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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가전략 및 국제정세 전망

  • 3월 31일
  • 25분 분량

 

마민호 (한동대글로벌사명원장)

제1장. 서론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단순히 강대국 간의 세력 균형이 변하는 단계를 넘어, 세계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규칙과 표준을 누가 설계하느냐를 두고 벌이는 구조적 경쟁의 시대로 진입했다. 과거의 갈등이 군사·정치적 대립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비교적 분리된 채 각자의 영역에서 전개되었다면, 현재 전개되는 미중 패권 경쟁은 이 모든 요소가 하나로 수렴되는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즉, 첨단 과학기술, 자본의 흐름, 글로벌 공급망, 그리고 데이터 주권에 이르기까지 국가 역량의 모든 자산이 안보와 직결되는 전면적 패권 전쟁의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이제 일시적인 충돌이 아니라, 각국의 정책 체계 속에 깊이 내재화된 상시적인 구조로 자리 잡았다.

           특히 미국이 첨단 기술 자체를 국가 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규정하고, 대중국 접근 차단과 공급망 통제를 패권 경쟁의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의 양상은 더욱 격화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은 기술적 자립자강을 국가의 명운을 건 핵심 과제로 천명하고, 안보와 발전을 하나로 묶는 전략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 성장을 넘어, 중국이 지닌 문명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의 설계자(Rule Shaper)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결국 지금의 미중 갈등은 단순한 힘의 전이(Power Transition)를 넘어, 경제적 수단이 전략 무기가 되고 기술 규칙이 힘의 척도가 되는 지경학적 안보화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국제질서를 예측 불가능한 위기 국면으로 몰아넣는 동시에 블록화와 다극화가 공존하는 복합적인 체제로 이끌고 있으며,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은 전례 없는 선택의 압박과 전략적 유연성을 동시에 요구받고 있다.

본 발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첫째, 중국의 국가전략이 어떠한 사상적, 역사적 토대 위에서 형성되었는지 분석하고, 둘째, 시진핑 시대의 신중화주의가 문명국가 담론과 안보 국가화 전략을 어떻게 대외 전략으로 구체화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셋째, 지경학적 안보화와 표준 경쟁의 구조 속에서 미중 패권 전쟁이 심화되는 양상을 분석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이러한 질서 대전환기에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적 대응과 선교적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제2장. 중화주의와 중국의 국가전략

 

중국의 국가전략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정책의 부침을 넘어, 그 저변에 흐르는 질서 인식과 역사적 정체성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중국의 전통적 세계관은 ‘천하 (天下)’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천하는 단순한 지리적 공간 개념이 아니라, 문명적 중심과 주변을 위계적으로 배열하는 독특한 질서 체계였다. 이 질서에서 중국은 문명의 중심이자 도덕적 정통성의 근거로 간주되었으며, 주변은 문화적 교화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근대적 주권국가 체제 이전부터 중국의 외교와 정치사상을 지배해 온 핵심 인식 구조이다.[1]

페어뱅크(John Fairbank)는 전통 중국의 대외 질서를 조공체제로 설명하며, 이를 단순한 외교 의례가 아니라 질서 승인 체계로 규정한다. 조공은 물질적 교환 이전에 정치적, 문명적 위계의 승인 행위였으며, 이를 통해 중국은 자신의 중심적 위상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질서 구조는 군사적 강압만으로 유지된 것이 아니라, 문화적 권위와 상징적 정통성을 통해 정당화되었다. 중화주의는 바로 이러한 천하 질서 인식에서 비롯되며, 이는 단순한 민족적 자부심을 넘어 세계 질서를 바라보는 기준으로 작동해왔다.[2]

자오팅양(Zhao Tingyang)은 천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이를 서구적 주권 중심 질서에 대한 대안적 사고로 제시한다. 그의 분석은 천하가 배타적 주권 개념이 아닌 포섭적 질서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강조하지만, 이런 해석 역시 중국 중심성이라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3] 

           근대 이후 이러한 질서 인식은 급격한 도전에 직면하였다. 1840년 아편전쟁은 중국의 전통적 질서에서 ‘굴욕의 1세기’라는 역사적 아픔을 경험하게 하였고, 이는 현대 중국 국가전략의   강력한 심리적 동기가 되었다. 부국강병이라는 구호는 단순한 군사력 증강이 아니라, 문명적 자존감의 회복과 새로운 질서 구축의 전략적 표어로 등장한 것이다. 벤저민 엘먼(Benjamin A. Elman)은 근대 중국에서 과학과 기술의 도입이 단순한 학문적 수용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의 일부로 추진되었음을 지적한다.[4]  

결국 중국의 국가전략은 현실주의적 세력추구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문명적 정체성과 역사적 생존경험이 결합된 전략적 산물이다. 시진핑 시대의 신중화주의 역시 이러한 역사적 연속선 위에 위치한다. 문명국가 담론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정치적 수사는 천하질서 인식과 부국강병 전략의 현대적 재구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상적 토대를 간과할 경우, 중국의 대외전략을 과도한 팽창주의나, 반대로 경제적 합리성으로만 축소 해석할 위험이 있다.

 

제3장. 신중화주의와 중국의 국가 전략

 

1. 시진핑 시대의 문명국가 담론

중화주의는 단순한 문화적 자의식이 아니라 중국의 질서 인식과 국가 전략을 구성해 온 사상적 토대였다. 시진핑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전통은 ‘문명국가( ) 담론’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구성된다. 이 담론은 중국을 단순한 주권국가(state)가 아니라, 장구한 역사와 독자 적 문명체계를 지닌 문명형 국가로 규정한다.[5]

        문명국가 담론의 핵심은 중국의 발전 경로를 서구의 보편적 근대화 모델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문명적 특수성에 기초한 독자적 경로로 이해하는 데 있다. 2022년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 대표 대회 보고에서 시진핑은 중국식 현대화를 전면에 제시하며, 이를 서구 중심의 발전 모델과 구별되는 고유한 발전 방식으로 규정했다. 이 보고에서 중국식 현대화는 단순한 경제 성장 전략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역사적 과정으로 제시하고 있다.[6]  즉, 현대화가 기술 및 산업 발전의 차원을 넘어 문명적 회복의 서사와 결합한 것이다.

