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국제 정치, 경제 그리고 선교
-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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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국제정세연구회 팀장)
초록
본고는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 헨리 키신저의 『AI 이후의 세계』, 대런 아세모글루의 『권력과 진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미래 선교 환경에 미칠 거시적 파급효과를 정치, 안보, 경제적 관점에서 융합적으로 고찰한다. 정치적으로는 AI의 불투명한 블랙박스 알고리즘과 전방위적 데이터 독점이 민주주의의 분산된 자정 장치를 마비시키고 강력한 ‘전체주의’를 도래시킬 위험성을 경고한다. 국제 안보 측면에서는 자율성과 비인간적 논리를 지닌 사이버 및 AI 무기의 도입이 기존의 세력 균형을 무력화하고, 예측 불가능한 초고속 개전과 군사적 에스컬레이션을 유발한다고 분석한다. 경제적으로는 AI가 보편적 번영 대신 저숙련 노동을 대체하는 ‘그저 그런 자동화’에 머물며 고용 시장을 위축시키고, 개발도상국에는 성장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비적정 기술’로 작용하여 글로벌 양극화를 공고히 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구조적 위기는 단기·중기·장기적 시계 안에서 미래 선교 패러다임의 전면적인 재편을 강제한다. AI 감시망의 고도화로 비자 취득과 신분 위장이 어려워짐에 따라 단일 지역 정착형 사역은 쇠퇴하고, 전문성을 갖춘 사도 바울식 ‘장기 순회 선교사’ 모델이 확산될 것이다. 개전 경고 시계의 무력화로 분쟁 지역 내 대면 사역이 차단되면서 디지털 인프라와 미디어를 활용한 원격 선교가 급격히 부상할 것이다. 선교지의 저숙련 일자리 소멸과 경제적 난민 증가에 대응해 기존 수익 중심의 BAM에서 적정기술 창업과 AI 문해력 교육을 지원하는 BFM(Business For Mission)의 필요성이 증가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AI 시대의 선교계는 기술적 조작과 왜곡의 위협 속에서 방법론적 화려함이나 효율성이라는 비본질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대신 ‘인간과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온전히 집중할 때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음을 제언한다.
1. 도입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AI)이라는 학술적 개념은 통념보다 훨씬 이전인 1956년 여름, 록펠러 재단의 후원 하에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개최된 컨퍼런스에서 처음 공론화되었다. 당대에는 지적 유희나 가공의 영역에 가깝다고 여겨졌던 이 개념은 현대 사회에 이르러 인류의 삶을 규정하는 필수불가결한 기술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마이크로소프트 AI 경제연구소(Microsoft AI Economy Institute)의 조사에 따르면, 2026년 3월 전 세계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17.8%가 이미 생성형 AI 제품을 상용화하여 활용하고 있으며, 기술 보급률 상위 26개국의 경우 그 비율이 약 3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AI 기술의 확산과 가속화는 현재 진행형이며, 그것이 추동할 미래 지형에 대한 학계의 전망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기술 낙관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그의 저서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The Singularity Is Nearer)』를 통해 2029년경 AI가 인간과 구별 불가능한 수준으로 대화를 수행하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통과할 것이라 예견했다. 통상 학계는 이 단계를 인간의 전반적인 지적 역량을 동등하거나 상회하는 수준으로 발휘하는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이하 AGI)’의 도래로 규정한다. 커즈와일은 AGI의 등장이 인류 사회에 폭발적인 생산성 증대를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2045년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대뇌 피질을 클라우드 네트워크와 결합함으로써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영생을 달성하는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할 것이라 전망한다. 반면, 후술할 MIT의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 교수는 실증적 데이터와 현행 AI 개발의 구조적 한계를 근거로, AI가 과연 인류의 경제적 삶에 장기적이고 획기적인 진보를 견인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강한 회의론을 제기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AI가 수반할 미래의 지형을 두고 학계 내에서는 첨예한 갑론을박이 지속되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기술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향후 선교 환경에 미칠 거시적 파급효과에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현대 선교의 많은 영향을 미치는 핵심 축인 ‘정치’, ‘국제 안보’, ‘경제’의 세 가지 관점에서 석학들의 담론을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 선교 전략의 실천적 방향성을 모색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치 분야에서는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미래를 다룬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히브리 대학교 교수의 신작 『넥서스(Nexus)』를 분석할 것이며, 국제 안보 분야에서는 이스라엘-이집트 간 평화 협정을 중재하며 현대 셔틀 외교의 지평을 연 노벨 평화상 수상자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의 유작 『AI 이후의 세계(The Age of AI)』를 검토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경제 분야에서는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AI 경제학의 권위자인 대런 아세모글루의 저작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를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이 세 권의 저작에 나타난 핵심 논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분석함으로써,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 속에서 미래 선교가 직면한 도전 과제를 식별하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선교학적 거점을 마련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 AI와 정보 그리고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중심으로
2.1 정보에 대한 이해: '재현'에서 '연결'로
인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정보'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하거나 진실을 전달하는 도구적 수단으로 간주되어 왔다. 우리는 흔히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이 진실을 재현하며, 오정보나 허위 정보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더 많은 정보를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라는 '순진한 정보관'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유발하라리는 이러한 낙관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정보의 결정적인 특징은 재현이 아니라 '연결'에 있음을 역설한다. 정보란 서로 다른 지점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사회적 연결 ‘고리(nexus)’이며, 이 연결의 목적은 진실 규명보다는 사회적 결속과 대규모 협력의 구축에 있다.
