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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이후 미국의 중동문제 개입역사와 평가

  • 작성자 사진: mmihpedit
    mmihpedit
  • 2월 3일
  • 9분 분량

이철영(국제정세 연구팀장)



서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미국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중동 문제에 깊이 개입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의 타당성과 효과를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미어샤이머와 왈트와 같은 세계적인 현실주의 학자들은 미국의 개입이 중동 평화와 미국의 국익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개입의 강도와 방식에 이견이 있을지언정, 미국의 개입이 전반적으로 정당성을 가진다고 평가한다.

특히,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의 중동 정책은 이전 냉전 시대의 전략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본 글은 클린턴, 부시, 오바마, 트럼프,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중동 개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러한 접근법과 그에 대한 평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The Peace Puzzle (2017)와 The Arc of a Covenant (2022) 라는 두 권의 주요 저서와 관련 학술 논문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1. 클린턴 행정부(1993–2001)

1) 주요 사건

  • 1990년대: 이스라엘-시리아 협상

  • 1993년: 오슬로 협정

  • 1995–1996년: 와이리버(Wye River) 협상

  • 2000년 7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 회담


2) 평가

이스라엘-시리아 협상

  • 클린턴 행정부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평화를 중재하는 데 실패했다. 시리아와의 갈등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하여 긴급한 해결이 필요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 클린턴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와 달리 이스라엘-시리아 협상에서 진전을 이룰 가능성을 더 낙관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중재하려 했으나, 골란 고원의 철수, 헤르몬산의 정보기지 설치, 수자원 문제 등 핵심 쟁점에서 큰 의견 차이로 협상이 결렬되었다.

  • 미국은 공정한 중재자로서 역할을 하려고 했지만, 양측의 정치적 현실과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격차를 좁히기 위한 충분한 압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와이리버(Wye River) 협상

  • 와이리버 협상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논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 중 하나로, 미국은 실질적인 타협을 중재하려 더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정치적 사건과 폭력 사태로 협상이 중단되었다.

  • 핵심 쟁점에는 주요 분쟁에 대한 상반된 견해, 국내 정치적 요인, 그리고 중재자로서의 미국의 제한된 역량이 포함되었다. 미국의 외교적 개입은 의미 있었지만, 강력한 리더십과 일관된 노력이 부족하여 협상을 진전시키지 못했다.

  • 냉전 시기에는 소련과의 경쟁이 중동에서의 미국 개입을 주도했으나, 1990년대에 냉전이 종식되면서 미국은 쿠웨이트 침공을 저지하며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의 주요 초점은 국내 경제 회복이었기에 중동 문제에는 제한적으로 관여했다. 미국의 중재 노력은 상황의 복잡성과 양측이 직면한 정치적 압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 회담(2000)

  • 캠프 데이비드 협상은 준비 부족과 양측 지도자들 간의 깊은 불신으로 실패했다. 초반부터 미국은 양측의 입장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해 협상에 전략적 결함이 발생했다.

  • 클린턴 행정부는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필요한 경우 단호한 입장을 채택하지 못했다. 특히 클린턴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바락의 제안을 신뢰하며 팔레스타인 측이 이를 수용하도록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 예루살렘의 지위와 주권 등 주요 쟁점들을 해결하지 못한 것은 양측 간 격차를 좁히지 못한 결과였다. 이는 강력하고 균형 잡힌 중재의 필요성을 보여주며, 정치적 압력을 극복하고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부각시켰다.


오슬로 협정(1993)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간의 비밀 협상은 성공적인 협정으로 결실을 맺었으며, 상호 인정과 팔레스타인 자치 및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틀을 마련했다.

  • 1994년,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체결한 두 번째 아랍 국가가 되었고, 이는 지역 내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를 중요한 외교적 성과로 강조했다.

  • 그러나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의 암살 이후, 이스라엘 내부의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어 오슬로 과정이 정체되었다.


냉전 이후 미국의 전략: 방어적 자유주의

  •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방어적 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하여 군사적 힘의 사용에 대해 다자주의와 국제적 승인을 중시했다. 이 전략은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의 평화로운 확산을 목표로 했다.

  • 정권 교체보다는 인권 보호와 같은 제한된 인도주의적 목표를 우선시했다.