이러한 문명국가 담론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역사적 연속성의 강조이다. 시진핑 체제는 현대 중국을 1949년 건국 이후 사회주의 국가가 만들어낸 산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천 년 문명사와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공산당의 통치를 중국 문명의 계승이자 완성으로 위치시킨다.[7] 이는 사회주의 이념을 중국의 문명적 틀 속에 재배치하는 전략으로, 사회주의가 외래 이념의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중국 문명에 적합하게 변용된 고유의 체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발전성과와 체제 정당성의 결합이다. 문명국가 담론에서 경제 발전은 단순한 물질적 성취를 넘어 체제 정당성을 입증하는 핵심 근거가 된다. 빈곤 퇴치, 산업 고도화, 디지털 전환 등은 공산당 통치의 효율성과 제도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보편적 모델로 인정하지 않으며, 각 문명은 서로 다른 발전 경로를 가질 수 있다는 다원적 발전론을 내세워 국제 규범 경쟁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 국제질서 재구성의 의지이다. 문명국가 담론은 단순한 자기 정체성의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국제질서의 규칙 형성 과정에서 중국이 단순한 참여자가 아니라 설계자(rule shaper)가 되어야 한다는 전략적 지향을 내포한다. 중국특색대국외교(中國特色大國外交)라는 표현은 중국이 주변 강대국 수준에 머물지 않고 세계 질서의 구조 형성에 직접 참여하는 행위자임을 강조한다. 특히 서구식 근대화가 식민주의와 불평등을 동반했다고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인류운명공동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8] 이는 전통적인 천하 질서의 현대적 변형으로, 오늘날의 천하를 군사적 종속이 아닌 상호 의존적 연결성과 발전 협력을 강조하는 담론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명국가 담론이 단순한 수사에 머물지 않고 정책 방향과 국가의 전략적 시간표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2035년 원경 목표와 2049년 건국 100주년 목표는 국가 발전을 단기적인 정치 주기와 분리시켜 장기 전략 국가로서의 성격을 강화한다.[9] 

결국 시진핑 시대의 문명국가 담론은 역사적 정체성의 재서술과 발전 성과를 통한 체제 정당성 강화, 그리고 국제 질서 재편에 대한 전략적 참여 의지를 하나로 통합되어 단순한 이념 선언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방향을 규정하는 최상위 담론으로 기능하고 있다.

 

2. 발전주의와 안보국가 담론

시진핑 시대의 문명국가 담론이 중국 국가전략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면, 그 담론을 실제 정책체계로 구현하는 핵심 장치는 발전주의와 안보국가 담론의 결합에 있다. 다시 말해, 신중화 주의는 발전을 체제 정당성의 핵심 자원으로 삼는 동시에 발전 자체를 국가안보의 범주로 재정의 함으로써, 경제 정책과 안보 정책의 경계를 구조적으로 해체하였다. 여기서 중국의 전략은 단순한 발전국가 모델을 넘어, 발전이 곧 안보이며 안보가 곧 발전의 조건이 되는 상호의존적 구조로 전환되었다.

전통적인 발전주의 국가론은 국가가 전략 산업을 선별하고 각종 자원을 동원하여 산업 고도화를 촉진하는 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발전은 단순한 산업정책의 영역을 넘어서, 외부 압력과 국제 질서 경쟁 속에서 체제의 생존 가능성을 좌우하는 전략적 변수로 인식되는 것이다. 특히 2018년 이후 미중 기술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은 기술, 금융, 공급망 영역을 더 이상 시장의 자율적 조정에 맡길 수 없는 핵심 전략 공간으로 재규정했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발전주의가 안보 논리와 결합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10]

이러한 전환은 과학기술 자립 전략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과학기술 자립자강은 단순히 혁신을 장려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핵심 기술의 대외 의존 구조를 전략적 취약성으로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려는 거대한 국가적 프로젝트이다.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기술, 첨단 제조업 등은 시장 경쟁의 대상인 동시에 국가안전의 핵심 자산으로 규정된다.[11] 이때 기술은 경제적 생산요소를 넘어 권력의 기반으로 이해되며, 기술 개발은 성장의 문제인 동시에 주권 수호와 체제 안정의 문제로 통합된다.

이와 동시에 공급망 역시 비용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회복력과 통제 가능성의 문제로 재정의된다. 세계화 시대의 분업 체계는 철저히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으나, 전략 경쟁의 심화는 공급망을 언제든 잠재적인 압박 수단으로 돌변하게 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핵심 광물, 에너지 자원, 전략 부품의 안정적 확보와 국산화를 병행하며 구조적 의존도를 낮추려 한다. 이러한 정책은 위기 상황에서도 국가 기능이 중단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체제 보존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발전주의와 안보 담론의 결합은 디지털 영역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데이터는 더 이상 민간 기업의 사적 자산이나 혁신의 부산물로만 취급되지 않는다. 국가 경쟁력과 통치 역량을 구성하는 핵심 자원으로 인식되며, 데이터의 흐름과 관리 체계 전체가 국가안전의 범주 안으로 편입된다. 이러한 흐름은 디지털 경제의 확장 속에서 통치 기술과 산업 전략이 상호 강화되는 독특한 구조를 형성한다.

이처럼 기술, 공급망, 데이터가 안보 담론 속에 통합되면서, 경제 정책은 점차 지경학 (geoeconomics)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된다. 경제적 수단을 전략적 목표 달성의 도구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중국의 산업 정책, 전략적 투자, 해외 인프라 사업 참여는 단순한 경제 확장이 아니라 국제 질서 내 영향력 확보와 직결된다. 즉 발전 전략은 대외 전략과 분리되지 않으며, 국내 산업 구조와 국제 경쟁 구조는 하나의 연동 체계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안보화(securitization)가 단순히 외부 위협에 대한 수동적인 반응이 아니라 정책 개입을 정당화하는 상위 프레임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특정 산업이나 기술이 안전의 문제로 규정되는 순간, 국가는 시장에 대한 보다 강력한 개입과 자원 집중을 정당화할 수 있다.  그 결과 발전 전략은 시장 중심의 조정 논리를 넘어 국가 목표 중심의 통제 논리로 이동한다. 이때 시장은 전략적 수단이 되며, 국가는 그 시장을 통제하는 전략적 설계자로 자리한다.

결국 신중화주의의 발전 전략은 세 가지 측면에서 구조화된다. 정치적으로는 발전을 체제 정당 성의 핵심 자원으로 설정하고, 전략적으로는 발전을 국가안전의 범주에 포함시키며, 지정학적 으로는 발전을 국제질서 경쟁과 연결한다. 이 세 요소가 결합할 때, 중국의 국가전략은 단순한 경제 발전 모델을 넘어 전략적 발전 체제로 전환된다.[12] 그리고 이러한 발전주의-안보 통합 구조는 다음 절에서 다룰 제도적 특징들을 통해 실질적인 집행력을 확보하게 된다.


