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바도기아의 사가랴 죽음 벽화로 보는 초기 기독교 신앙
손준우, 금상오, 이지은(소아시아 연구회)
이전에 갑바도기아를 소개한 글인 「갑바도기아 – 튀르키예의 초대교회 유적」에서는 갑바도기아의 역사와 초대교회 유적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1] 그 글에서는 토칼르교회[2]의 성화와 관련 전승을 매우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토칼르교회의 사가랴의 죽음 장면과 그 배경이 되는 전승을 살펴보고, 이 장면이 마태복음 23:35의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사가랴의 죽음 장면
사가랴의 죽음 장면은 대표적인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조성된 비잔틴 암굴교회인 토칼르교회의 옛 교회(Eski Kilise)에 있다. 옛 교회는 원래 단일 신랑과 반원통형 천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천장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보여 주는 성화 연작이 여러 패널로 나뉘어 있다. 사가랴의 죽음 장면은 천장 왼쪽 상단 패널의 마지막 장면으로, 동방박사의 경배, 무고한 아이들의 학살, 이집트로의 피신, 성전에서 예수님을 봉헌하는 장면에 이어 배치되어 있다(T. C. Kültür ve Turizm Bakanlığı, n.d.).
엡스타인(1986)은 이 장면을 ‘사가랴의 죽음(Death of Zacharias)’으로 명명하고,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두 인물에게 공격받는 장면으로 설명한다. 또한 이 장면의 출처로 『야고보 원복음서』 (Protoevangelium of James) 23장 3절을 제시한다(Epstein, 1986).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죽음은 정경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외경에는 그의 순교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지 가이드들은 토칼르교회의 이 장면을 마태복음 23:35에 언급된 사가랴의 순교와 연결하여 설명한다. 그렇다면 토칼르교회의 성화는 실제로 마태복음 23:35에 나오는 사가랴를 묘사한 것일까? 이러한 동방 교회의 해석은 오늘날 개신교 주석에서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지는 견해이다. 따라서 먼저 마태복음 23:35와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 11:51에 대한 주요 주석들의 해석을 살펴본 후, 초기 동방 교회의 전승을 검토하고자 한다.
마태복음 23:35의 해석
마태복음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누가복음 11: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마태복음 23:35에 나오는 사가랴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성경 해석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마태복음은 사가랴를 '바라갸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그가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한다. 반면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성경 주석들은 이 구절에 관해 다양한 견해를 제시한다. 여러 주석에서 마태복음 23:35의 사가랴와 관련하여 논의되는 인물은 다섯 명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역대하의 사가랴, 스가랴서의 선지자 스가랴,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주요 해석 후보로 거론된다. 이 밖에도 이름의 유사성이나 역사적 사건과 관련하여 이사야 8:2에 나오는 스가랴와 요세푸스가 기록한 사가랴 벤 바루흐가 검토되기도 한다. 이사야 8:2에 나오는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는 마태복음의 '바라갸의 아들'이라는 표현과 아버지 이름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전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이나 전승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인물은 직접적인 해석 후보라기보다 아버지 이름의 유사성 때문에 검토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다. 한편 요세푸스가 기록한 사가랴 벤 바루흐는 유대 전쟁 당시인 주후 68년경 성전에서 살해된 인물이다. 예수님의 발언이 역사적으로 이 인물을 가리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주요 해석 후보에서 제외하고자 한다.
먼저 가장 널리 지지되어 온 견해인 역대하 24장의 사가랴를 살펴보자. 역대하 24:20–22에 따르면 여호야다의 아들 사가랴는 여호와의 전 뜰에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했다. 많은 주석가가 역대하 24장의 사가랴를 마태복음에 나오는 사가랴로 보는 이유는 무엇보다 두 인물의 죽음의 장소와 상황이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역대하의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성전에서 죽임을 당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사가랴를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인물로 언급하시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계속해서 박해하고 죽여 온 예루살렘을 책망하신다. 또한 히브리어 성경의 배열에서 역대기가 마지막에 위치하는 전통이 있어 왔으므로 ‘아벨에서 사가랴까지’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살해된 역사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본문에 기록된 사가랴의 아버지 이름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일부 학자들은 전승 과정에서 이름이 달라졌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다른 학자들은 여호야다와 베레갸라는 서로 다른 아버지의 이름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설명하려 한다.
