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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戰)에서의 ‘승리’ 개념 분석 - 미국•이란 전쟁을 중심으로

  • 7시간 전
  • 7분 분량

이철영(국제정세연구회 연구팀장)


과거의 전쟁에서 승리의 개념은 명확했다. 역사적으로 전통적인 국가 간 정규전에서 승리는 적국의 무조건적인 항복, 수도 함락, 영토 상실, 혹은 군사적 패배를 공식적으로 비준하는 조약 체결과 같이 전장 위에서 명확하게 목격할 수 있는 물리적 사건들로 규정되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984)를 비롯한 고전 전략 사상가들은 전쟁을 자국의 정치적 의지를 상대에게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았으며, 적의 물리적, 정치적 중심을 파괴하는 것을 승리로 가는 주요 전략으로 상정했다. 이러한 고전적 접근법은 군사력이 가진 압도적인 파괴 능력으로 적의 야전 군대를 전멸시키거나 무장 해제시키면, 저항하려는 적의 의지나 비용 감내력(cost tolerance) 자체를 완전히 무의미한 상태로 만들어 승리를 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고착화했다.

           하지만 현대전에서의 승리는 이전과 같이 명확하지 않다. 그 이유는 현대 작전 환경 자체가 국가 대 국가의 정형화된 전선이 아니라, 분산된 네트워크와 하이브리드 행위자가 개입하는 비정규전의 양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대 비정규전은 교전국 간의 물질적 역량이 극심하게 비대칭적일 뿐만 아니라 명확한 종결 시점 없이 극도로 장기화되는 특징을 지닌다. 더욱 결정적으로 전쟁의 중심 지형이 지리적 요충지가 아니라 '민간 주민의 통제와 충성심'이라는 인간적 영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적의 단일한 중심을 식별하여 타격하는 고전적 접근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이에 더해 디지털 플랫폼의 도구화는 정보 환경을 전쟁의 부차적 요소가 아닌 핵심 전장으로 격상시켰고, Singer & Brooking (2018) 등이 지적한 '라이크 워(LikeWar)'[1] 환경은 물질적 현실과 완전히 무관한 승리나 패배의 인식을 조작해 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국경을 맞대지 않은 해외 영토나 타국에 직접 대규모 군사력을 파병하여 전쟁을 치른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하지만 21세기의 미국은 20세기의 독일이 그러했듯 전술적(tactical) 및 작전적 측면에서는 탁월하지만 전략적(strategic)으로는 무능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으며, 이는 흔히 '전쟁에서는 이기고 평화는 잃는' 경향으로 묘사된다. 즉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전장과 전투에서는 승리하지만, 정말 전쟁에서 승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깊어진다.

 

현대전 승리의 다차원적 재정의


현대전에서 전쟁의 개념 자체가 변화하면서, 승리의 개념 역시도 재정의될 필요성이 있다. 현대 전략 환경에서 승리는 객관적인 물리적 사실이나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철저히 누군가의 의견이거나 다차원적 요인들이 상호작용하여 형성되는 ‘정치적, 인지적 판단'의 영역이다. Bartholomees(2008)의 이론에 따르면 승리는 관점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전쟁의 결과는 각 교전국에 독립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한쪽이 전술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더라도 자국이 설정한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다면 승리를 정당하게 선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대전의 승패는 이분법적이고 별개의 점적인(discrete) 개념을 탈피하여 '성과'와 '결정성'이라는 일종의 연속선 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전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일부 단기 정치 목표를 확보했으나 총체적인 정치 문제 해결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는 '이김(Winning)'으로, 갈등 밑바닥에 깔린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들을 결정적으로 해결한 최종 상태는 '승리(Victory)'로 엄격히 구분된다.