(출처 = South China Morning Post)
(출처 = South China Morning Post)

 

3. 중국 국가발전 전략의 구조적 특징

앞서 언급했듯이, 신중화주의는 문명국가 담론을 상위 정당성 틀로 삼고, 발전주의와 안보국가화 전략을 결합하여 국가전략을 재구성한다. 그러나 이 결합이 실제적인 위력을 가지는 이유는 중국의 국가체제가 이러한 전략을 장기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조직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13]

첫째, 중국의 발전전략은 당-국가(Party-State) 통합 구조를 통해 목표와 집행의 간극을 최소화한다. 중국공산당은 단순한 통치집단이 아니라 전략 설계의 최고 중심 기관이며, 국가기구는 이를 행정적으로 충실히 구현하는 집행 장치로 기능한다. 이 체제에서는 정권 교체로 인해 전략 목표가 급변하지 않으며, 중앙의 장기 목표를 중심으로 모든 자원이 조정되고 배치된다. 이러한 구조적 통합성 덕분에 중국은 산업, 금융, 과학기술, 국가안전 정책을 하나의 거대한 프레임 안에서 결합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발전 전략은 개별 부처 정책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국가 목표 중심의 통합 설계로 작동하며, 이것이 전략의 일관성을 만들어내는 첫 번째 조건이다.

둘째, 중국은 발전 전략을 단기적인 성과 경쟁이 아니라 장기 목표의 누적 과정으로 제도화한다. 2035년 원경 목표와 2049년 목표는 정책의 시간 지평을 상당히 넓혀, 단기적인 경제 지표의 변동성을 장기적인 방향성 안에 흡수할 수 있는 전략적 완충 장치를 제공한다.[14] 이러한 장기 시간 구조는 기술 및 산업정책 분야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기술과 같은 분야는 단기간에 결과를 내기 어렵지만, 중국 체제는 성과의 지연을 실패로 재단하지 않고 장기적인 역량 축적의 과정으로 간주하는 장기적 관점에서 설계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셋째, 국가안전 개념의 포괄적인 확장은 발전 전략을 경제정책의 범주에서 체제의 명운을 건 생존 전략의 범주로 이동시킨다. 오늘날 중국에서 국가안전은 군사적 위협을 넘어 경제, 기술, 데이터, 공급망 안전 등으로 무한히 확장되며, 발전 전략은 안보 전략과 완벽하게 일체화된다. 이 구조 속에서 과학기술 자립은 산업 고도화 과제인 동시에 외부 압력에 대항하는 방어 전략이 되고, 공급망 안정화는 단순한 비용 최적화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최우선 과제로 재정의된다. 발전과 안보가 이처럼 하나로 결합할 때, 정책 선택은 시장의 논리보다 국가전략의 논리에 의해 더 강하게 규정된다.

넷째, 중국은 정책 통합과 자원 동원 과정에서 특유의 높은 추진력과 과감성을 보인다. 과감성은 정책추진 과정에서 노정되는 윤리적 논쟁이나 제도적 저항이 정책실행 속도를 지연시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체제적 특성으로, 국가적 목표가 설정되면 특정 부문의 실험과 전국 단위의 확대적용을 신속하게 결합하여 정책을 밀어붙이는 구조를 말한다. 이러한 특성은 데이터 수집, 감시 통제 기술 등 논쟁적인 영역에서 두드러지는데, 중국은 개인 권리의 관점보다는 사회 안정과 국가 역량 강화 명분으로 이를 강력히 정당화해 왔다. 결과적으로 일부 정책은 외부 시각에서 규범적 논쟁을 촉발할지라도, 내부에서는 국가 역량 강화의 논리에 힘입어 매우 빠르게 제도화된다. 이는 발전과 안보의 결합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빠른 속도로 구현됨을 설명해 준다.

다섯째, 이러한 구조적 특징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상호 간에 강력한 증폭 관계를 맺고 있다. 당-국가 통합 구조는 정책의 방향성을 강하게 고정시키고, 장기적인 시간 구조는 충격을 흡수하며, 포괄적 국가안전 개념은 국가 개입의 정당성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뛰어난 동원 능력이 결합될 때, 중국은 전략산업과 통치 기술을 국가역량의 핵심자산으로 전환시키며 대내외 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게 된다. 신중화주의의 국가전략은 문명국가라는 담론적 방향 설정과 발전주의라는 목표와 안보화를 통한 정당성 확보, 그리고 동원체제를 통한 집행이 하나로 연결된 통합 체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의 국가발전 전략은 단순한 고도성장 모델이 아니라 치밀하게 설계된 국가 전략의 작동 방식이다. 이 견고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중국의 대외 전략은 일시적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 패턴으로 나타나며, 미중 패권 전쟁 역시 표면적 갈등과 협상이 교차하더라도 기저의 경쟁 구조 자체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제4장. 미중 패권 전쟁과 지경학적 전환

 