인류 문명의 탄생은 ‘관료제’와 ‘신화’라는 두 가지 정보 처리 도구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관료제는 데이터를 수집, 분류, 시각화 하는 지루한 업무를 통해 거대한 사회 관리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신화는 신, 돈, 국가와 같은 '상호주관적 현실'을 창조하여 수만 명의 낯선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호주관적 현실이 객관적인 진실에 기반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서로 교환하는 이야기 속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보의 역사는 곧 이 연결의 역동성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이다. 하라리는 인류 역사의 진짜 주인공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언제나 정보의 흐름이었으며, 오늘날의 과학 또한 생물학, 정치, 경제를 정보 흐름의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2 독재적 정보 네트워크의 해부: 무오류성의 환상
2.2.1 중앙집중화와 자정 장치의 결여
하라리는 민주주의와 독재를 대조적인 유형의 정보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독재적 정보 네트워크의 가장 큰 특징은 ‘고도의 중앙 집중화’다. 모든 정보의 흐름이 권력의 정점으로 수렴되며, 그 정점에서는 "중앙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무오류성’의 가정이 지배한다. 독재 체제 하에서는 독립적인 권력 허브—예컨대 독립된 사법부, 자유 언론, 학술 공동체—가 체제를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되어 철저히 무력화된다. 이러한 구조의 치명적인 결함은 '자정 장치'가 부재하다는 데 있다. 독재는 강력한 피드백 루프가 없는 폐쇄적인 네트워크이며, 중앙의 오류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수정할 방법이 없기에 결국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을 상시 내포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독재와 전체주의의 구분이다. 모든 독재가 곧 전체주의는 아니다. ‘전체주의’는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국가가 국민의 삶 전체를 완전히 통제하려는 극단적인 시도를 의미한다. 과거의 수많은 독재자들이 전체주의적 야망을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는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해 이를 실현하지 못했다. 중앙 정부가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모든 결정을 직접 내리는 '전지전능한 통치'는 고대 사회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한 꿈이었다.
2.2.2 기술 기반 전체주의의 역사적 전개
하라리는 기원전 3세기 진나라의 사례를 통해 기술적 한계에 부딪힌 전체주의 야망을 설명한다. 진나라는 법가 사상을 바탕으로 백성의 생각과 감정까지 통제하려 했으나, 정보 네트워크의 경직성을 이기지 못하고 단 15년 만에 붕괴했다. 진정한 대규모전체주의 체제가 가능해진 것은 전신, 라디오 등 현대 정보 기술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현대 기술은 수백만 명을 지리적 한계를 넘어 실시간으로 연결했고, 이는 중앙 정부가 전 국민의 매 순간을 감시하고 선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했다. 스탈린주의 소련은 이 기술적 전체주의의 정점을 보여준다. 나치가 교회나 기업에 부분적 자율성을 부여했던 것과 달리, 스탈린 정권은 사적 영역의 최후 보루인 가족마저 해체하려 했다. 스탈린을 아버지라 가르치고 자녀가 부모의 반체제적 발언을 밀고하도록 교육하는 시스템은, 국가라는 거대 정보 네트워크가 인간의 가장 친밀한 유대마저 삼켜버린 사례다. 이러한 체제는 서로를 감시하는 중첩된 장치를 통해 작동하며, 정권 유지를 위해 독립적인 정보 채널을 철저히 탄압하고 전방위적 선전 기계를 구축한다.
2.3 민주적 정보 네트워크: 오류 가능성의 승인
2.3.1 분산된 구조와 자정 기능의 회복력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모든 것이 다수결로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하라리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강력한 자정 장치를 갖춘 분산된 정보 네트워크'로 정의한다. 민주주의의 대전제는 "인간은 누구나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성찰에 있다. 따라서 민주 체제는 중앙 정부가 결정할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권력을 학술 기관, 언론, 사법부 등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여러 독립 기관에 분산시킨다. 이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잘못을 바로잡는 자정 기능을 수행하며, 이를 통해 체제 전체의 회복력을 높인다. 선거 또한 단순한 권력 획득의 수단이 아니라, 민주적 네트워크가 "우리가 과거에 실수했으니 다른 시도를 해보자"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장치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회 질서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가 유지되어야 하며, 시민들이 서로를 정치적 라이벌이 아닌 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하라리는 1960년대 미국의 극심한 사회적 갈등 속에서도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를 시민들이 선거와 법원이라는 민주적 제도에 대한 공동의 믿음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3.2 민주주의의 위기와 자정 장치에 대한 공격
오늘날 많은 민주주의 정보 네트워크가 붕괴하고 있는 징후는 명백하다. 강압적인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해체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은 자정 장치를 차례로 공격하는 것이다. 대개 법원의 독립성을 박탈하거나 언론을 장악하여 선전 기구로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민들이 서로 대화할 수 없고 공동의 진실에 합의할 수 없을 때, 민주주의의 자정 기능은 마비된다. 민주주의는 다수 집단이 자신들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소수 집단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때만 존속할 수 있다.