  • 소련 붕괴로 미국은 비교적 안전한 국제 환경을 맞이했으며, 방어적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대전략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2. 부시 행정부(2001–2009)

1) 주요 사건

  • 2001년: 9/11 테러 공격

  • 2003년: 평화 로드맵 및 쿼텟(미국, 유럽연합, 러시아, 유엔) 결성

  • 2004년: 가자 지구 철수 계획 및 야세르 아라파트 사망

  • 2005년: 가자 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민 철수

  • 2006년: 하마스의 선거 승리 및 헤즈볼라-이스라엘 분쟁

  • 2007년: 애나폴리스 회담

  • 2008년: 올메르트의 최종 제안이 마흐무드 압바스에 의해 거부됨


2) 평가

9/11 이후 미국의 중동 정책 변화

  • 9/11 이전 미국의 중동 정책은 전략적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권위주의 정권과 협력하여 안정성을 우선시했다.

  • 9/11 이후 부시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급격히 변경하여, 정치적 자유와 민주적 전환을 지역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없으면 극단주의가 계속 확산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일방주의와 신보수주의 영향

  • 부시는 클린턴 행정부의 다자주의를 거부하고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일방적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

  • 전통적인 현실주의자인 아버지와 달리, 부시는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 확산을 강조하는 신보수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지지는 특히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그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며, 미국 외교 정책의 잭슨주의 전통과 부합했다.


평화 로드맵과 쿼텟

  • 2003년 평화 로드맵과 쿼텟(미국, 유럽연합, 러시아, 유엔)의 창설은 아랍-이스라엘 분쟁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조율하려는 목표를 가졌다.

  • 그러나 부시 행정부 내부의 분열과 외교적 일관성 부족으로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 부시는 야세르 아라파트를 신뢰할 수 없는 협상 파트너로 간주하며 배제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설립을 지지했지만, 동시에 미국-이스라엘 관계를 강화했다.


가자 철수와 정착지 문제

  • 부시는 아리엘 샤론의 가자 철수 계획을 지지했으며, 이는 정착지 문제에서 이스라엘의 입지를 강화했다.

  • 그러나 이는 미국이 아랍 이해당사자들과 협의 없이 이스라엘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아랍 국가들의 반발을 샀다.

  • 철수는 수사적으로는 변화를 나타냈지만, 실질적인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으며, 2006년 하마스의 선거 승리 이후 폭력과 정치적 불안정이 더욱 심화되었다.


애나폴리스 회담(2007)

  • 애나폴리스 회담은 두 국가 해법을 강조했지만, 제한된 진전만을 이루었다.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직접 협상이 과정을 지배하며, 미국의 중재자 역할은 약화되었다.

  • 예루살렘의 지위와 같은 핵심 쟁점이 해결되지 않았고, 미국의 적극적 개입 부족으로 회담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라크 전쟁(2003)

  • 이라크 전쟁은 부시 중동 정책의 전환점이 되었다.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고, 민주주의를 확산하며, 테러리즘의 원천을 제거하려 했다.

  • 그러나 전쟁은 이란의 중동 내 영향력 증가와 같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이는 이스라엘이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하며, 지역 역학을 복잡하게 하고 새로운 안보 문제를 초래했다.


부시 접근법에 대한 비판

  • 전통적인 현실주의자들은 부시의 이스라엘과의 동맹이 중동 내 미국의 광범위한 이익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 부시가 샤론의 보안 장벽 건설을 지지함으로써 친이스라엘 단체들의 지지를 얻었으나,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 촉진에 초점을 맞춘 접근법은 궁극적으로 실패했으며, 이후 아랍의 봄은 이러한 노력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 이러한 실패는 미국의 중동 개입이 축소되고, 중국과의 경쟁이 심화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초점이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전략: 공격적 자유주의

  • 9/11 이후, 부시는 공격적 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하여, 특히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민주주의 확산을 군사력으로 추진했다.

  • 이 접근법은 다자적 제약을 거부하고, 미국의 리더십을 주장하기 위해 일방적 행동이나 임시 연합을 선호했다.

  • 신보수주의가 지배적 영향을 미치며, 억압적 정권의 전복이 민주주의 확산의 수단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미국 외교 정책에 미친 영향

  • 부시의 중동 정책은 국제 체계 내 물질적 요인과 국내 정치적 고려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했다.