1. 이론적 분석틀

미중 패권 전쟁을 단순한 강대국 간의 세력 충돌로만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의 복잡한 국제질서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현재 전개되는 경쟁은 군사 영역을 넘어 기술, 금융, 공급망, 그리고 국제 규칙의 설계 권한을 둘러싼 전방위적 구조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 장에서는 국제정치의 대표적 이론들을 통해 미중 경쟁의 본질을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미국의 전략적 행태는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의 공격적 현실주의 (offensive realism)가 지적하는 구조적 유인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 미어샤이머는 국제체제가 무정부 상태(anarchy)이며 국가들은 타국의 의도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기에, 생존을 보장받고자 상대적 권력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강대국은 단순한 세력 균형 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역 패권을 확립하려 한다고 주장한다.[15]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이 반도체, 첨단 컴퓨팅, 인공지능 영역에서 수출통제와 투자 제한을 제도화하고 동맹국과 기술 블록을 형성하는 행위는 단순한 방어적 조치가 아니다. 이는 기술과 금융 네트워크의 핵심 노드를 통제하여 경쟁국의 추격 경로를 원천 차단함으로써, 자국의 구조적 우위를 확고히 하려는 공격적 현실주의의 전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중국의 전략은 케네스 월츠(Kenneth N. Waltz)와 스티븐 월트(Stephen M. Walt)의 방어적 현실주의(defensive realism) 틀을 통해 보다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은 국가가 과도한 팽창을 추구할 경우 필연적으로 타국의 균형(balancing) 견제를 촉발하여 오히려 자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합리적인 국가는 권력의 맹목적 극대화보다는 현 체제 내에서의 지위 유지와 안보 확보에 집중한다. 월트 역시 동맹은 단순한 힘의 크기가 아니라 위협 인식에 의해 형성되며, 위협을 과도하게 나타내는 전략은 역효과를 볼 수 있음을 강조했다.[16] 이 점에서 중국의 안보화된 발전주의는 무제한적 팽창이 아닌 체제안정과 경제성장 경로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이 기술 자립과 공급망 안정화를 강력히 추진하면서도 미국과의 전면적인 군사 충돌만큼은 신중하게 피하려는 이중적 태도는 방어적 현실주의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전통적인 현실주의만으로는 경제와 기술 영역이 어떻게 오늘날 전략 경쟁의 최전선이 되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는 핵심개념이 바로 지경학(geo-economics)과 네트워크 권력이다. 헨리 패럴(Henry Farrell)과 에이브러햄 뉴먼(Abraham L. Newman)은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에서 특정 국가가 허브(hub)나 초크포인트(chokepoint)를 장악할 경우, 이를 강력한 강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무기화된 상호의존(weaponized interdependence) 개념을 제시했다. [17] 이는 미국이 달러 결제망, 금융 규제, 첨단 기술 생태계의 표준을 무기 삼아 중국의 접근을 통제하는 방식을 설명해 준다. 동시에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하고 독자적인 기술 표준과 대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 역시, 이러한 네트워크 권력의 비대칭성을 극복하려는 전략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넷째, 러시 도시(Rush Doshi)는 중국이 미국의 국제질서를 즉각적으로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통해 점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고 분석한다. [18] 이는 중국의 대외정책을 단순한 공격적 수정주의로 보기보다, 전략적 인내와 점진적 확장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함을 시사한다. 데이빗 샴보(David Shambaugh)도 중국을 ‘부분적 수정주의(partial revisionist)’ 국가로 규정하면서, 중국이 기존 국제질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선택적으로 수정하면서, 동시에 국제기구와 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중적 행보를 보인다고 설명한다.[19] 이러한 관점은 시진핑 체제가 신중화주의적 문명 담론을 내세우면서도, WTO·UN 등 기존 제도에 참여하는 복합적 전략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다섯째, 이러한 거대한 구조적 충돌 속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단순한 양자택일의 진영 선택이 아닌 헤징(hedging)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청추이 쿠익(Cheng Chwee Kuik)은 헤징을 위험 분산을 위해 협력과 견제를 동시에 운용하는 고도의 복합 전략으로 정의한다.[20] 한국은 안보 구조에서는 미국과 혈맹으로 묶여 있으나, 경제 구조에서는 중국과 깊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 따라서 한국의 헤징은 결단을 유보하는 회피가 아니라, 주어진 구조적 제약 속에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본 장에서는 미국의 행태를 공격적 현실주의와 지경학적 권력 유지 전략으로, 중국의 행태를 방어적 현실주의와 장기적 수정 전략의 결합으로, 그리고 중견국의 대응을 헤징 전략으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다각적 접근은 미중 패권 전쟁을 단순한 군사적 대치가 아닌 경제, 기술, 규칙 설계 권한을 둘러싼 거대한 구조적 전환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한 설명이라 판단된다.

 

2. 지경학의 전면화

제3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중화주의는 발전과 안보를 철저히 통합하는 국가 전략 체계를 완성했다. 이러한 통합은 국내 정책을 넘어 대외 전략으로 확장되며, 그 과정에서 경제적 수단은 전략 경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탈바꿈한다. 이 지점에서 미중 패권 전쟁은 과거의 군사적 충돌 중심 패권 경쟁과 명확히 구별되며, 지경학이 전면화되는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지경학이라는 개념은 에드워드 루트왁(Edward Luttwak)이 냉전 종식 이후 국제정치의 무게 중심이 군사적 경쟁에서 경제적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통찰하며 본격적으로 이론화되었다. 루트왁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로 인해 군사력 사용이 상호 억제 구조에 갇힌 반면, 경제적 수단은 제약 없이 국가 전략의 핵심 도구로 부상한다고 보았다.[21]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이 통찰은, 최근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다시 주요분석의 틀로 재부상하였다.

앞서 미어샤이머의 공격적 현실주의가 보여주듯, 패권국은 잠재적 경쟁국의 부상을 구조적으로 억누르려 한다. 2022년 10월, 미국이 단행한 첨단 컴퓨팅 및 반도체 수출통제는 단순한 무역 제재가 아니었다. 이는 중국의 7나노미터 이하 첨단 공정 접근을 원천 차단하여 전략 산업의 발전 속도를 제도적으로 지연시키려는 전략적 조치였다.[22] 여기에 2024년 미국 재무부의 해외 투자 규제까지 결합 되면서, 무역을 넘어 자본의 흐름 자체가 철저한 안보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패럴과 뉴먼의 무기화된 상호의존 개념으로 분석할 때 가장 잘 파악될 수 있다. 상호의존이 국제 사회의 평화를 담보할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낙관론과 달리, 현실에서의 상호 의존은 오히려 권력의 비대칭성을 증폭시키고 이를 상대국에 대한 강압적 기제로 활용하는 구조로 변질되었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 금융 시스템과 대체 불가능한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첨단 노광장비 등 글로벌 네트워크의 핵심 허브를 무기 삼아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대규모 보조금을 통한 자국내 생산 역량을 강화하고 기업의 중국 내 투자를 제한함으로써, 시장의 논리를 국가 안보 목표로 압도하고 정부 주도의 기술 생태계 재편을 제도화하고 있다.

중국 역시 이러한 지경학적 압박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는다. 중국은 ‘제14차 5개년 규획’을 통해 과학기술 자립과 산업 고도화를 국가적 사활이 걸린 과제로 설정하고 대외 의존도를 줄이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쌍순환(雙循環)’ 전략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집중 육성하여 외부의 경제적 충격을 견뎌낼 완충 지대를 구축하려는 구조적 방어책이다. 나아가 일대일로(一带一路)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독자적인 인프라와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의 포위망을 우회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해외 투자가 아니라 향후 국제 규범과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지경학적 확장이다.