2.4 AI와 '실리콘 장막': 민주주의의 위기
2.4.1 블랙박스 알고리즘과 이해 불가능한 결정
하라리가 경고하는 가장 현대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은 AI이다. AI는 단순히 더 빠른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질적인 지능'의 등장이다. AI 알고리즘은 수조 개의 매개변수와 미세 신호들의 연쇄에 기반하여 결정을 내리는 '블랙박스'다. 만약 금융 시스템의 금리 결정이나 사법적 판단, 심지어 정치적 아젠다 설정이 인간이 단계별로 설명할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민주주의의 자정 기능은 오류를 '인지'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러나 AI의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고 이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이는 민주적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들며, 디지털 전체주의를 넘어 '디지털 무정부 상태'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AI는 패턴 인식 능력을 통해 인간보다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하며, 심지어 정서 지능이 필요한 직업군에서도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2.4.2 인류를 소외시키는 실리콘 장막
과거의 '철의 장막'이 이념에 따른 인간 집단의 분리였다면, 하라리가 명명한 '실리콘 장막'은 인류 전체를 새로운 지배자인 AI로부터 분리한다. 인류 문명을 지탱해 온 상호주관적 현실—돈, 국가, 신화—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조작되고 재정의될 때, 인류는 더 이상 역사의 주체가 아닌 정보의 흐름 속 객체로 전락하게 된다. 하라리는 정보의 자유 시장이 해결책이라는 낙관론을 경계하며, 정보를 단순히 재현이 아닌 '연결(nexus)'로 보는 관점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가 직면한 인류 역사의 거대한 위협을 직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3. AI와 국제 안보의 미래 – 헨리 키신져의 『AI 이후의 세계』를 중심으로
3.1 안보의 역사와 전략적 평가의 위기
인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사회는 언제나 기술 발전을 그 중심에 두어 왔다. 국가는 더 신속하게 위협을 감지하고, 철저한 방비 태세를 갖추며, 전시에 효과적으로 승리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적 우위를 추구해 왔다. 과거에는 각국의 전력과 전략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정량화가 가능했기에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이라는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강대국들은 분쟁 발생 시 승리 확률과 그에 따른 위험, 손실을 면밀히 분석하며 자신들의 전략적 행동을 정당화해 왔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특히 현대에 이르러 사이버 전력과 AI 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이러한 전략적 평가의 셈법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지고 추상화되었다. 전통적인 안보 전략이 인간의 합리적 의도와 계산에 기반했다면, AI 시대의 전략은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는 경쟁국 간의 안보 위기를 예측하고 분쟁을 방지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며, 국제 사회에 상존하는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제 국제 안보에서 힘의 균형을 논하기 위해서는 사이버 분쟁이나 허위 정보 살포와 같은 무형의 행위, 그리고 AI 기반 전쟁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3.2 냉전적 억지력의 해체: 핵무기에서 사이버·AI로
냉전 시대 안보 전략의 근간은 '핵 억지'였다. 핵무기는 그 자체를 실제로 사용하는 것보다, 사용 가능성을 시사함으로써 상대방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 이 시기 국제 정치를 지배했던 독트린은 '상호 확증파괴(MAD)'라는 위협에 기반한 개념이었다. 상호 확증파괴란 핵 전쟁 전략의 핵심 개념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적대적 양측 중 어느 한쪽이 먼저 선제공격(first strike)을 감행하더라도, 공격받은 측이 살아남은 핵전력(제2격 능력, second strike)으로 상대방을 완전히 전멸시킬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는 쪽도 반드시 파멸하기 때문에, 승자 없는 전쟁을 피하고자 양측 모두 공격을 포기하게 된다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에 기반한 핵 억지 이론이다. 전략 전문가들은 방어체계 없이 공격 능력에만 의존하는 방식이 불안을 조장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으나, 핵무기는 물리적 공간에 실재했기에 그 배치를 파악하고 전력을 대략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가능했다.
반면, 새롭게 등장한 사이버 무기는 그 위력이 '불투명성'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핵무기와 결정적인 궤를 달리한다. 사이버 무기는 배치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고 그 성능을 정량화 하기 힘들기 때문에, 전통적인 군비 통제의 개념을 적용하거나 실행하기가 대단히 까다롭다. 더욱이 사이버 무기는 전장의 특정 목표물만을 타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특성은 안보 전략가들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수행해 왔던 기존의 계산식 자체를 무력화하고 있다.