  •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 촉진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야심적이었으나, 미국의 지역 내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장기적인 불안정을 초래했다.

  • 결국 이러한 정책은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재구성하며, 중동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도전 과제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


3. 오바마 행정부(2009–2017)

1) 주요 사건

  • 2009년: 이스라엘 정착촌 동결 요구

  • 2011년: 아랍의 봄

  • 아프가니스탄 전쟁 지속

  • 2015년: 이란 핵 합의(JCPOA)


2) 평가

정착촌 문제와 미국-이스라엘 관계

  • 2009년 6월, 오바마는 이스라엘 정착촌 확장의 동결을 요구하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

  • 오바마는 이 문제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밝혔지만, 후속 조치 부족과 팔레스타인 이해를 최소한으로 고려한 접근은 그의 전략을 약화시켰다.

  • 정착촌에 대한 행정부의 일관성 없는 태도는 초기 입장에서 후퇴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신뢰를 훼손했다. 이러한 실패와 국내 문제 및 아랍의 봄과 같은 지역 변화로 인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프로세스는 행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중동 평화 프로세스

  • 오바마 행정부는 평화 프로세스를 재활성화하려 했으나, 일관된 전략이 부족했고 양측의 요구를 조율하는 데 실패했다.

  • 오바마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했지만, 정착촌과 같은 논쟁적 문제에서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일관된 접근 방식을 유지하지 못했다.

  • 결과적으로 오바마의 평화 프로세스 노력은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했으며, 초기의 열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략적 철회로 대체되었다.


미국 정책의 모순

  • 오바마는 이스라엘 정착촌 확장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이스라엘 원조 패키지를 제공했다.

  • 이러한 이중적 접근은 비판을 초래했으며, 비판자들은 친이스라엘 로비의 영향이 미국 외교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 오바마의 외교 정책은 민주주의 촉진과 인권 같은 윌슨주의적 이상과 미국의 권력 및 영향력의 한계를 포함한 현실주의적 제약 사이의 긴장을 나타냈다.


아랍의 봄과 중동 재편성

  • 오바마는 권위주의 정권과의 협력을 줄이고 민주주의 개혁을 장려하며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를 재조정하려 했다.

  • 행정부는 처음에 아랍의 봄을 중동 전역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킬 기회로 지원했으나, 이러한 노력은 대체로 역효과를 낳아 미국의 지역 내 영향력을 약화시켰고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 리비아에서 미국 주도의 군사 개입은 무아마르 가다피 정권을 전복시키며 민주주의를 촉진하려 했지만, 리비아는 혼란과 폭력으로 빠져들었다. 이 실패는 미국 개입의 의도치 않은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란 핵 합의(JCPOA)

  • 오바마의 중동 정책 중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2015년 이란 핵 합의였다.

  • 이 합의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대신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오바마는 이를 긴장을 줄이고 지역 내 군사 충돌을 피하기 위한 외교적 해결책으로 보았다.

  • 그러나 JCPOA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강력한 반대를 불러일으키며 미국과 중동 전통 동맹국 간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비판자들은 이 합의가 미국의 동맹에 대한 약화된 헌신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인도-태평양으로의 전환

  • 오바마와 그의 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전략의 초점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전환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 중동에서의 군사적 개입을 줄이면서, 이는 미국 동맹국들에게 미국이 전통적인 안보 약속에서 물러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 이러한 불확실성은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켰으며, 동맹국들은 대체 안보 체제를 모색하고 미국의 철수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오바마의 중동 정책 요약

  • 오바마의 중동 정책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혼합되었으나 지속 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일관성이 부족했다.

  • 행정부는 중동에서의 미국 개입을 줄이면서 핵 확산과 인권 같은 글로벌 과제에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종종 모순적으로 보였고, 평화 프로세스에서는 혼재된 결과를, 전통 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는 긴장을 초래했다.

  • 아랍의 봄과 이란 핵 합의는 오바마 행정부 아래 미국 리더십의 잠재력과 한계를 동시에 부각시키며, 지역 동맹국들 간 신뢰가 감소한 복잡한 유산을 남겼다.