결국 지경학의 전면화는 국제질서의 권력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패권전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이 국가 간의 총체적인 경제력이나 군사력 규모에만 주목했다면, 오늘날의 권력은 네트워크의 통제권, 기술 표준의 지배력, 데이터 흐름의 장악력과 같은 구조적 위치에서 파생된다. 경제적 타격과 기술 차단은 군사력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일상적으로 동원될 수 있기에, 미중 패권 전쟁은 전면전 파국을 피하면서도 고강도의 신경전이 상시화되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3. 안보의 정치화의 심화

지경학의 전면화는 단순히 경제 수단이 안보 목표를 위해 활용되는 현상을 넘어, 경제, 기술, 금융, 심지어 데이터 영역 전반이 국가 안보의 범주로 편입되는 안보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security) 국면으로 진입했다. 안보의 정치화란, 특정 사안이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론적 위협으로 선언됨으로써 일반적인 정치적 논리를 뛰어넘어 국가의 비상하고 강력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뜻한다.[23] 어떤 기술이나 산업이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의 문제로 판단되는 순간, 국가는 시장의 규칙을 무시하고 전권을 행사할 명분을 얻게 된다.

미국의 최근 행보는 이러한 안보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첨단 반도체 규제 및 해외투자 규제는 자유무역 규범과 시장 경제 원칙에 배치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를 국가 안보 수호라는 상위의 전략적 명분 아래 정당화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자유주의라는 전통적 가치가 안보논리에 의해 잠식되었음을 의미한다. 중국 역시 시진핑 체제의 총체적 국가안전관에 입각하여 경제, 기술, 데이터, 공급망 등 광범위한 영역을 안보의 범주로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첨단 기술의 국산화나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는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체제 보호를 위한 필수적인 안보전략으로 격상되었다. 결국 정치의 안보화는 특정체제의 전유물이 아닌 미중 간 구조적 패권경쟁이 만들어낸 지경학적 현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안보의 정치화는 국제사회에 세 가지 중요한 구조적 전환을 야기하고 있다. 첫째, 정책 영역 간의 전통적 경계가 무너져, 경제와 안보의 결합이 심화됨에 따라 정책결정의 가치기준은 시장의 효율성 극대화에서 전략적 취약성 제거와 회복탄력성 확보로 전이되었다. 둘째, 비상 조치의 일상화로, 안보를 명분으로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되면서, 수출통제나 투자 제한 같은 극단적 예외 조치들이 일상적인 정책 수단으로 고착화되었다. 셋째, 국제 규범의 변질로, 자유무역이나 개방이라는 보편적 규범은 이제 자국의 안보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지켜지는 조건부 원칙으로 축소되었다.

결국 안보의 정치화는 미중 경쟁을 장기적 소모전으로 견인하고 있다. 군사적 억지력이 무력 충돌을 방지할지라도, 안보의 명분으로 진행하는 경제제재와 기술차단은 지속적인 공세수단으로 작동한다.  특히 특정 산업이 안보 문제로 규정되는 순간,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경제적 편익을 고려할 자율성을 상실한 채 특정진영에 대한 전략적 충성을 강요받게 되며, 이는 결국 중견국의 중립적이고 실용적인 외교의 입지를 심각하게 좁히고 있다.

 

4. 표준경쟁과 규칙 권력의 재편

지경학의 전면화와 안보의 정치화가 심화되는 전장은 국제질서의 규칙과 표준 설계 권한을 둘러싼 가이다. 오늘날의 미중 패권 전쟁은 단순히 무역 교역량이나 군비의 양적 대결을 넘어 누가 기술의 표준을 세우고 미래의 규범을 선점할 것인가 하는 거대한 규칙 권력(rule-making capacity) 쟁탈전이다.

국제정치경제학에서 패권국이 누리는 구조적 권력(structural power)의 정점은 바로 규칙 형성 능력에 있다. 5G 통신망의 규격, 인공지능의 윤리 기준, 데이터 이동의 규칙 등은 단순한 기술적 사안을 넘어, 이를 선점한 국가가 자국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강력한 ‘잠금 효과(lock-in effect)’를 유발하여 후발 주자에 대한 진입장벽을 공고히 하는 전략적 자산이 된다.

과거 미국은 압도적인 혁신 역량과 글로벌 기구에서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이러한 규칙 권력을 독점해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표준 기구에서 영향력을 노골적으로 확대하며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은 신흥국에 대한 통신 인프라 제공을 매개로 중국식 기술 표준과 거버넌스 규범을 통시에 이식하는 고도의 전략은 자국의 통신 장비와 인프라를 신흥국에 건설해주는 것을 넘어, 중국식 기술 표준과 통치 규범을 함께 이식하는 거대한 전략이다.

특히 데이터와 플랫폼 영역에서의 갈등은 가치 체계의 충돌 양상을 띤다. 미국의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과 민간 주도의 개방성 원칙은 중국의 ‘사이버 주권’ 및 국가 주도의 통제 모델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적 차이를 넘어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체제 철학의 근원적 대립을 반영한다.

이처럼 표준과 규범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됨에 따라, 세계 질서는 단일한 자유무역 규범에서 이탈하여 각자의 표준을 추구하는 다층적이고 파편화된 ‘블록 경제’로의 구조적 전환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5. 공급망·금융·해양 공간에서의 다층적 갈등

지경학적 압박과 안보의 정치화, 그리고 표준 경쟁이라는 전략적 담론은 이제 물리적 공간과 비가시적 네트워크를 포괄하는 다층적인 전면전의 양상으로 전이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은 단일 영역의 국지적 대립을 넘어, 공급망, 금융 시스템, 그리고 핵심 해양 요충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얽혀 상호작용하는 복합 위기의 형국을 띠고 있다.

첫째, 전통적 안보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은 해양 공간이다. 특히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은 단순한 영토 분쟁지를 넘어, 글로벌 물동량의 핵심 항로이자 첨단 반도체 공급망의 중추적 노드(Node)이다. 미국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기반으로 쿼드(Quad), 오쿠스(AUKUS) 등 해양 안보 협력망을 공고히 하며 대중국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중국은 해군력 확장을 통한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으로 미국의 접근을 저지하고 있다.

둘째, 해양 공간의 긴장은 글로벌 공급망의 블록화(Fragmentation)를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은 가치 공유국 중심의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을 통해 배타적 공급망 재편을 시도하는 반면, 중국은 서구 기술 의존도를 탈피하기 위한 ‘기술 자립’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희토류 등 핵심 자원을 지정학적 무기로 활용하며 맞대응하고 있다.

