명확하게 집계되지 않으나, 바렐비(Barelvi)파가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종파로 추정된다. 나머지 50%는 데오반디(Deobandi)가 25%, 시아파(Shia)가 15~20%, 에헬레 하디스(Ahl-e-Hadith)가 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Schrott, 2014).
바렐비와 데오반디는 모두 수니 이슬람의 하나피 학파에 속하지만, 두 종파 간의 이념적 분화는 영국 식민지 시기 인도 아대륙에서 발생하였다. 데오반디 학파는 이슬람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현지 문화 요소를 이슬람적 가치의 변질로 규정하고 이를 배제하는 개혁을 시도했다. 특히 데오반디는 지역 사회에서 성행했던 성지 방문 문화와 피리-무리디(piri-muridi, 성자와 추종자 간의 관계) 체계를 이슬람의 순수성과 배치되는 요소로 규정하며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Suleman, 2018).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여, 이슬람 신비주의자인 수피(Sufi) 성직자 아흐마드 라자 칸 바렐비(Ahmad Raza Khan Barelvi, 1856~1921)를 중심으로 바렐비 학파가 등장하였다. 바렐비 학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와 무슬림 성인들에 대한 경외심과 신성함을 보호하는 것을 중점 가치로 내세웠으며, 데오반디 성직자들을 불신자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Sanyal, 2005). 바렐비의 핵심 교리는 신성모독법으로, 이는 두 종파 간의 이념적 충돌이 폭력적인 대립으로 확산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지속적인 갈등에도 불구하고 바렐비 학파가 파키스탄의 주요 종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치적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2004년 당시 파키스탄의 무샤라프(Musharraf) 정부는 극단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 수피 이슬람을 적극 장려하였으며, 여러 정치 지도자와 관료들이 수피즘을 이슬람의 본질적 모습으로 홍보했다. 무샤라프 정부는 수피즘을 공식적으로 지원하고, 피르(pirs, 성자)와 바렐비 성직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반면, 데오반디와 와하비(Wahhabi) 계열의 이슬람 해석은 왜곡되고 외부적이며 사회적으로 파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샤라프는 ‘계몽적 중도주의(enlightened moderation)’라는 정책적 기조를 설정하고 폭력적 극단주의를 배격하며 수피즘에 담긴 평화의 메시지를 확산시키려 했다(f). 실제로 Curtis & Mullick(2009), Rabasa et al.(2007) 등의 연구에서도 수피즘이 극단주의를 억제할 수 있는 주요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극단주의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공식적인 지지를 받은 바렐비와 수피즘은 본래의 온건한 신앙에서 이탈하여 오히려 극단적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신성모독법이 자리 잡고 있다. 바렐비 학파의 급진화는 2011년 펀잡주 주지사 살만 타시르(Salman Taseer) 사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Sajjad, 2024). 그는 신성모독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기독교인 여성 아시아 비비(Asia Bibi)를 옹호하였고, 파키스탄 형법 295-C 조항(신성 모독법)을 가혹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바렐비 성직자들은 타시르를 규탄했고, 결국 그는 2011년 자신의 경호원인 몸타즈 카드리(Mumtaz Qadri)에 의해 암살되었다(Dawn, 2011). 이후 여러 바렐비 단체들이 파키스탄 정치 무대에서 신성모독법 개정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하며 극단주의를 확산시켰고, 그 결과 2016년 이후 신성모독을 명분으로 한 폭력 사건들이 급증하였다(Suleman, 2018).

뭄타즈 카드리의 사형집행 후 발인을 위해 그의 관과 함께 도시를 행진하는 바렐비 군중
파키스탄은 지정학적·역사적 특성으로 인해 오랜 기간 테러리즘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글로벌 테러리즘 지수(Global Terrorism Index)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테러리즘이 두 번째로 심각한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기간 중 바렐비 운동은 평화로운 수피 전통으로 주목받으며 극단주의에 대한 대항책으로 인식되었지만, 그들의 핵심 교리인 신성모독법은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를 증폭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이에 Philippon(2014)은 바렐비의 극단주의가 최근 돌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원래부터 폭력적인 역사를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바렐비 지도자들이 수피적 정체성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정치적·사회적 현실에 깊이 개입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의 선교 방향
파키스탄 민족주의는 다양한 역사적,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강경 이슬람을 주요 정체성으로 삼아왔다. 특히 바렐비(Barelvi) 종파가 주류를 이루는 파키스탄 사회에서 신성모독법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는 바렐비와 성격을 달리하는 다른 이슬람 종파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복음 전파 과정에서 큰 장애물로 작용하며, 실제로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던 현지 기독교인이 신성모독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하거나, 수감되기 전에 폭력적 사태로 희생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와 같이 바렐비의 영향을 받은 파키스탄 무슬림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 강한 정서적 애착을 나타내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보다는 정서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파키스탄 내에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방적인 선포식 접근이나 논리적·합리적 토론식 접근보다는 개별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 중심적 선교 전략이 요구된다. 다만, 이러한 전략적 접근이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거나 복음의 본질적 능력을 간과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파키스탄 내에는 현지 교회가 존재하며, 2023년 기준으로 약 2억 4,000만 명의 인구 중 2%인 약 500만 명이 기독교인으로 추산된다. 이 숫자에는 신앙을 비밀리에 유지하는 무슬림 배경 회심자들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실제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한국선교연구원, 2023). 파키스탄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국가 내에서 오랜 기간 소수자로서 핍박과 차별을 견디며 신앙을 지켜왔고, 파키스탄 사회·문화·종교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며 매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현지 교회와 협력하여 사역하는 것은 효과적이고 필수적인 전략으로 평가된다.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이 파키스탄에도 미쳤다. 고환율, 고물가,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파키스탄 경제는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김경훈, 남유진, 2022). 이러한 경제적 위기는 특히 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수입은 그대로인 반면 물가는 2~3배 상승하여 경제적 어려움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로 인해 젊은 세대의 관심은 형이상학적 종교 영역보다는 일차원적인 생계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더불어, 파키스탄의 정치적 상황은 지속적인 혼란 속에 있으며, 반복되는 시위와 반대 정파에 대한 비난과 모함은 서민들의 현실적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파키스탄 사람들 사이에 내적 갈급함이 커지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부의 도움을 갈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파키스탄 무슬림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영원한 평안과 생명을 전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이고 지혜로운 접근 뿐만 아니라, 구호와 교육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섬기는 자세가 요구된다.
참고문헌
김경훈, 남유진. (2022). 파키스탄 경제 불안 현황과 전망, KIEP 세계경제 포커스, 22(29), 1-16. 한국선교연구원. (2023). 파키스탄 기독교, 소수 약자의 종교. https://krim.org/pabalmaplus-2023-vol-10-01/?ckattempt=1
Ali, J.A and Amin, F. (2020). Jamaat-e-Islami and Tabligh Jamaat: A Comparative Study of Islamic Revivalist Movements. ICR Journal 11(1): 7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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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rott, M. (2014). “Muslim Sects”, in Pakistan: Challenges and Perspectives, ed. Wolf Gang, Mathias Vogl and Peter Webinger, (Vienna: Austrian Federal Ministry of Interio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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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hed, G. (2003). Contesting Orthodoxy: The Tablighi-Sunni Conflict among South Asian Muslims in the 1970s and 1980s. Journal of Muslim Minority Affairs, 23(2): 31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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