나아가 승리를 위해 적의 저항을 분쇄하는 역학은 클라우제비츠의 통찰을 빌려 라는 수학 공식으로 정식화 할 수 있다. 여기서 적의 저항력()은 저항 수단의 총량()과 의지의 강도()의 곱으로 표현된다. 현대전에서 적의 저항 수단()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진정한 성공은 오직 적의 저항 의지()를 꺾어 의지의 붕괴를 가져올 때에만 성취된다. 강대국이 이러한 상대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지 여부는 자국이 설정한 전쟁 목표의 본질에 따라 좌우된다.

Sullivan(2007)은 목표를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영토 점령이나 정권 축출처럼 무력 자체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물리력(brute force)'을 수반한 목표는 표적국의 순응을 필요로 하지 않아 달성 불확실성이 낮다. 반면 적대국의 대내외 정책 변화나 행동 유도를 목적으로 하는 '강압적' 목표는 전적으로 표적국의 자발적 순응에 의존하므로, 베일에 싸인 적의 심리적 한계점에 도달해야만 달성할 수 있어 승리 비용 예측에 극심한 불확실성을 수반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복잡성을 통합하여 Fernandez-Osorio & Upadhyaya (2025)는 현대 비정규전의 승리를 정치적 목표 달성, 적 역량 약화, 대내외적 정당성, 분쟁 후 지속 가능성, 그리고 ‘서사적 복원력(narrative resilience)’이라는 5가지 상호 연결된 변수의 함수 모델로 제시하였다. 이 모델에서 '서사적 복원력'은 적의 정보 압박과 사건의 모호성 속에서도 자국의 성공과 저항의 정당성에 대한 일관된 이야기를 구축·유지·적응시키는 능력으로, 현대전에서 다른 모든 물리적 차원의 결핍을 메우고 갈등을 통제하는 가장 결정적인 중심축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이란 전쟁 분석: 누가 승리했는가?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대립을 표현한 AI 생성 일러스트레이션. 실제 현장 사진이 아님. 이미지 제작: 김시영/OpenAI ChatGPT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대립을 표현한 AI 생성 일러스트레이션. 실제 현장 사진이 아님. 이미지 제작: 김시영/OpenAI ChatGPT

2026년 2월 28 발발한 미국과 이란 전쟁은 전면적인 정규전으로 비화되지 않은 채 장기화되고 있으며, 군사적 파괴 능력의 압도적 우위가 어떻게 인지 영역의 서사와 비용 감내력의 비대칭성 앞에서 전략적 교착 상태로 귀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실증 사례이다. Bartholomees와 Sullivan이 제시한 이론적 틀에 근거할 때, 미국은 세계 최고의 정밀 타격 자산과 지휘 통제 마비 역량, 가공할 만한 해·공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막대한 물리적 파괴 능력()을 바탕으로 이란의 핵심 군사 인프라에 막대한 전술적 피해를 가하는 작전을 언제든 전개할 수 있으며, 전략 실행력 측면을 평가하는 '성과' 연속선상에서는 항상 압도적인 '이김(Winning)'을 선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대이란 정치적 목표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 영구 포기, 탄도 미사일 개발 중단, 중동 내 무장 대리 세력에 대한 자금 및 무기 지원 중단 등 이란 정권의 근본적인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데 있다. 이는 전적으로 이란 체제 자체의 자발적 수용과 순응을 필요로 하는 전형적인 '강압적 목표'에 해당한다. 이러한 강압적 목표는 관찰 불가능한 표적국의 저항 의지()와 깊이 연계되어 있어 전쟁 전 승리 비용 추정치의 정확성을 극도로 떨어뜨리는 거대한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이란이 겪어야 할 현재 및 예상 비용을 물리적으로 상승시킬 수는 있으나, 군사력 자체만으로 이란 정권의 대외 정책 노선이나 반미 연대 구축 의지를 직접 뜯어고치거나 굴복시킬 수는 없다. 이로 인해 미국의 압도적인 전술적·군사적 효과성의 증대가 곧바로 미국의 정치적 목적 달성으로 이어지지 않는 심각한 ‘전략적 단절’ 이 발생하게 된다.