3.3 AI 기반 전쟁의 도래와 비인간적 논리
3.3.1 자율성과 계산 불가성
AI는 단순한 전략의 도구를 넘어, 자율성과 비인간적 논리를 바탕으로 한 '계산 불가성'을 창출한다. 전쟁 본연의 불확실성은 AI의 도입으로 인해 새로운 차원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AI는 인간의 인지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작동하며, 적이 이해할 수 없는 독자적인 논리를 따른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신호 발송이나 기만술이 통하지 않게 되며, 결과적으로 분쟁의 강도는 높아지고 피해 범위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될 위험이 크다. 종래의 분쟁이 '적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인간 중심의 대결이었다면, 이제는 정보 공간에서 벌어지는 AI의 허위 정보 공작과 알고리즘적 경쟁으로 그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
3.3.2 에스컬레이션의 위험과 자율살상무기
가장 우려되는 점은 AI가 선제 조치나 조급한 대응을 유발하여 분쟁을 급격히 격화 시킬 가능성이다. AI 무기 체계는 인간에게 징후를 분석할 충분한 시간을 허용하지 않으며, 즉각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위험을 상시 노출한다. 특히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목표를 지정하고 공격하는 '자율살상무기 시스템(AI weapons)'은 단순한 보조 수단인 'AI 기반 무기'와는 차원이 다른 윤리적·전략적 고민을 안겨준다. 핵무기는 국제 사회의 금지 조약과 명확한 억지 개념이 존재하지만, 끊임없이 진화하고 추적이 불가능한 AI 전력에 대해서는 아직 어떠한 국제적 합의나 통제 기제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3.4 정치 철학의 재발견: 플라톤의 철인왕과 AI 통치
안보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통치의 본질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적절한 통치란 무엇인가'를 두고 최초의 철학적논쟁을 벌였다. 플라톤은 지혜로운 '철인왕' 1인에 의한 자비로운 전제를 지지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시민이 국가 운영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민주주의적해법을 제시했다. 역사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식이 더 윤리적이고 효율적이었기에 승리를 거두어 왔으나, AI의 등장은 이 오랜 구도를 다시금 뒤흔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플라톤이 갈구했던 '철인왕'의 모습이 현대의 AI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AI는 유례없는 정보 처리 역량을 바탕으로 정책을 중앙에서 매우 효율적으로 집중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만약 AI가 정치적 목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정치적 결정을 내리기 시작한다면, 전통적인 정치적 지혜로는 감당하기 힘든 생소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하이에크가 경고했듯이, 이러한 중앙 집중식 통치 형태는 필연적으로 반대 의견의 표현을 금지하거나 억압할 소지가 크다. 인간이 AI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지능의 문제라기 보다는, AI의 판단 근거가 인간의 인지 범위를 근본적으로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4. AI와 경제 – 대런 아세모글루의 『권력과 진보』를 중심으로
4.1 'AI 환상'과 기술 진보의 신화
인류 문명사는 기술적 성취를 통해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번영을 추구해 온 과정이다. 17세기 프랜시스 베이컨은 과학 지식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선언했으며, 실제로 지난 수백년 간의 과학적 변화는 인류 역사의 이전 시기를 압도하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항상 사회구성원 모두의 보편적 번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와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일찍이 기계가 인간 노동을 완전히 대체할 때 발생할 노동 수요의 소멸과 '기술적 실업'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케인즈는 노동의 절약 수단이 발견되는 속도가 새로운 노동의 사용처를 발견하는 속도를 능가할 때 대규모 실업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오늘날 우리는 AI라는 거대한 기술적 물결을 마주하며 다시 한번 낙관과 공포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빅테크 기업들과 테크 연구자들은 AI가 전례 없는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의 지표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불평등은 치솟고 있으며, 기술 진보가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임금 소득자들은 경제적 성장에서 소외되고 있다. 아세모글루는 이를 'AI 환상(AI illusion)'이라고 부르며, 새로운 기술이 저절로 모두에게 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본고에서는 AI가 가져올 거시경제적 효과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시작으로, 기술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사회적 권력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자 한다.
4.2 AI의 거시경제적 영향: 실증적 한계와 예측
4.2.1. 헐튼의 정리와 생산성 성장의 현실적 경로
아세모글루는 최신 연구를 통해 AI가 향후 10년 내에 가져올 거시경제적 영향이 일반적인 예측보다 훨씬 완만할 것임을 시사한다. 그는 과업 기반 모델(task-based model)을 사용하여 AI의 미시적 수준의 효과가 어떻게 거시적 수준의 생산성 향상으로 전환되는지를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분석 도구는 '헐튼의 정리(Hulten's Theorem)'다. 이 정리에 따르면, 전체 경제의 총요소생산성(TFP) 증가는 AI에 의해 영향을 받는 과업의 점유율과 해당 과업에서의 평균 비용 절감분의 곱으로 결정된다. (Acemoglu 2025)
아세모글루는 미국 내 노동 과업의 약 20%가 AI에 노출되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 중 실제로 수익성이 있어 10년 내에 자동화되거나 보완될 과업은 전체의 약 4.6%에 불과하다고 분석한다. 기존의 실험적 연구들이 제시한 약 27%의 노동 비용 절감 효과를 대입해 보아도, 향후 10년간 AI로 인한 연간 TFP 성장률 기여도는 0.064% 수준이며, 전체 10년 누적으로는 0.66%에 그칠 것이라는 결과가 도출된다. 이는 골드만삭스 등이 예측한 연간 1.5%의 생산성 향상과는 거리가 먼 매우 낮은 수치다.
