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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 전쟁과 국제규범의 약화

  • 작성자 사진: mmihpedit
    mmihpedit
  • 6월 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월 21일

이철영(국제정세 연구팀장)



국제 규범(International Norm)이란 국제 행위자들(주로 국가들)이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공유된 기대 혹은 행동 기준을 의미한다 (Finnemore and Sikkink, 1998). 대표적인 예로는 민간인 학살 금지, 외교관의 불가침성 보장 등이 있다. 국제 규범은 조약이나 협약처럼 공식적인 국제법과는 달리 비공식적이고 관습적인 성격을 가지며, 법적 제재보다는 국제 사회의 비난과 외교적 고립 같은 사회적 압력을 통해 그 효력을 발휘한다. 쉽게 말해, 줄을 서는 상황에서의 ‘새치기’처럼 법에는 저촉되지 않더라도 사회적 비난을 받을 수 있는 행위가 규범을 위반한 사례이다. 그리고 그런 비난은 개인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압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규범은 특정 사회 안에서 작동할 뿐 아니라, 국제 사회 전반에 적용되는 보편적 기대로 확장되기도 한다. 국제 규범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규범의 글로벌 확장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새로운 국제 규범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력에 의한 영토 정복 금지이다. 이는 나치 독일이 타국들을 무력으로 병합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UN 헌장에 명시된 원칙이기도 하다. 비록 모든 국가들이 이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온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는 대체로 준수되어 왔다. 예를 들어, 1982년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했을 때, 영국군과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신속히 축출되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역시 미국이 주도하고 유엔이 승인한 연합군의 개입으로 쿠웨이트의 주권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당시에는 외부 세력이 이 규범을 온전히 집행하지 못했다. 많은 국가들이 항의했지만, 결국 크림반도의 러시아 편입은 사실상 기정사실화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사회의 반응이 갈수록 분열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핵심 규범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Fazal, 2025).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의 대응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국제관계의 기본 구조인 무정부 상태(anarchy), 즉 국가 위에 군림하는 상위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미국은 수십 년간 스스로 ‘세계 경찰’의 역할을 자청해 왔다. 영토 문제, 인권 침해 등 국제 규범 위반 상황에서 미국은 선도적으로 개입하곤 했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은 과거와 달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대통령보다 우크라이나의 생존에 대해 덜 헌신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심지어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양도하고 전쟁을 종식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트럼프는 그린란드 매입, 파나마 운하 권리 재협상, 가자지구 점령 및 개발, 캐나다의 미국 편입 발언 등에서 보여지듯, 강압이 아닌 거래적 방식으로 국제 질서를 재편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으며, 최근 미국이 G7 성명이나 UN 표결에서 러시아를 명시적 침략자로 규정하지 않은 사실은 미국이 그동안 수호해온 국제 규범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양도하고 전쟁이 종결된다면, 이는 단순한 한 국가의 전쟁 종결이 아니라 국제규범의 실질적 퇴행을 의미할 수 있다.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인 국가들에겐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제르바이잔은 2023년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점령했지만, 국제 사회는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수단이 에티오피아의 아무하라 지역을 점령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고, 베네수엘라는 이미 가이아나의 광대한 영토를 주장하고 있으며, 향후 무력으로 이를 점령할 위험성도 존재한다. 더 심각한 것은 중국,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핵무장 국가들 사이의 국경 분쟁이 격화될 가능성이다. 실제로 2025년 5월 인도와 파키스탄은 한 차례 군사적 대치를 벌인 바 있다.

중국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같은 해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대만 침공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은 펠로시의 방문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며 위협 수위를 '뉴노멀'로 상향시켰고, 이 기준에 따라 향후 군사적 긴장이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 준비를 완료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중국은 대만보다 12배 많은 병력과 6~10배에 달하는 군사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미군이 대만에 상륙하는 데에는 약 2주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며, 중국은 이 기간 내에 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과 한국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신속하게 개입하는지 여부가 전쟁의 양상을 결정지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최우선 2021) 나아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점령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이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며, 대한민국 또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한편, 2023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이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으며, 230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요르단과 이집트 등으로 영구 이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국제법상 금지된 강제 이주에 해당하며, 유엔과 국제 인권 단체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현실은 명백하다. 국제 규범과 마찬가지로, 국제법 역시 강제력은 제한적이다. 영토에 대한 국제 규범이 무너지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이는 팔레스타인 영토의 실질적 귀속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는 단지 하나의 지역 분쟁에 그치지 않으며, 21세기 국제 질서의 방향성과 규범적 기반을 좌우할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를 러시아에 양도하고 전쟁이 종결된다면, 이는 무력에 의한 영토 정복이 다시금 정당화될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국제 사회는 '정복은 불법'이라는 국제 규범 아래 비교적 안정된 국제 환경을 유지해 왔으며, 이러한 환경은 전 세계 선교사들이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역사적 여건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많은 선교지들에도 여전히 민족 갈등과 국경 분쟁이 상존하며, 이러한 갈등은 단순한 정치적 긴장을 넘어 공동체의 붕괴, 종교적 박해, 대규모 피난 사태, 전쟁범죄의 발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수많은 선교사들이 사역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으며, 복음의 문 또한 국제 질서 속에서 점점 좁아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으며, 복음은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의 이름은 열방 가운데 선포되고 있으며, 어떤 지정학적 격동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멈출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 시간 동안, 더욱 담대히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9:4). 이 말씀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지금이 바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낮’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부르심이다. 그렇기에 지금이야말로, 기도하며 깨어 있어, 복음과 평화의 사명에 온전히 헌신해야 할 때이다.


Reference


Finnemore M. and Sikkink, K. (1998). International Norm Dynamics and Political Change. International Organization, 52(4): 887-917.

Fazal, M.T. (2025). Conquest Is Back: A Peace Deal in Ukraine Could Further Normalize What Was Once Taboo. Foreign Affairs.

최우선 (2021). 대만 군사충돌 시나리오와 한국의 대응. 외교안부연구소 20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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