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없는 땅, 튀르키예 – 제자 삼는 선교의 회복을 위하여
- mmihpedit
- 5월 16일
- 5분 분량
<이슬람세계를 향하여-지역별 사역자 인터뷰 시리즈3편(튀르키예선교)>
김희망 (소아시아 연구원), Joseph Kwon(편집위원)
이슬람권 선교는 가장 어렵고 가장 오래 걸리는 사역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정부의 감시, 복음에 대한 문화적·종교적 거부감, 그리고 종교를 ‘귀속 지위’로 여기는 공동체 구조는 선교의 열매를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 없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교회는 이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올해까지 25년 튀르키예에서 사역한 김희망사역자의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는 교회의 리더를 세우려 했지만, 예수님의 제자를 세우지 못했다”는 현지 교회의 고백을 전하며, 이슬람권 사역의 본질을 되짚습니다. 제자가 먼저 세워질 때 비로소 교회도, 지역 사회도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은 왜 세계 교회가 이슬람권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신학적·전략적 이유와 함께, 창의적인 접근, 팀 사역, 복음의 오해를 푸는 지혜, 그리고 한국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고유한 사명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지금은 ‘어려운 땅’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 더 깊이 품고 예수님의 방식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이 독자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붙들고, ‘제자를 세우는’ 선교의 자리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Q1. 세계 교회가 이슬람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핵심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이슬람 선교는 현장의 사역자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안겨줍니다. 세계 교회도 이슬람 선교가 지나치게 어렵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접근성입니다.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는 정부의 감시가 심해 선교 활동이 쉽지 않습니다. 현지인들도 복음에 대해 마음이 닫혀 있고,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이 많습니다.
미국의 인류학자 랄프 린턴은 사람들이 ‘귀속 지위’와 ‘성취 지위’를 가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귀속 지위는 출생 시 주어지는 지위로, 민족, 가족 등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요소들입니다. 우리는 종교를 성취 지위로 인식하지만, 이슬람권에서는 종교가 귀속 지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종교를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기독교에 대한 오해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세 신을 섬긴다, 예수님은 단지 선지자다, 성경은 변질되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처럼 열매가 많지 않다 보니 사역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렵다고 포기하면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 없는 이들이 남게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예비하려면 이슬람권에서도 교회가 세워져야 합니다.
현재 이슬람권은 정체성과 삶의 방향에 혼란을 겪고 있는 시기입니다. 바로 이런 때에 더욱 선교적 집중이 필요합니다.
터키, 이란, 이집트처럼 주변 민족에 영향을 주는 ‘허브 국가’에 집중하면 미전도 종족들 가운데 복음 전파가 더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Q2. 접근성, 정부 감시와 같은 ‘외부 장벽’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요?
A.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선교단체들 안에서 다양한 돌파 방안이 시도되어 왔습니다. 핵심은 창의적 접근입니다. 전문인, 학생, 단기팀 등 다양한 자원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과거 ‘전문인 선교’는 구호에 그친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비자 문제와 추방 사례가 늘어나면서, 현지 거주 자체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에 따라 교회와 선교단체가 직업 아이템, 자원, 재정 등을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단기팀은 전도의 측면에서 장기 선교사보다 전략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장과 세계 교회가 큰 틀의 협력 팀 사역을 구성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튀르키예에서는 1970년대 미국인 사역자들이 회사를 설립해 현지인 신자들을 고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현지인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경제적으로 유익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어 복음의 순수성이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사역자들은 비즈니스 미션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현지 사역자들이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필요합니다. 비즈니스 선교는 여전히 중요한 이슈이며, 단순히 사역자가 회사를 만들고 현지인을 고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인이 현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접근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Q3. ‘열매가 적다’는 이유로 동원이 주저될 때, 지속할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A.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사람은 있지만, 열매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이슬람권에서도 씨 뿌리는 시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팀 단위로 협력하면 낙망보다는 상호 격려가 일어납니다. 실제로 새로운 가정과 학생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현장이 변화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이슬람권 선교에서는 ‘팀 사역’이 매우 중요합니다. 혼자 사역을 하게 되면 자신의 상황에 함몰되어 낙담하고, 다시 일어날 힘이 약해집니다.
기본적으로 사역자 안에 ‘로드십(사명의 지속성)’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역 기조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후임 사역자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동원되어야 합니다. 후방에서의 동원사역이 진행되어야, 현장에서도 지속적인 사역의 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슬람권 사역은 전방과 후방의 구분이 없는 전면전과 같습니다.