셋째, 금융 네트워크는 중립적 교환 기제에서 국가 권력 행사의 핵심적 전략 자산으로 변모했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와 국제결제망(SWIFT)에 대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금융 제재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에 대항하여 위안화 국제화 및 독자적 다자간 결제망(CIPS) 구축을 통해 달러 패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동조화(Decoupling)를 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세 가지 전장은 상호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긴밀한 연쇄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해상 교통로의 통제는 즉각적인 공급망 마비를 초래하며, 기술 표준의 우위는 군사력의 고도화로 직결되고, 결제망의 장악은 상대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원천적으로 제약한다. 이처럼 한 영역의 충돌이 타 영역으로 확산되는 복합 융합 위기 구조 속에서, 대규모 전면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안보를 명분으로 한 경제적 제재와 기술 봉쇄가 일상화되는 ‘고강도 상시 갈등 상태’가 국제 질서의 새로운 상수가 되었다.

 

제5장. 미중 패권 전쟁과 국제정세 전망

 

1. 진영 간 블록화와 다극적 자율성의 병존

21세기의 국제질서는 과거 냉전기와 같은 단순 양극 체제로 회귀하기보다,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진영 간 블록화와 개별 국가들의 다극적 자율성이 공존하는 복합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외견상 신냉전의 양상을 띠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사안에 따라 협력과 갈등의 축이 변하는 훨씬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질서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먼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안보 및 기술협력 체제는 점차 구조적 제도화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한 한미일 3국의 협력은 정보 공유, 미사일 경보 체계 연동, 핵심 공급망 공조 등을 아우르며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선 상시적 전략 기제로 정착되었다.[24] 이러한 연대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거시적 틀 안에서 군사, 기술, 공급망을 포괄하는 다차원적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밀착 또한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양국 관계는 전통적 의미의 군사 동맹은 아니나, 에너지 협력과 합동 군사 훈련, 외교적 상호 지지를 통해 서방의 제재에 대응하는 강력한 방어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여기에 북한이 가세한 북중러의 안보 연대는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구조화하는 변수가 되고 있다. 다만, 이들의 연대는 이념적 결속보다는 제재 회피와 전략적 생존 공간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고도의 기능적 연대에 가깝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블록화의 흐름 이면에서는 국가들의 자율성이 강조되는 다극화 경향이 병행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안보 차원에서 미국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전면적 디커플링 대신 위험을 관리하는 디리스킹(De-risking)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 역시 안보의 축은 유지하되 경제적 실리를 도모하는 선택적 정렬을 통해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인도는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에 참여하는 동시에 러시아와 대규모 방산, 에너지 협력을 지속하며 다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대 국제정치는 패권 경쟁에 의한 진영 재편 압력과 세계 경제의 높은 상호의존성, 그리고 중견국들의 자율성 추구가 충돌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사안별 이합집산이 교차하는 다층적 질서가 형성되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고정된 안정과 극단적 불안정이 공존하는 일종의 ‘전략적 회색 지대’가 될 것이다.


2. 갈등의 상시화와 불확실성의 제도화

블록화와 다극화가 교차하는 현재의 국제질서는 안정적인 균형 상태로 수렴되기보다, 고강도 권 경쟁이 일상적 규범으로 안착하는 갈등의 제도화 단계에 진입했다. 미중 패권경쟁은 특정 사안에 따른 일시적 변동성을 넘어, 양국의 국가 전략과 대외 정책 기저에 구조적으로 내재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상시화는 다음의 네 가지 층위에서 구체화된다.

첫째, 대만 해협을 둘러싼 위기의 일상화이다. 대만은 최첨단 반도체 공급망의 심장부로, 지경학과 안보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최근 중국 군용기의 방공식별구역(ADIZ) 진입이나 해상 포위 훈련은 일회성 무력시위가 아니라 하나의 중국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반복적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역시 무기 판매와 고위급 교류를 늘리며 대만 방어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 채 억지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전면전은 억제되고 있으나, 전쟁은 없지만 결코 평화롭지도 않은 구조적 긴장의 상태로 고착되었다.

둘째, 해양 공간에서의 억지력 제도화이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해상 교통로는 글로벌 가치 사슬의 핵심이다.  미국은 이 해역에서 정기적인 항행의 자유 작전을 전개하며 질서 수호의 의지를 과시하고, 중국은 인공섬 무장화와 해군력 팽창으로 반접근/지역거부(A2/AD) 역량을 다지고 있다.[25]  이러한 군사 활동이 위기 발생 시의 사후 대응이 아니라, 항시적인 충돌을 전제로 한 일상적 준비 상태(readiness)의 표출이라는 점이다.

셋째, 기술 및 경제 정책의 전면적 안보 자산화이다. 미국의 첨단기술 수출 통제, 외국인 투자심사 강화, 산업 보조금 지급은 일시적인 보호무역 조치를 넘어 중국의 부상을 구조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장기적 법적, 제도적 장치로 확립되었다. 반면, 중국의 쌍순환 전략 및 과학기술 자립자강    노선 역시 안보의 정치화가 특정 정권의 일시적 선언을 넘어 국가 운영의 핵심 원리로 법제화된 사례다. 이로써 기술과 경제는 시장 논리가 아닌 국가 안보 논리에 의해 관리되는 상시적 전략 수단이 되었다.

넷째, 지정학적 불확실성의 상수화(常數化)이다. 과거 냉전기의 이념적 경직성과 달리, 현대 국제질서는 기술, 금융, 인권 등 각 의제에 따라 국가 간 이합집산이 가변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한다. 민간 기업은 이제 지정학적 리스크를 경영 전략의 핵심 변수로 상정하여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으며, 국가는 전략 산업을 안보 영역 내로 포섭하여 관리하고 있다. 즉, 불확실성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국가와 시장이 상시적으로 적응하고 관리해야 할 제도적 환경으로 고착되고 있다.


3. 글로벌 사우스와 다층적 질서 변수

미중 패권 경쟁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질서가 과거와 같은 단순 양극 체제로 회귀하지 않는 결정적 요인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부상에 있다. 강대국 정치의 수동적 객체에 머물렀던 신흥국들은 이제 강력한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바탕으로 질서 재편의 향방을 좌우하는 캐스팅 보터로 부상하였다.