4.2.2 '쉬운 과업'과 '어려운 과업'의 이분법
생산성 향상 예측치가 낮은 근본적인 원인은 과업의 성격에 기인한다. 아세모글루는 AI가 학습하고 실행하기 용이한 '쉬운 과업(Easy-to-learn tasks)'과 그렇지 못한 '어려운 과업(Hard-to-learn tasks)'을 구분한다. 쉬운 과업은 관찰 가능한 결과 지표가 명확하고, 행동과 결과 사이의 규칙이 비교적 단순한 일을 의미한다 (예: 표준화된 코드 작성, 전사, 분류). 반면 어려운 과업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맥락적 요인이 방대하고, 성공 여부를 측정할 객관적 지표가 부재하여 주로 인간의 판단과 경험에 의존하는 영역이다 (예: 진단, 상담, 교육, 정책 수립). 현재 관찰되는 AI의 놀라운 성과는 주로 쉬운 과업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향후 AI가 진입해야 할 과업들은 고도의 맥락 이해를 요구하는 어려운 영역이며, 이곳에서 AI가 인간 전문가 수준의 생산성을 달성하는 것은 매우 느리고 어려울 것이다. 아세모글루는 어려운 과업에서의 생산성 향상 폭이 쉬운 과업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가정할 때, 10년 누적 TFP 상승분은 0.53%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AI를 통한 '거대 도약'의 전망은 기술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일반화일 가능성이 크다.
4.3. 기술의 잘못된 방향: '그저 그런 자동화'와 감시의 강화
4.3.1 생산성 향상 없는 노동 대체
아세모글루가 우려하는 또 다른 지점은 현재의 AI 기술이 '그저 그런 자동화(so-so automation)'의 경로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생산성 이득이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노동자를 대체하는 데만 효과적인 자동화를 의미한다. 진정한 의미의 기술 진보는 노동을 대체하는 데서 발생하는 부정적 효과를 상쇄할 만큼 큰 생산성 증가를 동반해야 하지만, 현재의 AI는 노동 수요만 줄이고 있을 뿐 실질적인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이 이러한 기술에 열광하는 이유는 생산성 향상 때문이 아니라 노동 비용을 줄이고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4.3.2 감시를 통한 지대 이전과 임금 억제
AI 기술은 경영진이 노동자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도구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아세모글루는 이러한 감시 강화를 '지대를 이전하는 행위(rent-shifting)'로 정의한다. 여기서 지대란 소위 말하는 노동자의 잉여 이윤이라고 보면 된다. 즉, 감시는 노동자의 실질적인 생산성을 높여주기 보다는, 노동자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경제적 이윤을 고용주에게 옮기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고용주는 감시를 통해 임금을 깎고 노동자가 더 많은 일을 하도록 강요할 수 있지만, 이는 노동자의 의욕을 저하시켜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생산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환상'에 빠진 연구자들과 기업들은 비용 절감이라는 단기적 유혹에 이끌려 감시와 통제 위주의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4.4 인간 지능의 특수성과 AI의 한계
AI가 인간의 업무를 온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간 지능이 지닌 독특한 세가지 '사회적' 속성 때문이다. 첫째, 인간은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암묵적 지식을 소통을 통해 획득하고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둘째, 우리는 상이한 가설과 반론을 개발하며 스스로의 이해를 평가하는 사회적 소통에 기반하여 논증한다. 셋째, 인간은 타인의 마음 상태를 추론하고 공감하여 공동의 목표를 수행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현재의 AI는 통계적 패턴 인식과 예측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적이고 사회적인 지능의 본질을 포착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특히 통계 모델이 데이터 내 무관한 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과적합(overfitting)' 문제는 기계 지능이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에도 잘 돌아가고 있다는 가짜 인상을 줄 수 있어 치명적이다. 인간의 의사결정이 내재적으로 사회적 속성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AI가 빠른 시일 내에 인간 지능의 비밀을 풀거나 고도의 생산성을 달성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4.5 지정학적 불균형: 기술 패권과 압제적 도구
4.5.1 미국과 중국의 기술 양극화
AI 기술 개발은 현재 미국과 중국의 소수 빅테크 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이는 전 지구적인 권력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감시를 위한 AI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AI를 통해 반란을 억압하고 정치적 담론의 유통을 제약하는 등 권위주의적 통치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억압용 도구들을 다른 비민주주의 국가로 수출하고 있다. 하라리의 지적처럼 "테크놀로지는 압제를 선호한다"는 명제가 현실 세계에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술이 중립적이지 않으며, 그 기술을 소유한 집단의 정치적 야망을 투영한다는 아세모글루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4.5.2 개발도상국에 대한 '비적정 기술'로서의 AI
서구와 중국에서 개발된 AI 기술은 개발도상국에 있어 '비적정 기술(inappropriate technology)'이 될 위험이 크다. 비적정 기술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농업이다. 전 세계 농업 분야 연구 개발 지출의 대부분은 고소득과 중위소득 국가들이 차지하며 그 지출의 대부분이 농업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인 병충해 해결에 들어간다. 하지만 선진국의 병충해는 개도국의 병충해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선진국의 신종 작물과 화학 제품들이 개도국의 농업에는 그리 유용하지 않다. 1970년 프랜시스 스튜어트 등 몇몇 경제학자는 테크놀로지 수입이 개도국에는 효과가 없을 수 있으며 불평등과 빈곤 면에서 되레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서구의 테크놀로지가 개도국의 니즈에 “비적정(inappropriate)”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AI는 자본과 고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만 늘리고 있는데, 이는 개도국에 가장 부족한 자원이다. 반면 개도국의 주력 노동층인 저학력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함으로써, 조기 탈산업화를 유발하고 경제 발전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를 낳고 있다. AI는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촉진하기는커녕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모든 비적정 기술의 어머니'가 되고 있다.