두 번째로, 스가랴서의 선지자 스가랴는 스가랴서 1:1에서 베레갸의 아들로 소개되므로 마태복음에 나오는 사가랴와 아버지의 이름이 일치한다. 참고로 역대하의 사가랴와 스가랴서의 스가랴는 히브리어 성경 원문에서 동일하게 זְכַרְיָה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또한 마태복음 전체가 구약의 예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마태복음 23장의 심판 선언이 스가랴서의 종말론적·심판적 주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마태가 스가랴서의 선지자 스가랴를 염두에 두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스가랴서의 선지자 스가랴가 성전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은 성경에 남아 있지 않다. 또한 그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제2성전이 재건되던 시기에 활동한 인물이므로, 성전에서 살해되었다고 볼 만한 역사적 근거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 월튼 외(2010)는 마태복음에 스가랴 선지자에 대한 언급과 여호야다의 아들 사가랴에 대한 암시가 함께 존재한다고 보았다. 모스(2002)는 마태복음에 나타난 스가랴 전승을 분석하면서, 마태가 ‘바라갸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실수라기보다 자신의 신학적 목적에 따른 의도적인 선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한다. 사건 자체는 역대하 24장에서 순교한 사가랴를 떠올리게 하지만, ‘바라갸의 아들’이라는 이름 표현은 스가랴서의 선지자 스가랴와 의도적으로 연결하여 예수님과 스가랴서의 목자-메시아 전승을 더욱 강하게 부각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마태복음 23:35의 사가랴를 세례 요한의 아버지로 보는 견해는 초기 동방 기독교의 전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리겐(약 185–253/254)은 3세기에 저술한 마태복음 주석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오리겐은 마태복음 23:35의 사가랴를 논하면서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전승에도 주목한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오는 '너희가 죽인'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며, 사가랴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살해되었다고 해석한다. 오리겐의 논의에서는 예수님 시대와 가까운 인물인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도 중요한 해석의 대상으로 다루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야고보 원복음서』의 전승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야고보 원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관한 초기 기독교 문헌으로, 헤롯의 유아 학살과 관련하여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에서 살해되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 전승에서 사가랴는 헤롯에게 세례 요한의 행방을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에서 순교했다는 이야기는 정경 복음서와는 구별되는 별도의 전승으로 동방 기독교에서 전해지고 발전했다.
동방 교회의 모든 교부가 마태복음 23:35의 사가랴를 세례 요한의 아버지로 해석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요한 크리소스톰(약 347–407)은 마태복음 주석에서 이 사가랴를 역대하의 여호야다의 아들 사가랴와 연결한다. 한편 갤러거(2014)에 따르면 바실리우스(약 329/330–379), 니사의 그레고리(약 335–395), 알렉산드리아의 키릴(약 376–444)은 마태복음 23:35의 사가랴를 세례 요한의 아버지로 해석했다. 이들의 해석은 초기 동방 기독교에서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순교 전승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준다. 바실리우스와 니사의 그레고리는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와 함께 갑바도기아의 3대 교부로 불린다. 이들이 마태복음 23:35의 사가랴를 세례 요한의 아버지로 해석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해석 전통은 후대 갑바도기아 지역의 기독교 신앙과 성화 전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자, 이 지역에 형성되어 있던 동방 기독교의 사가랴 전승을 이해하는 하나의 맥락이 될 수 있다.
토칼르교회의 사가랴 성화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
어느 사가랴를 가리키든,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핵심은 분명하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의인과 선지자들을 거부하고 박해해 온 예루살렘을 책망하신다. 아벨은 성경에서 의인의 죽음을 보여 주는 첫 사례이다. 마태복음의 사가랴를 역대하의 사가랴와 연결하면, 그는 히브리 성경의 역사에서 의인의 죽음을 상징하는 마지막 인물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를 연결하면, 의인의 죽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싼 동시대의 박해와 관련된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를 마태복음 23:35와 연결하는 동방의 전승은 또 다른 신학적 울림을 준다. 이는 '아벨에서 사가랴까지'라는 표현을 구약 역사의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 구원자를 증언하는 이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의인의 고난과 순교의 역사로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칼르교회의 사가랴 프레스코를 볼 때, 우리는 “마태복음 23:35의 사가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이 프레스코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탄생을 둘러싼 사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했는지를 보여 준다.