4. 트럼프 행정부(2017–2021)

1) 주요 사건

  •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 간 관계 정상화)

  • 2018년: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

  • 2019년: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

  • 2018년: 이란 핵 합의(JCPOA) 탈퇴

  •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감축


2) 평가

아브라함 협정

  • 트럼프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를 대안으로 추구했다.

  • 아브라함 협정은 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가 이스라엘을 외교적으로 인정하게 하며, 지역 협력과 이스라엘의 안보를 강화했다.

  • 그러나 협정에서 팔레스타인이 제외되었고, 이를 아랍 국가들의 배신으로 간주하며 미국 주도의 평화 이니셔티브에 대한 반대를 더욱 강화했다.

  • 아브라함 협정은 중요한 외교적 성과였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근본적인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스라엘 지지

  • 트럼프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며 친이스라엘 입장을 강하게 드러냈다.

  • 그는 또한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며 이스라엘의 안보를 강화하고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

  • 이러한 조치는 미국 내 복음주의 기독교인과 친이스라엘 단체들의 지지를 공고히 했으나, 팔레스타인과 다수의 아랍 국가들로부터 반발을 사며 미국의 중재자로서의 신뢰를 약화시켰다.


이란 핵 합의 탈퇴와 이란 정책

  • 트럼프는 이란 핵 합의를 결함이 많고 이란의 핵 야망을 저지하기에 불충분하다고 평가하며 탈퇴했다.

  • 그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지역 내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경제 제재를 재도입했으며, 이는 특히 헤즈볼라와 같은 이란의 대리군에 대한 지원을 겨냥했다.

  • 이러한 접근은 이스라엘의 이익과 일치했으나, 지역 내 긴장을 고조시키며 이란이 우라늄 농축과 군사 활동을 강화하도록 만들었다.


군사 개입 축소

  • “미국 우선주의” 원칙에 따라 트럼프는 중동에서의 미군 개입을 줄이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철수하며 지역 동맹국들이 더 많은 안보 책임을 맡도록 강조했다.

  • 그는 미국이 더 이상 지역의 “경찰”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들이 이란의 침략에 맞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이러한 접근은 미국의 군사적 부담을 줄였으나, 전통적인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지역 안정에 대한 헌신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미국 우선주의” 원칙

  •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공세적 현실주의와 국가주의적 “미국 우선주의” 접근을 결합하여 단기적 미국 이익과 경제적 이득을 우선시했다.

  • 그는 국제기구와 협정에 회의적이었으며, 이를 미국 주권에 대한 제약으로 간주했다.

  • 트럼프는 파리 기후 협정,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하며,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거부하고 양자주의와 제로섬 협상 전략을 선호했다.


강점과 비판

  • 강점: 

    •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중요한 외교적 성과를 달성했다.

    • 미국-이스라엘 관계를 강화하고 주요 이스라엘 안보 문제를 해결했다.

    • 중동에서의 미국 군사 개입을 축소했다.

  • 비판: 

    • 팔레스타인을 평화 노력에서 제외하여 그들의 고립을 심화시켰다.

    • 이란과의 긴장을 고조시켜 추가적인 불안정을 초래했다.

    • 중재자로서의 미국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과 같은 전통적인 동맹국들과의 신뢰를 훼손했다.

    • 단기적 이익에 초점을 맞추며 장기적 지역 안정과 갈등 해결을 소홀히 했다.


트럼프의 중동정책 요약

  • 트럼프의 중동 정책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우선시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이해를 배제한 거래적 접근으로 특징지어졌다.

  • 그의 행정부는 역사적인 정상화 협정을 성사시켰지만, 지역 내 근본적인 갈등은 해결하지 못했다.

  • 미국의 중동 개입을 줄이려는 초점은 미국의 중동 내 역할을 재정립하려는 광범위한 전환을 반영했으며, 지역 안정과 미국 영향력에 대해 혼합된 결과를 낳았다.


5. 바이든 행정부(2021–2025)

1) 주요 사건

  • 국제 기구와의 재협력: UNESCO 재가입 및 UNRWA 자금 지원 복원

  •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군

  • 이란 핵 합의(JCPOA) 복귀 시도

  • 아브라함 협정 지원: 네게브 포럼 확대 및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정상화 추진

  •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대규모 이스라엘 공격 및 미국의 대응


2) 평가

중동 정책 접근

  • 바이든은 민주주의와 다자주의와 같은 자유주의 원칙을 우선시하며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회복하려고 했다.