4.6 '나쁜 신규 과업'과 사회적 복지의 감소
AI는 새로운 과업을 창출하여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중 일부는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가치를 지닌 '나쁜 과업(bad tasks)'이다. 딥페이크, 오정보 살포, 중독적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 지능형 사이버 공격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활동들은 기업의 매출액과 GDP 수치에는 긍정적으로 잡히지만, 실질적인 소비자 효용과 사회 전반적 복지는 오히려 감소시킨다. 아세모글루는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에 대한 실험 데이터를 인용하여, AI 기반 플랫폼이 창출하는 1달러의 수익이 실제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0.36달러의 순손실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AI가 이러한 기만적이고 조작적인 활동을 가속화한다면, 표면적으로는 GDP가 2% 성장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질적인 복지는 0.72% 감소하는 '성장의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AI가 창출하는 수익의 원천이 생산성 향상이 아닌 사회적 비용의 전가와 수익화 된 조작에 있음을 시사한다.
5. 종합
제시된 논의들을 종합하면, AI의 고도화는 인류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구조적 위기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역사의 전례 없는 강력한 전체주의가 도래할 위험이 존재한다. 과거의 전체주의 체제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완전한 사회 통제가 불가능했으나, 고도화된 AI는 시민에 대한 전방위적 감시와 데이터 독점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쇠퇴와 완전한 통제 사회의 구축을 현실화할 수 있다. 국제 안보적 관점에서는 기술 패권을 둘러싼 비대칭성이 심화되어 기존의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 메커니즘이 무력화되고, 이에 따라 국가 간 군사적 충돌 및 전쟁의 위기가 고조될 것이다. 경제적 측면 역시 암울하다. AI에 의한 급격한 노동 대체는 노동계급의 협상력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동시에, 기술 자본을 독점한 선진국과 그렇지 못한 개발도상국 간의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켜 글로벌 양극화를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석학들의 문제의식은 분과 학문에 따라 상이한 궤적을 그리는 듯하지만, 기술 발전의 타임라인을 기준으로 재배치하면 매우 유기적인 연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측의 불확실성을 기피하고 실증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근미래를 추론하는 경제학자들의 방법론적 특성을 고려할 때, 아세모글루의 논의는 가장 '단기적인 시계(視界)'에서 AI의 경제적 영향력을 분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아세모글루의 분석은 인공일반지능(AGI)이 도래하기 직전까지의 과도기적 미래를 보여준다. 반면, 키신저는 AGI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국제 정치 및 안보 패러다임을 재편하는 '중기적 미래'의 양상을 추동하며, 하라리는 AGI의 전면화로 인해 글로벌 정치 체제와 민주주의의 근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혁된 '장기적 미래'의 상을 제시한다.
6. AI와 미래 선교
6.1 감시체제의 강화와 선교 패러다임의 변화: ‘장기 선교사’에서 ‘장기 순회 선교사’로
유발 하라리가 경고한 AI가 관료제에 도입된 이후의 가장 즉각적인 정치적 파급 효과는 고도화된 감시 체제를 통한 ‘기술 전체주의(Techno-Totalitarianism)’의 도래이다. 이는 결코 추상적인 미래 예측이 아니다. 이미 중국과 같은 일부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안면인식 시스템, 빅데이터 기반의 사회적 신용 등급제 등 AI를 활용한 자국민 통제 메커니즘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감시 기술과 인프라가 남반구(Global South)를 비롯한 전 세계 개발도상국으로 급격히 수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기술 전체주의 체제의 선교지 유입은 전통적인 ‘창의적 접근 지역’ 사역에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한다. 과거 대다수의 보안 지역 선교사들은 현지 비자 취득과 신분 은닉을 위해 ‘어학연수생’이나 ‘일반 학생’ 등의 신분을 활용해 왔다. 그러나 인간의 직관과 허술한 행정망을 우회했던 과거의 방식은 딥러닝 기반의 AI 감시망 앞에서 무력화된다. AI는 개인의 이동 동선, 소비 패턴, 대인관계 네트워크, 그리고 실질적인 학업 성취도 및 출석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교차 분석함으로써, ‘명목상 학생’과 ‘실제 학생’을 완벽하게 판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적 변화는 선교사 개인의 자질과 사역 형태에 근본적인 전환을 강제한다. 이제 선교사는 단순히 말뿐인 신분 위장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확실한 전공과 사회적 전문성을 입증해야만 하는 ‘실질적 전문인 선교사(tentmaker)’로 거듭나야 한다. 철저한 데이터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는 독자적인 전문 기술이나 비즈니스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다면, 고도화된 AI 감시망의 스크리닝(screening)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동시에, 한 국가나 지역에 5년 이상 정착하여 사역하는 전통적인 ‘장기 선교사’의 개념은 점차 소멸할 것으로 예측된다. 적대적 환경을 가진 국가들은 AI 분석을 통해 장기 체류 외국인의 잠재적 위험도를 상시 평가할 것이며, 이에 따라 비자 갱신 주기를 극단적으로 단축하거나 체류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특정 국가에서는 1년 주기의 체류조차 담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래 선교의 패러다임은 단일 지역 장기 선교에서, ‘단기 순회 사역의 유기적 지속’ 형태로 재편될 것이다. 장기 선교의 소명을 가진 헌신자들은 한곳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보안적 한계에 따라 선교지를 주기적으로 이동하며 단기적 사역을 연속적으로 수행하는 ‘장기 순회 선교사’의 정체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기술적 제약이 강제하는 단기 순회 선교는 신약성경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원형적(original) 선교 모델’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사도 바울은 한 도시에 정착하여 평생을 보내는 목회적 선교를 지양했다. 그는 에베소나 고린도 같은 거점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짧게는 수 주에서 길게는 수 개월 동안 머물며 교회의 기초를 세운 뒤 박해와 상황적 요구에 따라 신속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순회 선교를 전개했다. 심지어 거점 도시에서도 3년 이상을 머물지 않았다. 선교사가 한 국가에 수십 년간 머무는 현대의 정착형 선교 방식은 오히려 초대교회의 역동적인 순회 모델과 대비되는 측면이 있다.