Q4. ‘귀속 지위’ 문화 때문에 개종자가 받는 박해는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A. 이들은 태어날 때 받은 정체성(귀속 지위)을 떠나는 순간 ‘배신자’로 간주됩니다. 이 문제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실제 개종자가 느끼는 고통이 훨씬 큽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자 운동’(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지역으로의 이민 등이 시도되었습니다. 그러나 해외 이민은 개인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본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가족 전체와의 관계를 맺고, 자연스럽게 신뢰를 쌓으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성령께 의지하며, 현지에서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청년들이나 지방에서 도시로 유학 온 학생들은 귀속 지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이런 청년들이 복음에 더 잘 반응하지만, 기성세대가 변하지 않기에 갈등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전도 대상자 개인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 특히 부모와의 관계를 함께 세워야 복음을 받아들일 때 생기는 갈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Q5. 무슬림이 갖는 기독교 오해는 무엇이며,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A. 이슬람권에서 전도하는 것이 한국보다 쉬운 점도 있습니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며, 존중하기 때문에 복음의 대화를 시작하기가 용이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독교에 대한 오해는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삼위일체를 ‘세 신’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많은 무슬림들은 기독교가 하나님, 예수님,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수는 단순한 선지자이며, 성경은 변질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오해를 논쟁으로 풀기보다는 ‘예수님은 구원자’라는 핵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구원자가 왜 필요한지를 나누며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경험하게 되면, 삼위일체나 성경의 권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꾸란에도 ‘이사 메시’(예수 메시아)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이 단어의 의미조차 모르지만, 메시아에 대한 설명을 통해 구원자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Q6. 튀르키예 사역이 지닌 역사적·민족적 의의는 무엇인가요?
A. 초대교회의 영광이 시작된 땅이 바로 튀르키예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터키인은 그 시기의 ‘원주민’이 아닙니다. 투르크 민족은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 시대에 이슬람 세계의 확장을 주도해 왔으며, 현재도 57개 이슬람 국가 연합의 중심 국가입니다.
튀르키예가 복음으로 변화되면, 주변 무슬림 국가에 미치는 파급력은 매우 클 것입니다.
투르크 민족은 유목민족의 전통을 가지고 있어 카리스마적인 리더를 중심으로 뭉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슬람 역사를 보면, 시작은 아랍에서 되었고, 이를 세계적 종교로 만든 사상과 문화는 페르시아가 입혔으며, 이슬람 공동체를 전 세계로 확장한 민족은 투르크족이었습니다.
Q7. 한국 교회가 투르크권에서 맡을 고유한 역할이 있을까요?
A. 튀르키예 사람들은 한국을 특별하게 여깁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터키 민족의 기원이 한반도 북쪽에 살던 돌궐족과 연결되기에 역사적으로 ‘이웃 민족’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둘째, 6·25 전쟁에 참전하며 ‘형제의 나라’라는 우호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셋째, 70년대까지는 튀르키예가 한국보다 훨씬 잘 살았습니다. 이후 80,90년대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며 튀르키예를 추월했습니다. 이때 튀르키예인들은 한국을 시기하거나 질투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뻐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튀르키예를 생각하는것보다 튀르키예사람들이 한국을 생각하는 것이 훨씬 친근합니다.
또한 한국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한국인은 예의 바른 민족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인 선교사는 타 민족보다 더 높은 신뢰와 접근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튀르키예까지 이어지는 ‘투르크 벨트’는 언어가 유사하므로, 한국 교회가 단기·장기 인력을 파송해 벨트형 협력 사역을 구축하면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튀르키예로 직업이나 유학으로 오며 많은 왕례가 있습니다. 투르크 벨트안에 매우 활발한 교류가 있지요. 이에 발맞추어 선교 또한 투르크 벨트를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전략을 제시하는것도 필요합니다.
Q8. 현지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원칙’이 있다면?
A. 이 주제는 튀르키예 현지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논의된 바 있습니다.
튀르키예는 선교 역사가 길지만, 같은 투르크 민족인 중앙아시아에서는 1990~2000년대에 부흥이 있었던 반면, 튀르키예는 단 한 번도 부흥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2010년경, 현지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그 이유를 토론했습니다.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를 세워야 하는데, 우리는 교회의 지도자를 세우려 했습니다.”
교회를 이끌고, 말씀을 전하고, 관리하는 일은 이루어졌지만, 제자로서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데는 부족함이있었습니다.
“지도자를 세우려다 제자를 놓친” 이 교훈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제자 되기’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립, 자치, 자전(3자 원리)을 넘어 도시 단위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한마음으로, 현지 교회의 영적 성숙과 경제적 자립을 함께 지원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A. 전 세계 선교 상황을 보면, 복음이 필요한 미전도 종족 가운데 사역하는 선교사는 전체의 3%에 불과합니다. 이슬람권 선교사는 전체 사역자의 2% 정도입니다.
제가 사역을 시작했던 3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이슬람권은 복음이 가려져 있는 지역입니다.
하지만 이슬람권 선교는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세계교회의 관심과 전방위적인 협력을 통해 가능합니다.


