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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시대와 선교

  • 작성자 사진: mmihpedit
    mmihpedit
  • 9월 30일
  • 4분 분량

이철영(국제정세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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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단어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였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이를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감정과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고 정의한다(Oxford English Dictionary, 2016). 이 정의는 포스트 트루스라는 개념이 단순히 거짓말이 많아졌다는 의미를 넘어, 사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더 이상 대중을 설득하는 힘을 가지지 못하는 시대적 변화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진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신뢰하지 않으며, 대신 자신이 믿고 싶은 것과 자신의 집단 정체성을 강화해 주는 서사와 감정에 더 크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 변화는 정치, 언론, 사회 전반에 심대한 충격을 주었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은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국민투표다. 당시 가장 널리 퍼진 캠페인 구호는 “영국이 EU에 매주 3억 5천만 파운드를 내고 있다. 그 돈을 국민보건서비스(NHS)에 쓰자”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영국은 EU로부터 돌려받는 리베이트와 투자를 고려하면 실제로 부담하는 금액은 절반에 불과했다(Rose, 2017). 그럼에도 이 메시지는 영국 국민들의 불안을 자극했고, 결국 이성적 분석보다 감정적 분노와 불만이 국민투표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브렉시트는 사실이 아니라 감정이 승리한 정치적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많은 학자들은 이를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시작을 알린 사건으로 평가한다.


브렉시트와 같은 정치적 전환점과 더불어, 포스트 트루스의 확산에는 가짜 뉴스(fake news)의 등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가짜 뉴스는 완전히 혹은 대부분 조작된 이야기를 뉴스 보도 형식으로 포장하여 온라인과 SNS에 게시하고, 사람들의 클릭과 공유를 통해 확산되는 방식으로 퍼진다. 이는 단순한 유머나 장난이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체계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된다. 특히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사회일수록 가짜 뉴스는 각 진영의 확신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제공자들은 독자가 이미 믿고 싶어 하는 음모론적 서사를 활용해 주류 언론이나 당국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드러내는 듯한 내러티브를 만든다. 가짜 뉴스를 통해 얻는 직접적 목적은 광고 수익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상대 진영을 불신하게 하고 민주주의적 합의 과정을 마비시키는 효과를 낳는다(Rose, 2017).


이렇듯 포스트 트루스 시대는 단순히 진리가 사라진 시대가 아니라, 진리가 존재해도 그것이 더 이상 결정적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시대다. 사람들은 진실을 따르기보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감정적으로 공감하며, 정체성을 지지해 주는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인다. Hannon(2023)은 이 현상을 단순히 “진리가 죽었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오해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진리를 믿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출처에서 나온 주장만을 진리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 트루스란 ‘진리의 종말’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권위의 붕괴’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포스트 트루스 시대가 도래했는가? 학자들은 여러 이유를 제시한다. 우선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반전문성(anti-expertise)이다. Fuller(2018)는 브렉시트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내놓은 경제·정치적 분석이 “국민의 의지(the will of the people)”라는 정치적 슬로건에 압도당했다고 설명한다. 전문가의 경고는 대중에게 불신을 불러일으켰고, 오히려 ‘엘리트의 음모’로 인식되었다. 이는 전문성이 대중 정치에서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Bennett와 Livingston(2018)은 민주주의 제도와 전통 언론이 약화되면서, 과학자·언론인·전문가와 같은 기존의 지식 권위자들이 신뢰를 상실했다고 분석한다. 그 결과 대중은 기존의 신뢰할 만한 지식 출처 대신 자신이 선호하는 정보원과 미디어만을 추종하게 되었다.

Hannon(2023)은 더 나아가 민주주의 사회 자체의 구조적 요인도 지적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국가적 사안에 대해 의견을 가져야 한다는 압력을 형성하는데, 이는 실제로 잘 알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억지로 의견을 내도록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아는 척하며 말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실과 무관한 무책임한 발언, 즉 ‘bullshit(헛소리)’이 늘어난다. 이처럼 시민들이 스스로 전문가처럼 행동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공적 담론은 더 이상 진리와 사실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Davies(2016) 또한 이러한 반전문성 문화가 포스트 트루스 정치의 중요한 토양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제 질문은 자연스럽게 선교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특징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인식이었다. 선교지에서 많은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을 당연하게 따르면서도 그것이 진리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무슬림으로 태어나서 무슬림으로 사는 것은 진리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는 영혼들은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종교적 주장 중 하나가 아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영향력이 선교지로 확산된다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질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진리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거짓을 진리처럼 굳게 믿는 현상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유튜브, 페이스북, 틱톡과 같은 SNS 플랫폼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선교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 매체들은 종교적 극단주의, 음모론, 정치적 선동을 ‘진리’로 포장하여 현지인들에게 전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복음은 단순한 무관심의 장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견고하게 자리 잡은 거짓 ‘진리’와 맞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는 선교사들에게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물론 모든 영혼들이 진리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포스트 트루스적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선교지에 뿌리내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예가 유대인이다. 다른 종교들과 달리 유대교는 구약을 믿는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신앙의 근본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근거로 전하는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성경이 곧 자신에 대해 기록한 것임을 밝히셨지만(눅 24:27), 정통 유대교는 이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랍비 전통을 통해 형성된 해석 체계와 반기독교적 정서, 그리고 민족 정체성에 깊이 뿌리내린 ‘다른 진리’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의 말씀을 신앙적으로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복음을 배척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집단적 내러티브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통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고도, 그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포스트 트루스 시대는 교회와 선교에 심각한 위기이자 동시에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세상이 진리를 가볍게 여기고 감정과 정체성 정치에 휘둘릴수록, 교회는 더욱 분명한 진리의 등불로 서야 한다. 선교 현장에서는 복음을 단순한 주장이나 이론이 아니라, 삶과 사랑으로 드러내야 한다. 오히려 수많은 거짓 ‘진리’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실망한 사람들은 결국 참된 진리를 찾게 될 것이다. 가짜는 언제나 진짜를 흉내 내며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지만, 복음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속이거나 강제로 설득하지 않는다. 복음은 진리이기에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교회는 “진리 없는 세상” 속에서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진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다시금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세상의 헛된 말과 거짓을 넘어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해야 할 때다.



Reference


Bennett, W. L., & Livingston, S. (2018). The disinformation order: Disruptive communication and the decline of democratic institutions. European Journal of Communication, 33(2): 122–139.

Davies, W. (2016). Post-truth politics and the social sciences. Environmental Sociology, 3(1): 1-5.

Fuller S. (2018). “Post Truth” Cambridge University Press.

Hannon, M. (2023). The politics of post-truth. Critical Review, 35(1–2): 40–62.

Rose, J. (2017). Brexit, Trump, and post-truth politics. Public Integrity, 19(6): 555–558.

Suiter, J. (2016). Post-truth politics. Political Insight, 7(3): 25–27.

Oxford English Dictionary. (2016). Post-truth, adj. and n. In Oxford English Dictionary Online.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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