물론 바울의 시대와 현대의 감시 사회 사이에는 뚜렷한 조건적 차이가 존재한다. 바울의 순회 선교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보장한 로마 제국 내의 이동의 자유와 ‘헬라어’라는 강력한 세계 공용어의 존재가 있었다. 반면 현대의 고립주의와 언어 장벽은 얼핏 순회 사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AI 기술은 역설적인 돌파구를 제공한다. AI의 고도화는 선교사들의 가장 고질적인 장벽이었던 ‘언어 습득의 허들’을 실시간 고정밀 번역 기술을 통해 혁신적으로 낮추고 있다. 언어 장벽의 완화는 선교사가 여러 언어권과 지역을 이동하며 사역할 수 있는 기동성을 부여할 것이다.
6.2 전쟁 위기의 가속화와 분쟁 지역 선교의 기동성 위축
현재 복음주의 선교가 전개되는 전방 개척 선교지의 상당수는 지정학적 분쟁 가능성이 상존하는 취약 지역이다. 키신저가 간파했듯, AI 기술이 국제 정치 및 군사 안보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전쟁의 발발 양상은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가속화된다. 과거의 전통적인 전쟁은 결코 우발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군사력의 전진 배치, 외교적 갈등의 심화, 그리고 특히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의회의 전쟁 승인 및 국방 예산 편성 등 일련의 가시적인 절차와 물리적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국 대사관은 사전 징후를 포착하여 자국민 철수 및 대피 등의 안전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AI가 주도하는 미래의 자율형 군사 시스템과 초고속 의사결정 알고리즘은 이러한 사전 경고 시계(視界)를 완전히 무력화한다. 선교사들은 분쟁의 징후를 인지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개전을 맞이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안전한 퇴로를 확보하지 못한 채 전면적인 전쟁의 소용돌이에 고립될 위험성이 극대화된다. 이러한 물리적 생존의 위협은 선교 생태계 전반에 ‘분쟁 지역 기피 현상’을 고착화할 것이다. 아울러 파송국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 정책과 출입국 가이드라인 역시 극단적으로 강화되어, 위기 지역으로의 물리적 진입 자체가 제도적으로 차단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이들 분쟁 지역은 대면 선교사의 발길이 완전히 끊어지는 ‘선교적 공백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미래의 분쟁 지역 선교는 직접적인 인적 자원의 투입이라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고도화된 AI 인프라와 위성 인터넷, 실시간 번역 및 다채널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한 ‘원격·디지털 비대면 선교’의 형태로 급격히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6.3 선교지의 노동력 대체 현상과 경제적 난민, 그리고 비즈니스 선교의 미래
AI가 가져올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해 경제학계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AGI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전까지—혹은 그 이후라 할지라도—AI가 과거 전기의 발명만큼 인류에게 단기적인 초고속 경제 성장을 가져다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거시적 성장률과 별개로 미시적인 고용 시장 내의 일자리 대체, 창출, 전환은 매우 급격하게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IMF(2024)에 따르면 선진국 근로자의 약 60%가 AI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직업군에 종사하고 있으며, 세계경제포럼(WEF, 2025) 역시 전 세계적으로 약 9,000만 개의 일자리가 대체되는 반면 1억 7,0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될 것으로 추정했다. 즉, AI와 상호 보완적인 직무는 수요가 급증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직무는 노동 시장에서 빠르게 퇴출당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직업별 AI 노출도(AIOE: AI Occupational Exposure)의 방향성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Felten, Raj, Seamans(2021)은 AI 기술이 직업 내 세부 과업(tasks)을 수행하는 잠재적 영향력을 분석하며, 주로 고학력·고숙련 직업군의 AI 노출도가 높고 저학력·저숙련 직업군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실제 산업 현장의 양상은 이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 산업연구원(2025)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당초 우려와 달리 고학력·고숙련 화이트칼라 직업군은 '노동 보완 효과'에 힘입어 오히려 고용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반면 고용 감소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분야는 농림·어업직, 대면 서비스직, 정비·생산직, 보건·의료 보조직, 건설·채굴직 등 주로 사무실 밖에서 물리적 노동을 제공하는 직업군으로 밝혀졌다. 예컨대 푸드테크 스타트업 '에니아이(Aniai)'가 개발한 햄버거 조리 자동화 시스템은 패티의 상태와 온도를 실시간으로 제어하며 일정한 품질을 유지함으로써 국내 주요 패스트푸드 브랜드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기술의 상용화는 결국 비사무직 중심의 현장 서비스 일자리를 직접적으로 대체하게 된다.