첫째, 전략적 자율성에 기반한 복합 헤징 전략이다. 인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면서도 러시아와의 에너지 및 방산 협력을 지속하는 독자적 국익 중심의 행보를 보인다. 아세안 국가들 또한 미국과는 안보 협력을,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는 경제적 밀착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신흥국들의 선택적 협력은 진영 간 완전한 블록화를 저지하는 구조적 제동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둘째, 에너지 전환기에 따른 자원 지정학(Resource Geopolitics)의 재편이다. 4차 산업혁명과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리튬, 코발트, 니켈 등 핵심 광물을 보유한 자원 부국들의 전략적 가치가 급등하였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선점한 자원 공급망에 대응하여 미국과 유럽이 대규모 투자로 맞불을 놓으면서, 자원 부국들은 공급망 통제권을 지렛대 삼아 강대국 사이에서 협상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셋째, 대안적 다자주의(Alternative Multilateralism)를 통한 국제 규범의 다원화이다. 브레튼우즈 체제로 대표되는 서방 중심의 금융 질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이나 브릭스(BRICS)의 신개발은행(NDB)은 개발도상국에 서방의 정치적 조건을 우회할 수 있는 대안적 금융 기제를 제공한다.[26] 이는 국제사회의 규칙 제정권(Rule-making Power)이 다중 중심 구조로 분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글로벌 사우스의 행보는 미중 경쟁의 파국을 막는 구조적 완충지대가 될 수도, 혹은 특정 진영에 포섭되어 진영 대결을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현재의 국제질서는 블록화와 다극화의 모순이 공존하는 전환의 입구에 서 있으며, 그 최종적인 출구는 글로벌 사우스라는 다층적 행위자들의 전략적 선택과 연대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제6장. 한국의 전략적 대응과 선교적 대응 방향

 

1. 질서 전환기 한국의 대응 전략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전환적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은 강대국의 압박을 수용하기만 하는 수동적 행위자가 아니다. 한국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함과 동시에, 글로벌 첨단 공급망의 핵심 노드(Node)이자 기술 생산의 허브로서 질서 재편 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이다. 중견국(Middle Power) 외교 이론에 입각할 때,[27] 한국은 체제의 충격을 완충하고 새로운 협력의 공간을 창출할 전략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대응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구조적 제약을 전략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고도화된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 전략의 전개이다. 한국은 한미동맹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안보 축을 견지하면서도 중국과 고도의 경제적 상속의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연결성을 외교적 딜레마가 아닌 한국만의 독자적 전략적 공간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을 공고히 하면서도 대중국 경제, 외교 채널을 가동하는 전략적 균형은 진영 편입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하고 안보 공백을 최소화하는 실용적 선택이다. 이는 소극적 기회주의를 넘어 한국 스스로 의제를 제시하는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둘째, 첨단 산업 및 기술 거버넌스에서의 주도권 확보이다. 지경학의 시대에 기술과 공급망은 그 자체로 핵심적인 권력 자원이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 한국이 점유한 독보적 위치는 새로운 기술 규칙과 글로벌 표준 형성 과정에서 강력한 발언권의 기반이 된다. 한국은 AI 윤리, 데이터 거버넌스 등 다자간 포럼에서 '룰 메이커(Rule-maker)'로서의 지위를 확립해야 하며, 강대국의 규칙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기보다 규칙 형성 과정에 직접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구조적 자율성을 수호해야 한다.

셋째, 안보 동맹의 강화와 외교적 기동 공간의 동시 확장이다. 한미동맹의 강화가 외교적 자율성의 축소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견고한 안보 억지력이 담보될 때 외교적 중재와 연결의 공간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한국은 동북아 해양 긴장이나 공급망 병목 현상에 대해 비공식적 대화 채널을 주도하고, 기후 변화 및 보건 협력과 같은 연성 이슈(Soft Issue)에서 다자 연대를 촉진하는 '글로벌 위기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넷째, 글로벌 사우스와의 다층적 네트워크 재구성이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전략적 자율성 확대는 한국에 중요한 외교적 돌파구를 제공한다. 인도, 아세안,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연대는 시장 다변화를 넘어 패권 경쟁의 압력을 분산시키는 '전략적 후방' 구축 작업이다. 공급망 재편 및 디지털 인프라 구축 영역에서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하는 다층적 중견국 네트워크는 신냉전식 블록화를 완화하는 실질적인 완충 장치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질서 전환기 한국의 국가 전략은 단선적인 진영 선택을 넘어, '거대한 구조 재편 과정에서 어떤 질서를 설계할 것인가'라는 차원으로 도약해야 한다. 수동적 균형에 안주한다면 외부 구조에 휩쓸리는 객체로 전락할 뿐이다. 억지와 연결, 경쟁과 협력 사이에서 '구조적 완충 지대'를 능동적으로 설계해 내는 것만이 미중 패권 전쟁 속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자 발전 전략이다.

 

2.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선교적 대응

미중 패권 전쟁과 지경학적 전환은 세속 국가들의 권력 투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는 국경을 넘나드는 인적 이동, 금융 자본의 흐름, 정보 통신 네트워크, 그리고 국가의 법적 규제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며 선교 환경의 구조 자체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선교는 국제정세와 무관하게 진공 상태에서 벌어지는 사적이고 영적인 활동으로만 규정될 수 없다.