반면 이란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갈등의 구조는 철저하게 자국에 유리한 '비용 감내력의 우위'를 제공한다. 이란 체제에게 있어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저항하고 자국의 핵 주권 및 지역 영향력을 방어하는 것은 정권의 사활과 국가의 주권이 걸린 치명적 이해관계이다. 반면 미국에게 대이란 제재와 군사적 억지력 행사는 자국의 실존적 생존과 무관한 중동 내의 지엽적·사소한 이해관계에 불과하다. 이 구조적 불균형으로 인해 이란은 막대한 인명 손실, 군사 인프라 파괴, 그리고 가혹한 경제 제재로 인한 국가적 초토화를 기꺼이 흡수하겠다는 강력한 결의를 지니게 된다. 약소 행위자의 이러한 압도적인 비용 감내력은 강대국 미국이 아무리 압도적인 화력을 투사하더라도 이란을 순응시키기 위해 치러야 할 인적·물적·정치적 비용을 무한정 상승시키며, 결국 미국이 자국의 비용 감내 한계점을 초과할 것을 우려해 전면적인 결정적 군사 행동을 포기하게 만드는 억제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이 자국의 승리를 선포하는 판단 논리는 1991년 걸프전의 사담 후세인 모델이나 1973년 중동전쟁의 안와르 사다트 모델과 완벽하게 궤를 같이한다. 1991년 걸프전에서 사담 후세인은 다국적군에게 전술적·작전적으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최종 전략적 목표였던 '정권의 생존'을 이룩해 냈기에 자신의 관점에서 이를 전략적 승리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이란 역시 미국의 가혹한 정밀 타격과 전방위적 압박 속에서도 신정 체제를 온전히 유지하고 역내 영향력을 보존하는 현상유지(Status quo)를 이뤄냈기에, 자국의 기준에서 명백한 '전략적 이김' 혹은 최소한 '지지 않음(Not losing)'의 상태를 정당하게 주장할 권리를 갖는다. 이란은 자신들이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버텨내는 과정 그 자체를 '결의의 과시'이자 이슬람 혁명 정신의 수호라고 서사화(narrative framing)하여, 물질적 손실을 도덕적이고 전략적인 승리로 환치하는 기호학적 적응성(semiotic adaptability)을 탁월하게 발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두 국가는 Fernandez-Osorio & Upadhyaya가 제시한 5대 변수 중 '적 역량 약화(미국의 전술 타격)'와 '정치적 목표 달성(미국의 강압 실패 및 이란의 체제 생존)'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순적 지형에 놓여 있다. 분쟁 후 평화를 공고화 하는 결정성이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 원천적으로 도달 불가능한 이 하이브리드 지형에서, 양측은 오직 '서사적 복원력'과 '승리의 조작' 메커니즘을 전면적으로 가동하여 자국 대중에게 유리한 상징적 승리만을 배포함으로써 대내적 정치적 정당성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양측 지도부 모두 전면전이라는 파멸적 결과를 피하면서도 체면을 구기지 않은 채 위기 주기를 통제하고 수습하기 위해 서로가 이겼다는 수행적(performative) 담론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결국 어느 쪽도 상대방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 갈등을 영구적으로 종식시키는 결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미끄럼틀식 연속선 상의 '비김(Tying)'과 '지지 않음(Not losing)'의 영구적 교착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전(戰)과 선교


이처럼 현대전의 전선이 모호해지고 갈등이 극도로 장기화됨에 따라, 전쟁의 중심축은 지리적 요충지가 아닌 민간 주민의 심층적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작전 환경의 변화는 현지인들과 삶을 공유하는 선교사의 존재와 역할을 새롭게 조명한다. 과거 선교 역사에서 전쟁은 선교사들에게 가장 불가피한 철수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현대전이 과거의 일시적 전면전과 달리 장기적 교착 상태를 띠면서, 전란의 상황은 도리어 선교의 새로운 사역의 장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이스라엘 사역 현장에서 직접 전쟁을 겪으며 이를 몸소 실감했다. 평소에는 복음을 완강히 거부하고 부정적이던 유대인들이,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2025년 이스라엘-이란 전쟁을 거치며 복음에 마음 문이 열린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3)”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처럼,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심령은 역설적이게도 복음의 씨앗이 가장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비옥한 옥토가 된 것이다.