마태복음에는 의인의 피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있다. 역대하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성전에서 죽은 사가랴가 있다. 스가랴서에는 베레갸의 아들인 선지자 스가랴가 등장한다. 초기 기독교 전승에는 헤롯의 박해로 성전에서 죽임을 당한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등장한다. 그리고 비잔틴 세계에서는 사가랴의 죽음이 교회 벽화로 남겨졌다. 토칼르교회의 사가랴 프레스코는 바로 이처럼 복잡하고 풍성한 전승이 만나는 지점이다. 따라서 이 프레스코는 마태복음 23:35의 사가랴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을 단순히 끝내 주는 그림이 아니라, 성경 본문과 초기 기독교의 전승, 비잔틴 기독교의 신앙과 미술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귀중한 시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토칼르교회의 사가랴 프레스코를 바라보면, 이 오래된 그림은 단순한 관광 유적을 넘어, 의인의 죽음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고 해석해 온 초기 기독교 신앙의 증언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참고문헌
Epstein, A. W. (1986). Tokalı Kilise: Tenth-century metropolitan art in Byzantine Cappadocia. Dumbarton Oaks Research Library and Collection.
Gallagher, E. L. (2014). The blood from Abel to Zechariah in the history of interpretation. New Testament Studies, 60(1), 121–138. https://doi.org/10.1017/S0028688513000246
Moss, C. M. (2002). Zechariah and the Gospel of Matthew: The use of a biblical tradition [Doctoral dissertation, Durham University]. Durham E-Theses. https://etheses.dur.ac.uk/4220/
Mustafa Uysun. (2021, February 26). Göreme Açık Hava Müzesindeki Tokalı Kilise [Video].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bycCWEcHfH4
Taveneaux, A. (2011, July 6). Tokali kilise 11.jpg [Photograph].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5971079
T. C. Kültür ve Turizm Bakanlığı. (n.d.). Tokalı Kilise. Kültür Portalı. https://kulturportali.gov.tr/turkiye/nevsehir/gezilecekyer/tokali-kilise
Walton, J. H., Matthews, V. H., Chavalas, M. W., & Keener, C. S. (2010). IVP 성경배경주석: 신·구약 합본 (정옥배 외, 역; 개정판).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손준우, 박재현, 금상오, 이지은. (2025, 10월 20일). 갑바도기아 – 튀르키예의 초대교회 유적. MMI Global Bridge. https://www.mmiglobalbridge.org/ko/post/갑바도기아-튀르키예의-초대교회-유적
[1] 손준우, 박재현, 금상오, 이지은(소아시아 연구회), 「갑바도기아 – 튀르키예의 초대교회 유적」, MMI Global Bridge, 2025년 10월 20일, https://www.mmiglobalbridge.org/ko/post/갑바도기아-튀르키예의-초대교회-유적 (접속일: 2026년 10월 31일).
[2] 토칼르교회(Tokalı Kilise)는 튀르키예 네브셰히르(Nevşehir)주 괴레메 야외박물관(Göreme Açık Hava Müzesi)에 위치한 비잔틴 시대의 암굴교회로,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암굴교회로 알려져 있다. 단일 네이브 구조의 옛 교회(Eski Tokalı), 새 교회(Yeni Tokalı), 아래쪽 교회, 옆 예배당 등 네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튀르키예 문화관광부는 교회의 연대를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로 설명하며, 내부의 프레스코화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비롯한 성경의 여러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T.C. Kültür ve Turizm Bakanlığı, “Tokalı Kilise,” Kültür Portalı, https://kulturportali.gov.tr/turkiye/nevsehir/gezilecekyer/tokali-kili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