국가가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 단순한 진영 선택을 넘어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를 통한 다층적인 생존 네트워크를 개척해야 하듯, 교회 역시 극단적인 안보화와 블록화의 장벽 앞에서 과거의 일방향적 파송 체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현지 교회와 연대하는 다중심적(Polycentric) 생존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처럼 국제정치의 지경학적 변동은 선교의 ‘지영적(地靈的)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 선교적 대응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안보의 정치화에 대응하는 선교 현장의 디지털 보안(Digital Security) 및 위기관리 시스템의 고도화이다. 첨단 기술이 안보 자산이 되면서 중국을 비롯한 권위주의 국가들의 감시 체계는 매우 고도화된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안면 인식 기술, 스마트 시티 인프라, 위챗과 같은 플랫폼을 통한 디지털 발자국 추적은 선교사들의 일상적인 활동과 동선을 데이터로 환원하여 통제한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과거처럼 가명을 쓰거나 은어를 사용하는 수준의 아날로그적 보안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선교 단체들은 선교현장 폐쇄라는 현상적 결과에 매몰되기 보다, 적성 국가가 선교 네트워크를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는 구조적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나아가 선교사 파송 시 IT 보안 교육을 의무화하고, 비자 거부나 추방 사태에 대비한 출구 전략과 위기관리 매뉴얼을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선교 행정의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지경학적 블록화에 맞서는 비즈니스 선교의 구조적 재편이다. 과거 자유무역에 기반한 세계화 시대에는 선교지 진입과 비자 발급을 목적으로 한 소규모 유령회사(Paper Company) 형태의 비즈니스 선교 전략이 어느 정도 유효했다. 그러나 글로벌 가치사슬이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나눠지고, 서방의 디리스킹(De-risking)과 중국의 일대일로(BRI) 등 공급망이 블록화되는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그러한 임기응변식 접근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향후의 비즈니스 선교는 현지의 변화된 경제 블록 안에서 실제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지역 사회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경학적 생존력(Geoeconomic Viability)을 갖춘 모델로 진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중국 등 선교지에서의 소규모 카페나 어학원 중심의 모델을 벗어나, 아세안 중심의 대체 공급망 부상에 발맞춰,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현지인 대상  IT기술 직업훈련소나 친환경 농업 인프라 기업 등 글로벌 가치사슬의 흐름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고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선교단체 간 정보 공유 플랫폼 구축 등 연합적 대응체계가 필요하다. 아울러 극단적인 송금 차단 사태에도 선교 현장이 자립할 수 있는 펀딩 루트의 다변화와 자비량 선교 모델의 고도화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셋째,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에 따른 다중심적 선교(Polycentric Mission) 네트워크로의 이양이다. 지경학적 전환은 선교의 중심축을 서구 및 한국 중심에서 다극 체제로 이동시키고 있다. 특정 국적 선교사들이 중국이나 중동, 북아프리카의 전략적 요충지로 직접 진입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집중형 직접 파송 모델’에서,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의 현지 교회 리더십과 동역하는 ‘분산형 네트워크 모델’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념적 대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제3세계 선교사들과 전략적 연대를 맺고,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를 따라 전 세계로 흩어지는 중국인 디아스포라 노동자들을 새로운 선교적 접촉점으로 삼는 등, 지정학적 흐름을 역이용하는 유연한 선교 네트워크를 설계해야 한다.

넷째, 신중화주의와 디지털 전체주의에 맞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공공신학의 정립이다. 미중 경쟁이 격화될수록 양 진영 내부에서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적대 담론이 심화될 것이다. 특히 중국 내에서는 신중화주의적 질서 아래 기독교를 국가 통제 아래 두려는 기독교 중국화(中國化)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이때 외부의 선교 세력이 이들을 구출하려 하거나 서방의 정치적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현지 교회를 더욱 깊은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제 선교의 초점은 핍박받는 교회들이 고난 속에서도 복음의 본질을 지켜내며, 영적 자생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고난의 신학과 회복탄력성을 지원해야 한다. 동시에 인간을 데이터와 통제의 대상으로 환원하려는 디지털 기술 패권주의에 맞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 존엄을 변증하는 치열한 공공신학적 성찰이 수반되어야 한다. 복음은 국가 체제를 초월하며, 선교는 적대의 언어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한복판에 십자가의 화해를 심는 거룩한 소명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단기적 성과주의를 탈피한 구조적 신뢰 축적의 장기 전략이다. 미중 패권 전쟁은 단기간에 종식될 국지전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구조 전환이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상시화된 환경에서, 눈에 보이는 개종자 수나 단기 프로젝트 달성에 집착하는 선교는 한계에 이르렀다. 위기의 시대에 가장 강력한 선교적 자산은 다름 아닌 관계적 신뢰이다. 현지 정부의 감시와 핍박, 비자 취소의 위협 속에서도 끝까지 지역 사회와 호흡하며 진정성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공동체만이 장기적인 복음의 영향력을 담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선교 평가도 숫자 중심의 단기 평가에서 벗어나 신뢰 관계 중심의 새로운 장기 질적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미중 패권 전쟁이라는 거시적 국제정치구조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중단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국제정치와 선교 환경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패배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이러한 국제정세 변화의 지형도 위에 성령의 동선(動線)을 읽어내는 영적, 선교 지경학적 통찰력이 절실하다.

 

제7장 결론

 

21세기의 미중 패권 경쟁은 단순히 부상하는 국가와 기존 패권국 간의 세력 교체가 아니라, 글로벌 질서의 규칙과 제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구조적 변동이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평화를 담보할 것이라는 세계화 시대의 전제는 효력을 다했으며, 안보의 논리가 경제와 기술을 압도하는 지경학적 현실이 새로운 표준(New Normal)으로 자리 잡았다. 블록화와 다극화가 복합적으로 얽히고 갈등과 불확실성이 상시화된 이 전환의 구조 속에서, 관성적인 국가 전략과 기존의 선교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한 응답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지경학적 단층선 위에서 한국은 딜레마에 갇힌 수동적 행위자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첨단 기술 생태계의 핵심 노드라는 구조적 위치를 전략적 지렛대로 삼아, 이분법적 진영 논리를 넘어 글로벌 사우스와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강대국 간의 충돌을 완충하고 새로운 다자 협력의 공간을 열어가는 능동적 중견국으로서 주도적 외교 역량 확보만이 현 질서에서 국가의 생존과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이다.

이 거대한 지경학적 변동은 선교 전략에도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선교는 국제정치의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중국의 데이터 통제 체제와 각국의 포괄적 안보화 조치들은 전통적인 선교의 접근법을 직접적으로 제약하고 있다. 따라서 현상의 이면에 작동하는 체제의 논리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구조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향후 선교의 방향은 고도화된 안보 국가의 통제를 우회하는 정교한 디지털 보안 체계의 구축과 블록화된 경제 환경 속에서 실질적 자생력을 갖춘 비즈니스 선교(BAM)의 전략적 재편으로 이어져야 한다. 또한 일방적 파송 중심에서 벗어나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십과 수평적으로 협력하는 다중심적(Polycentric) 네트워크로 확장해야 한다. 나아가 체제의 압박 아래 놓인 현지 교회의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지원하며, 단기적 성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지와의 신뢰를 축적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국제 정치의 패권 지도는 시대적 조건에 따라 변화하지만,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어떤 구조적 제약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지금 한국 선교계에 필요한 것은 급변하는 국제 질서 앞에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 지형을 객관적으로 통찰하고 복음의 새로운 통로를 발견하는 지정학적 상상력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냉철한 지성과 갈등의 중심에 화해의 복음을 심는 전략적 결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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