또한 장기화된 전쟁 속에서도 철수하지 않고 현지인 곁을 지키는 선교사의 성육신적 실천은 평소 이방인과 기독교에 냉소적이었던 현지인들의 심리적 무장해제를 이끌어내는 가장 결정적인 동인이 된다. 선교사 개인에게 전쟁은 삶을 위협하는 극단적 위기이지만, 복음 전파의 역사적 관점에서는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우리의 선교 역사 역시 이를 뒷받침해준다. 6·25 전쟁 당시, 수많은 선교사들이 대사관의 철수 권고에 따라 한국 땅을 떠났지만 그럼에도 이를 거부하고 한반도에 남아 피난민 구호와 의료 사역, 그리고 복음 전파에 생명을 바친 선교사들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북한군에게 억류되어 포로가 되거나 순교한 이들도 있었다. 비록 전쟁의 참화 속에서 다수의 선교사가 떠나갔지만, 끝내 죽음을 각오하고 남겨진 양떼와 고난을 같이했던 이들의 성육신적 결단이 있었기에, 한국 교회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신앙의 맥을 잇고 마침내 위대한 부흥을 일궈낼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과 승리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실증하듯, 현대전에서 승리는 더 이상 전장 위에서 끝나는 정적인 물리적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경합하고 협상되며, 인지적으로 재정의되는 다차원적인 사회적·정치적 과정이다. 이제 압도적인 군사적 역량과 전술적 탁월함은 장기적인 평화를 보장하는 전략적 성공으로 자동 직결되지 않는다. 이처럼 세상이 정의하는 승리의 개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요동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승리의 본질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문득 그 옛날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오직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을 생각하게 된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들의 최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당시 세상의 눈에는 그저 헛된 죽음이자 비참한 패배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믿음으로 죽음을 이기고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승리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비록 우리에게는 이러한 핍박이 없지만 우리는 매 순간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며, 동시에 세상의 가치관과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비록 세상의 기준에는 어리석고 패배자처럼 보일지라도, 이미 십자가 위에서 완성된 그 승리를 품고 있기에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묵묵히 승리의 길을 걷는 자들이다. 마지막으로, 때로는 선교지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필자의 마음에 깊은 위로와 담대함을 주었던 찬양을 소개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승리


강명식

승리가 무엇인줄 아는가

승리가 무엇인줄 아는가

더 좋고 편한 가능성의 유혹을

절연히 잘라버리고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것

바로 승리라네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하고 싶은말 그 많고 많은 말

모두 힘겹게 억누르고

오직 주께서만 말씀하게 하는 것

바로 승리라네


결과가 어떻해도 주님만 빛나시고

주님 평안 내 안에 있으면

그것이 바로 승리라


오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허옇게 잠재우고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것

오직 주께서만 말씀하게 하는 것

주님만 내안에 사시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승리입니다)

바로 승리라네











참고문헌 (References)


Bartholomees, J. B. (2008). "Theory of Victory." The US Army War College Quarterly: Parameters 38(2): 25–36.

Clausewitz, C. V. (1984). “On War”. Princeton University Press.

Fernandez-Osorio, A. E. & Upadhyaya. S. (2025). "The anatomy of victory in irregular warfare: a multidimensional framework for command." Small Wars & Insurgencies.

Singer, P. W. & Brooking, E. T. (2018). “LikeWar: The Weaponization of Social Media”  Boston: Eamon Dolan/Houghton Mifflin Harcourt.

Sullivan, P. L. (2007). War Aims and War Outcomes: Why Powerful States Lose Small Wars.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51(3): 496–524.


[1] 소셜미디어의 좋아요와 전쟁의 합성어로 여론전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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