  • 그러나 그의 정책은 중국 견제, 중동의 불안정 대응, 지역 안보 추구와 같은 일부 문제에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연속성을 보였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 바이든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은 군사적 개입에 대한 회의론의 정점을 나타냈다.

  • 이 결정은 중동과 같은 지역의 점점 낮아지는 물질적 중요성과 높은 비용을 고려한 현실주의적 논리에 근거했다.

  • 그러나 혼란스러운 실행은 미국의 신뢰도를 손상시켰다.


이란 정책

  • 바이든은 트럼프의 최대 압박 캠페인을 되돌리고 JCPOA에 외교적으로 복귀하려 했으나, 이란의 강경한 입장과 핵 능력 증대로 인해 협상이 실패했다.

  • 이 실패는 충분한 지렛대 없이 외교를 추진하는 한계를 보여주며, 특히 분극화된 지정학적 환경에서 그랬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관여

  • 바이든은 UNRWA 자금 지원을 재개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 다자적 기구와 다시 협력했다.

  • 2021년 가자지구 분쟁("Operation Guardian of the Walls") 동안 이스라엘을 초기에는 지지했으나, 이후 휴전을 확보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며 보다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다.

  • 그의 행정부는 두 국가 해법에 전념했으나, 높은 지역 긴장 속에서 실질적인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아브라함 협정 및 지역 안정

  • 바이든은 아브라함 협정을 기반으로 삼아 이를 지역 협력의 토대로 보았다.

  • 행정부는 네게브 포럼 설립을 주도하며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다자적 협력을 촉진했다.

  • 또한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정상화에 큰 관심을 보이며, 이란의 영향력을 상쇄하고 지역 역학을 재편할 가능성을 인식했다.


2023년 10월 7일 사건에 대한 대응

  • 하마스의 대규모 이스라엘 공격에 대응하여 바이든은 “우리는 이스라엘과 함께한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 그는 두 개의 미국 항공모함 전단을 해당 지역에 파견하고, 이스라엘에 무기를 신속히 공급했으며, 분쟁 중 이스라엘을 방문해 지도자 및 인질 가족들과 만났다.

  • 이러한 조치는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미국의 헌신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란과 헤즈볼라에 대한 억지 메시지를 보냈다.


현실주의적 전환

  • 바이든은 선거 운동 기간 중 사우디아라비아를 “왕따 국가(pariah state)”라고 비판하며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로 인한 에너지 위기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실용적 화해를 초래하며, 물질적 필요가 도덕적 고려를 우선하는 현실주의를 반영했다.


자유주의와 현실주의의 균형

  • 바이든의 외교 정책은 방어적 자유주의와 공세적 현실주의 사이에서 진동했다.

    • 방어적 자유주의: 국제 기구와의 재협력 및 글로벌 규범 지지.

    • 공세적 현실주의: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재조정과 중동 안정화.

  • 그의 진화하는 태도는 변화하는 지정학적 조건에 대한 적응성을 반영하지만, 때로는 일관성 부족으로 보였다.


바이든의 중동정책 요약

  • 강점: 

    • 다자주의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재확인하고 자유주의 국제 원칙을 지원.

    •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지역 협력을 강화하고 이란 및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외교를 강조.

    • 위기 상황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단호한 지지로 미국-이스라엘 관계 강화.

  • 약점: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의 제한된 진전과 JCPOA 복귀 실패.

    •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미국의 후퇴로 인식되어 글로벌 신뢰도 손상.

    •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실용적 화해는 초기 인권 공약을 희석시킴.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자유주의적 리더십 회복과 현실주의적 제약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려 했으며, 다극화된 세계에서 이상과 전략적 필요를 조화시키려는 복잡한 중동 정책을 반영했다.




참고문헌 

Kurtzer, D.C., Lasensky, S.B., Quandt, W.B., Spiegel, S.L., Telhami, S. (2017). The Peace Puzzle: America's Quest for Arab-Israeli Peace, 1989–2011. Cornell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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