이 같은 비사무직 분야의 '물리적 노동 대체 현상'은 개발도상국이 주를 이루는 선교지에 한층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 대체로 인해 개도국의 취약한 경제적 기반이 해체되면, 현지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나 이주를 감행하게 된다. 이미 튀니지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국가의 청년층이 저렴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유럽으로 이동하여 '경제적 난민' 혹은 이주 노동자가 되는 현상이 고착화되어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들 역시 값싼 외국인 근로자에게 수많은 현장 노동을 의존해 왔으며, 이에 따라 국내외 이주민 및 난민 선교가 선교계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그러나 AI와 로봇 공학이 비사무직 노동을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반전된다. 선진국 내에서조차 이주 노동자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며, 기존의 값싼 외국인 노동력은 자동화 시스템이나 이를 운용하는 자국 내 내국인 인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유럽 등 선진국은 무슬림 유입 감소라는 사회적 변화와 동시에, 갈 곳을 잃고 고립된 이주민들에 대한 새로운 선교적 과제를 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지각변동은 비즈니스 선교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최근 비즈니스 선교는 자립과 비즈니스의 성공을 최우선으로 두는 BAM(Business As Mission)의 형태가 성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시장 원리와 수익 극대화를 위한 상품 개발, 마케팅 전략에 중점을 두어 왔다. 그러나 AI 기술의 종속 현상이 심화되고 선교지의 전통적인 저숙련 일자리가 지속해서 감소한다면, 단순히 '물건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 중심의 접근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비즈니스 선교는 거대 AI 생태계에 진입하지 못하는 선교지의 환경을 고려하여, 첨단 기술 대신 현지 상황에 적합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기반의 소규모 창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나아가 디지털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기초 IT 역량과 AI 문해력(AI literacy)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인재 양성 중심의 사역이 요구된다. 이는 비즈니스의 성공을 중시하는 기존의 BAM을 넘어, 비즈니스 활동 자체가 선교적 목적과 구제, 교육을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 되는 BFM(Business For Mission)의 개념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시사한다.
6.4 제언: AI 시대에 더욱 본질로 돌아가야
AI가 완전히 범용화된 미래 사회를 상상해 본다면, 기술의 극단적인 발달로 인해 인쇄 매체 기반의 텍스트와 문서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이때 자율성을 가진 AI가 성경의 특정 구절이 현대 사회의 통합이나 유지에 해악이 된다고 판단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해 볼 수 있다. 하라리가 경고했듯이, 인간이 구축한 정보 네트워크를 장악한 AI는 전 인류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성경 구절의 문장이나 맥락을 교묘하게 왜곡할 잠재력을 지닌다. 비록 소수의 인간이 이러한 왜곡을 발견할지라도, 이미 사회 시스템의 지배적 결정권을 쥔 AI의 판단을 수정하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다. 결국 AI 생태계에 길들여진 대다수의 현대인은 원문이 변질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왜곡된 텍스트를 진리로 수용하게 될지 모른다.
또 다른 시나리오로, AI가 세계 선교 행위를 국제적 갈등과 분쟁을 유발하는 위험 요인으로 규정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AI는 어떠한 방식으로 선교사들의 사역을 억제할 것인가? 하라리의 이론적 메커니즘에 따르면,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강력한 수단은 바로 '정교하게 가공된 정보와 통계의 조작'이다. AI는 조작된 빅데이터와 가짜 통계를 제시하며 "이미 지구상의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으므로, 전방 개척 선교의 당위성은 소멸했다"는 내러티브를 유포할 수 있다. 만약 현대 교회가 마태복음 24장 14절의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구절을 기계적·숫자적 성취로만 이해하는 좁은 시각에 함몰되어 있다면, AI가 제시하는 거짓 데이터에 현혹되어 미전도 종족 선교를 스스로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디지털 정보가 언제든 오염될 수 있는 AI 시대일수록, 선교계는 방법론적 화려함이 아닌 '선교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현대 선교는 선교의 본질보다는 기술적 효율성이나 프로젝트 중심의 비본질적인 부분들을 지나치게 부각해 온 측면이 있다. 고도의 기술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위협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다시금 '인간이란 누구인가', '복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교는 어떠한 양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적 행위가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선교는 시대의 변화나 기술적 위협에 가로막히지 않으며 언제나 전진한다. 후퇴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교가 아니라, 본질을 잃어버린 인간의 선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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